구조조정 전제조건이 필요하다│② 국민적 합의와 야당 설득이 먼저

"낡은방식으론 밑빠진 독 물붓기"

2016-05-03 10:37:34 게재

구조조정 추진과정 불투명 … "여론몰이식 구조조정,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큰 그림은 부실이 가장 큰 조선·해운 분야에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끈 뒤 건설 등 5대 분야로 확산하는 방식이다. 일부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한 실탄도 마련 중이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활용해 부실기업의 빚을 떠안고 있는 국책은행에 자본확충을 한다는 방침이다.

고심하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에 부정적이었던 이주열 한은 총재 입장도 선회 중이다. 이 총재의 입장선회 조짐은 지난달 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하면서 감지됐다. 2일 한은 집행간부회의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위한) 한은의 역할수행 방안에 대해 철저히 점검해주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조단위 혈세 결국 투입하나 =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문제는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조단위 공적자금이 투입될 구조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

한국은행의 입장 선회 과정 자체부터 석연치 않다.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1일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한국은행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뒤 한은 입장이 바뀌었다. 이틀 전만 해도 "한국은행 발권력 행사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 정부의 압박에 한은이 입장을 바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한은의 발권력 행사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딱 한번 있었던 일이며,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착한다. 이례적 조치를 하려면 설득력 있는 근거로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먼저다.

구조조정에 돈이 필요하다면서 '액수'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정부 태도도 문제다. 최목 기재부 1차관은 2일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규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정부와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협의체의 논의가 시작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스터디가 안 돼 있다"고 했다. 정부는 아직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국민들에게 혈세를 낼 것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와 논의 시작도 못한 정부 = 야당 설득도 전제조건이다. 한국은행 발권력 행사를 위해서는 한국은행법이나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4월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동의하지 않고서는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야당은 현재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다. 정부 재정이나 추경을 통해 '국회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야당은 정부가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려는 이유가 국회 통제권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한은 출자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아직까지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공식적으로 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한 바 없다. 하반기 국회가 구조조정 관련 법안 처리 문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실련의 권오인 팀장은 "정부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경우 대규모 실업 등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클 가능성이 높다"면서 "구조조정이 왜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은 채 낡은 방식으로 한다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단순한 개별산업 지원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꼼꼼하게 구조조정을 논의하고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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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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