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전제조건이 필요하다│④ 외환위기 극복한 YTN 사례 - 김호성 당시 노조위원장
"해고없이 전 직원 고통분담해 위기 돌파"
임금 대폭삭감 … 체불임금 출자전환
CEO가 앞장서 희생하는 모습 필요
직원들이 6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 새로 온 사장도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3개월 만에 회사는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채가 1350억원이고 자본잠식 상태였던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사인 YTN의 위기 극복 사례다. 1995년 개국 당시만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기대를 모았던 YTN은 매년 3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다 외환위기 직후 법정관리를 눈앞에 뒀다.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절망적이었다. 사장 자리도 공백 상태였다.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김호성 YTN 기획조정실장은 "월급이 한달간 나오지 않았을 때는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3개월 가량 이어지자 직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사장을 구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김대중정부는 1998년 9월 장명국(현 내일신문 사장, 당시 내일신문 운영위원장)씨를 YTN 사장으로 임명했다. 김 실장은 "당시 사장의 취임 일성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 사람 잘라서 회사 살릴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다"며 "회사 임직원들이 고통분담을 하자는 얘기였고 이후 대폭 월급을 삭감했다"고 말했다.
일반직원은 급여의 50%, 차장급 60%, 부장급은 70%까지 줄였다. 그는 "사장도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회사 상황도 어려워서 다들 임금 삭감에 동의했다"며 "장 사장은 YTN에 근무하면서 급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사장"이라고 말했다.
◆"직원들 회생 의지 강해" = 직원들을 해고하지는 않았지만 고통분담 요구는 거셌다. 김 실장은 "가뜩이나 공간이 적었는데 사무실 임대를 더 줄였다"며 "사장실을 절반으로 줄이고 남은 공간을 회의실로 사용하는 등 CEO가 앞장서서 나서는 데 직원들이 반발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리더십은 시키기만 하고 리더는 뒤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리더십은 희생을 가장 앞에서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YTN은 아침 7시 출근,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 사무실 대폭 감축, 출연료 절감 등의 안건을 노사가 의결하고 경비를 5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CNN 등 외신사용료도 50% 줄였다.
사장은 그랜저 승용차를 반납하고 방치돼 있던 작은 누비라 차량으로 바꿨다. 노조 사무실도 절반으로 줄였다. 연합통신 기사 전재료도 내기 어려워 수신을 끊었다.
회사 내부의 분파적인 요소도 바꿔나갔다. 김 실장은 "YTN은 다른 방송에서 온 경력사원들이 많아 이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있었고 진골·성골 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회사의 문제점이라고 판단한 장 사장이 사조직을 없애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말았다. 그는 "조직 내부의 대화합에 사조직이 걸림돌이었고 노조 역시 동의해 사조직을 해체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고통을 분담한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직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있었다"며 "직원들을 해고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일"이라고 말했다.
◆흑자·출자전환 후 공기업 증자 참여 = YTN 구조조정의 가장 큰 난관은 직원들의 출자전환 문제였다. 부채가 많았던 YTN은 유상증자가 필요했고 직원들의 동참이 중요했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없었고 직원들이 나서야 했다.
장 사장은 본인은 물론 직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김 실장은 "6개월 동안 못받은 체불임금을 출자전환하자고 했는데 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며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나중에 받는 것인데 그걸 강제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노조도 맞섰다"고 말했다.
결국 장 사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직원 투표를 통해 본인의 경영방침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표를 내기로 한 것이다. 투표결과 경영방침에 86%가 찬성했다. 김 실장은 "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한 대열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저도 체불임금의 51%를 출자전환하기로 했다"며 "노조위원장이라는 입장 때문에 너무 많은 비율을 하기 어려웠지만 비슷한 경영 여건에서 회생의 길을 찾는 조직이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회사의 자구책에 기꺼이 동참했던 것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보다 YTN 조직원으로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을 소중한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라며 "당시 노보(노조신문)의 헤드라인이 '노사불이'였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YTN은 장 사장 취임 이후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10개월만에 전체 매출이 3배로 올라 정상화됐다. 경비를 절반 이하로 줄이면서 회사는 흑자로 전환했다. 흑자를 내기 시작하고 직원들이 출자전환으로 증자에 참여하면서 투자를 꺼렸던 공기업들이 잇따라 증자 참여를 결정했다. 1100억원의 증자 성공으로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김 실장은 "임금삭감과 출자전환 등 회사 내부의 회생의지는 대외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CEO가 마케팅과 증자를 위해 열심히 뛰는 등 여러 가지 박자가 맞으면서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없이 전 직원의 고통분담으로 위기를 돌파한 사례"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없이 고통을 나눴다는 것은 YTN에게 있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고 장명국이라는 CEO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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