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경 전문가를 키워라│①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청년들

"영어보다 장기적 인생목표가 우선"

2016-07-04 09:59:21 게재

자신만의 희소성이 빛날 곳 찾아야 … 정부 프로그램 활용해 공신력 확보

"자신의 꿈이 분명하다면, 영어에 겁먹지 말고 도전부터 하세요."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최진아(29)씨의 얘기다. 그는 최근 국제기구 취업에 성공했다. 9월부터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주요 업무는 약용식물이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일을 막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하게 하는 것. 월급은 250만~300만원 정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CITES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 것만도 다행이었는데, 취업으로 이어져 정말 꿈만 같아요. CITES에는 동물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저처럼 약용식물 등 초본류를 담당하는 사람이 1명도 없었죠. 특화된 점이 있다 보니까 인턴이지만 꽤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고, 취업으로도 연결이 된 것 같아요."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최진아씨(오른쪽)와 정하연씨. 이들은 CITES(멸종위기에 관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9월부터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사진 김아영 기자


"두려워 말고 첫발 내딛어라" =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최씨는 본인도 국제기구에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단다. "흔히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려면,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 등 다른 언어 2~3개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과생인 저는 상대적으로 언어가 취약했죠. 다행히 일을 하다보니까 언어는 큰 문제가 안 되더라고요. 언어가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두려워하기 보다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제기구에 첫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외부에서는 안 보이던 더 큰 세계로의 가능성과 만날 수 있거든요."

최씨는 지난해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을 들었다.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을 끝마친 선배들과 직접 얘기할 기회가 생겼고, 덕분에 본인의 꿈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다양한 국제기구들의 특성을 파악했다면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올해 2월부터 CITES에서 인턴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한국 정부 유관 기관이 연결고리가 되었기 때문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단다.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을 들을 때 국제기구에 취업한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실질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죠. CITES에 인턴으로 오기 전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각종 보고서 등을 통해 동향을 확인하는 등 특성을 꼼꼼하게 모니터링 했죠. 초본류를 전공하는 이들이 적은 특성을 파악했고, 이 곳에서 제가 강점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인턴 지원을 했습니다."

국제기구 인턴은 무급, 사전에 경제적 문제 해결해야 = 최씨와 함께 CITES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정하연(24)씨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글로벌경영학·경제학 전공) 졸업반인 정씨는 지난해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을 들었다. 정씨는 CITES에서 개도국들도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 동·식물종을 보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기금 조성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을 통해 국제기구 인턴으로 활동 중인 선배들의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었어요. 본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국제기구 동향 등 생생한 정보들이 가득하죠. 저는 앞으로 환경무역 등 경제와 환경을 접목한 일을 하고 싶거든요. 선배들의 보고서를 보면서 제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곳이 CITES라는 확신을 얻었죠. 국제기구 인턴 상당수가 대학원생들이에요. 대학생인 제가 인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국가 기관(한국환경공단)에서 이력서를 보내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국제기구 인턴에 도전할 때 경제적인 부분도 반드시 고려를 해야 할 사항이다. 국제기구 인턴은 무급이 기본 원칙이기 때문. 다행히 최씨와 정씨는 정부 지원금(월 1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환경공단은 국제환경전문가 양성 과정을 수료한 뒤 국제기구 인턴으로 활동하게 된 이들에게 체재비를 지원해 준다.

"스위스는 물가가 상당히 비싸요. 아무리 아껴 살아도 집세와 식비, 교통비 등 포함해서 최소 150만~160만원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를 하고, 인접 국가인 프랑스에서 정원 디자인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죠." 최씨의 설명이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장점을 어필하라 = 여기서 국제기구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최씨는 본인의 이력을 스위스 주재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국 학생들은 물론 우연히 이를 보게 된 한 프랑스인이 자신의 정원 디자인을 해달라고 연락까지 해왔다. 결과를 예단하며 주저하기 보다는 문을 두드려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진리가 통한 것. 사실 최씨의 이러한 적극성은 꽤 오래 전부터 빛을 발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제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어요. 재수를 할 때 우연히 영국의 정원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죠. 그때 '아, 맞아. 내가 저런 걸 좋아했지'라고 깨달았어요. 이후 각 대학들에 전화를 걸어서 어떤 학과가 적합한지 일일이 물어봤죠.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이 길이 행복합니다. 부모님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세요."

2013년 교환학생으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 갔을 때도 조금이라도 본인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봤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힘들었던 그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웨스트버지니아대학의 교수님이 롱우든 가든에서 교육자로 계셨어요. 제 사정을 알고 롱우든 가든(식물원)의 국제 인턴십 과정을 소개시켜줬고, 다행히 합격해서 계속 해외에서 공부를 하며 일을 할 수 있었죠.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두드려봐야 무엇이든 길이 열리는 것 같아요. CITES 취업에 성공했지만, 제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또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전할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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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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