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인재양성 정부부처 협업

부처마다 제각각, 불통에 예산 중복 심각

2022-06-15 10:31:10 게재

인재양성 총괄기구 만들어 칸막이 사업 지휘해야 … 대학교육 유연화도 시급

인재양성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는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12개나 된다. 부처들이 제각각 사업을 설계하고 예산을 투입하면서 지속성이 떨어지고 분절적인 사업에 그칠 수밖에 없다. 범부처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개별부처에서 예측하는 인재수요를 취합해 국가 차원의 인재양성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 교육목표는 단순지식 암기가 아닌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소통 능력,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이다. 인재양성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대학교육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맞춰 대학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유연하게 바꿔나가는 추세지만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잘 부탁합니다" 인재양성정책과장 손 꼭 잡은 한덕수 총리│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를 방문해 정상은 인재양성정책과장과 인사하며 격려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15일 내일신문이 부처별로 운영 중인 신기술 인재양성을 확인한 결과 불통에 따른 중복이 심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다양한 신기술분야 인재양성 사업들을 대학을 통해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사업은 미래자동차, 차세대반도체 등 8개 분야에 달한다.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 사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4단계 두뇌한국 21 사업의 '혁신인재양성사업'을 통해 융복합 연구 인력을 양성중이다. 산학연 연계 협력 선도대학(LINC) 및 계약학과 등을 통해 기업 맞춤형 신기술 인재양성 설계도를 내놓고 있다.

◆부처별 칸막이 사업, 효율성 저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신기술 분야별 전문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메타버스, 사이버보안 등 디지털 신기술 분야 인력양성에 올해 약 45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박사 교육 지원 △인공지능 융합 기술을 접목한 현장 근로자 교육 △저탄소시대 대비한 에너지 인력 양성 △바이오·미래차·반도체 등 빅(BIG)3 분야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디지털 신기술 훈련(K-Digital training)을 2020년 시범사업으로 도입, 2021년 정규사업으로 본격 추진 중이다. K-Digital Training은 향후 5년간 노동시장 디지털 신기술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핵심 실무인재 20만명 양성을 목표로 추진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대표적인 인력양성프로그램으로 직업계고(국립공고, 중소기업 특성화고), 중소기업 계약학과 등을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 계약학과는 선취업-후진학 방식의 중소기업 계약학과를 통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학위(전문학사~석·박사) 취득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신기술·신산업 관련 학위과정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부처들이 각각 사업을 설계하고 예산을 투입한다. 지속성이 떨어지고 중복 사업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는 사회부총리가 있는 선임 부서다. 인재양성 정책 주관주서로 부처 간 원활한 협업을 도모하기 위해 부처별 인재양성을 총괄하고 점검할 수 있는 '인재양성정책과'를 두고 있다. 또한 사람투자인재양성협의회 및 인재양성 실무협의회를 통해 부처간 협업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느슨한 협의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신기술 인력양성 협업예산 편성은 기존 각 부처 중심의 분절적 인력양성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범부처 차원의 전략적 인력양성 체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한계점도 분명했다. 따라서 총리나 대통령이 인력양성을 총괄하는 구조를 만들어 각 부처 칸막이 사업을 총괄지휘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오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인재양성 시스템 재구축해야 = 김대중정부에서 만들어진 '인적자원개발기본법'이 있다. 국가가 인재양성을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국가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에서는 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하도록 했다. 유명무실해진 이 시스템을 현재의 조건에 맞게 다시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총리나 대통령이 인력양성을 총괄해야 양성과정에서 취업까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유성구갑)은 15일 "문재인정부에는 일자리위원회가 있었는데 일자리 양적 측면에서 머물렀다"며 "국가 차원에서는 국가인적자원개발위원회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교육의 유연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기술혁신을 이끌 전문인력의 빠른 양성과 함께 학생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맞춤형 학습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직된 대학교육이 여전히 인재 양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학의 혁신을 외치는 조직과 단체들은 입학 후 전공을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자유전공이나 융합학과 운영 등 학사제도의 유연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전공별 정체성이 강한 데다 학과 간 칸막이가 높아 상호 교류가 쉽지 않다. 교수집단도 시대 흐름에 맞게 재교육을 통해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호성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15일 "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려면 종전 방식으로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전공과목부터 무늬만 남기고 파괴했다"며 "언어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수학과 코딩을 접목해 새로운 과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인문계 학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으로 연결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학과 경계를 넘어서는 교수 채용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서울대 언어학과와 한국외대 ELLT학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어학과 공학을 병행하는 교수가 아닌 음성언어 처리 전문가인 공학 전문 교수 영입으로 제대로 된 언어공학 교육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인문계의 경우 음성, 텍스트, 이미지 영상 분야 등이 공학 전문 교수가 필요한 영역이다. 채용만으로도 학생들의 융합적 사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백광현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도 15일 "반도체 설계를 잘하려면 시스템은 물론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자과 수업에서 철학과 교수와 함께 '마음공학'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며 "강의 교류는 물론 팀 교육이나 블럭 강의를 통해 학과 간 칸막이를 낮추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학 '자기설계 전공제' 도입 = 대학들도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능동적인 학습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개인 맞춤형 학습 경험의 기회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건국대는 학생들이 주전공 이외에 자신의 진로계획에 맞게 새로운 융합형 전공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하고 학점 취득과 복수학위를 받을 수 있는 '자기설계 전공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도교수와 전공 관련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과하면 교육과정으로 정식 개설되고 이를 이수하면 학위를 준다.

건국대 학사팀 관계자는 15일 "학생 스스로 종전에 편제되지 않은 전공이나 다수의 전공을 토대로 새로운 전공을 설계한 것"이라며 "지난해에는 민주시민 교육전공, 오디오콘텐츠 전공, 컴퓨터음악공학 전공 등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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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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