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6
"젊은 태극전사들 통해 2018 러시아월드컵 희망을 봤어요"
아레나 데 상파울루 경기장에서 손흥민 선수에게
결국 또 울음보를 터트렸더군요. 지난 알제리전에서 2대4로 패한 뒤 울먹이더니 오늘은 아예 펑펑 울더군요. 지난 '2011 AFC 아시안컵' 4강전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0대3으로 패했을 때도 당신은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울보' 별명 얻겠어요.
분할 만도 합니다. 한국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도 얻지 못한 것은 1998년 프랑스 대회(1무2패) 이후 16년 만이니까요. 2002년 한일 월드컵(3승2무2패), 2006년 독일 월드컵(1승1무1패), 2010년 남아공 월드컵(1승1무2패)에서 연달아 조별리그 승리를 챙겼지만 이번 대회 성적표는 유난히 초라합니다. 한국과 일본 이란 호주 등 아시아 대표 4팀 중 하나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아시아인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네요.
손흥민씨,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 놓고 보니 모두들 안녕치 못한 상황이네요. 이래저래 요즘 온 국민이 안녕치 못합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7일 오전 5시(한국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티안스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0대1로 패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흥민씨를 포함한 23명의 태극전사 모두 애썼습니다. 홍명보 감독님 이하 코치진 여러분에게도 고생 많이 했다고 인사 좀 전해 주세요. 그래도 강호 벨기에를 맞아 분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몸놀림은 절박했고, 표정은 비장했습니다. 알제리전 때 이 정도만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 가지 더 아쉬운 대목은 전반 전 종료 무렵 벨기에 선수의 퇴장으로 1명이 많은 수적 우위에서 경기를 했는데도 0대1로 졌다는 점입니다. 전반 44분 벨기에의 드푸르가 태클하는 김신욱의 발목을 고의로 밟았지요. 주심이 경고 없이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고 퇴장을 명령하더군요. 한국은 수적 우위를 안고 후반전을 맞이했지만 끝내 벨기에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흥민씨의 플레이는 이번 경기에서도 아주 돋보였어요. 상대 수비수를 드리블로 제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눈에 뛰더군요.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당신의 드리블 솜씨는 정말 눈부셨습니다. 지난 알제리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아홉 차례의 드리블 돌파를 기록했지요. 이번 월드컵 개인 신기록이라고 하더군요. 축구통계 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의 이매뉴얼 에메니케가 8차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7차례(이란전)의 드리블 돌파를 했습니다. 역대 최고 축구선수라는 평을 받는 메시보다 앞섰으니 얼마나 자랑스런 기록입니까. 어느새 세상은 당신을 '한국의 호날두'라고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보니 흥민씨는 집중마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요. 한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나면 또 다른 백업 수비수가 달라붙더라고요. 후반 14분 벨기에의 집중 수비를 따돌리며 오른쪽 진영을 파고들어 올린 크로스가 골대를 강타한 채 튀어나왔지요.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오늘 경기도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흥민씨는 그 아쉬움을 눈물로 토로하더군요. 울먹이는 가운데서도 가장 막내답기도 하고 가장 어른스럽기도 한 말을 하더군요. "너무 아쉽고 형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막내로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많은 국민들께서 새벽에 응원하셨는데 좋은 모습 못 보여드려 죄송하다. 팀 전체가 잘못해서 졌다.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봤다.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더 착실하게 준비하겠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 멋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한발 더 열심히 해서 잘 준비하겠다."
흥민씨,
그렇습니다.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생각해야 합니다. 흥민씨 말대로 이번 경험을 토대로 미래의 승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경험 중 하나는 많은 우리 젊은 선수들이 월드컵 무대 밟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번 우리 대표팀은 9차례 역대 월드컵 대표팀 중 가장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습니다.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 23명의 평균 나이는 25세입니다. 흥민(레버쿠젠)씨가 22살로 가장 어리지요. 가장 고참은 곽태휘(알 힐랄) 선수로 33살입니다. 선수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김영권(광저우, 24) 구자철(25, 마인츠) 기성용(25, 선덜랜드), 이청용(26, 볼턴) 등 전체적으로 20대 중반입니다. 이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선수들은 앞으로 4년 후엔 경험과 기량을 고루 갖춘 역전의 용사들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세계무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신진기예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명문인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의 '코리안 삼인방'인 백승호(17)와 이승우(16), 장결희(16)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승우는 '리틀 메시', 백승호는 '리틀 이니에스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유럽 청소년 무대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4년 동안 유럽무대에서 실력과 경험을 더 쌓는다면 이들 앞에 붙은 '리틀'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는 기량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류승우(21, 레버쿠젠), 김동수(20, 함부르크), 윤재용(19, 데포르티보), 이강인(16, 발렌시아) 등 빛나는 선수들이 수두룩합니다. 4년 후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이 엔트리 구성을 할 때 누구를 뽑아야 할 지 정말 머리가 아플 겁니다. 그땐 아무나 눈감고 골라도 '월드 클래스 드림팀'이 구성될 거 같아요. 2018년엔 사상 첫 원정 8강이 아니라 첫 원정 4강을 목표로 정해도 될 듯 싶어요.
흥민씨, 세상의 이치가 참 묘합니다. 어떤 절망 혹은 실망 속에서도 늘 희망의 빛이 드리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 16강행 좌절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의 빛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손흥민' 이라는 보석이 발하는 빛입니다. 흥민씨 통해 4년 후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의 밝은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러고 보니 흥민씨 이름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흥할 흥(興)'에 '백성 민(民)' 아닌가요. 요즘 우리 국민들 이래저래 우울합니다. 참담한 세월호 사건도 겪었고, 황당한 정치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거기에 월드컵 16강행마저 좌절됐습니다. 앞으로 우리 흥민씨 주축이 돼서 우리 국민들이 흥을 낼 수 있도록 멋진 플레이 이어가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뜹니다.
아레나 데 상파울루 경기장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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