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10

"남미에선 우승 못하는 유럽팀 징크스 이번엔 깰까요"

2014-07-10 11:34:57 게재

상파울루에서 독일 클로제와 아르헨 로메로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행 티켓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간 일전이 벌어진 10일(한국시간) 우리나라의 서울역에 해당하는 상파울루 루스역 앞에서 양국 응원단들이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이때는 경기 시작 4시간 쯤 전이에요. 다들 자기나라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겠죠.

 

아무리 승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팬들이 얼굴에 자기나라 국기문양을 그린 채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복장과 헤어스타일 역시 아르헨티나 팬들은 하늘색과 하얀색, 네덜란드 팬들은 온통 오렌지 색깔로 도배를 했네요.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의 거미손 세르히오 로메로, 그리고 월드컵 통산 최다득점 16호 골의 주인공 미로슬라프 클로제!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전차 군단' 독일이 대륙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14일 새벽 5시(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 위치한 이스타지우 마라카낭에서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 챔피언이 가려지게 됩니다. 1986년 이후 28년 만에 결승에 오른 아르헨티나가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차지할까요. 아니면 2002년 이후 12년 만에 결승에 오른 독일이 네 번째 정상에 오를까요. 누구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되겠어요.

우선 이제까지 양 팀 전적을 한 번 살펴볼까요.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끈 아르헨티나가 3대2로 승리를 거뒀지요. 4년 뒤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독일이 1대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번씩 장군멍군을 한 셈이지요. 역대 전적에서는 아르헨티나가 9승5무6패로 다소 우세하더군요. 그렇지만 월드컵 무대에서는 6차례 맞붙어 독일이 4승1무1패로 앞섰습니다.

누가 이길까요. 요하임 뢰브 감독이 이끄는 독일은 일단 체력적으로 우세합니다. 특별한 부상자도 없다는 것도 독일의 강점입니다.

네덜란드 응원객들이 상파울루 루스역에서 기차놀이를 하면서 자국의 응원을 기원합니다. 한 응원객의 손에 월드컵 모형이 들려있네요.


반면 알레한드르 사베야 감독이 지휘하는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120분 혈투를 벌인 게 큰 부담이 될 거 같네요. 준결승에서 부상으로 빠졌던 앙헬 디 마리아(레알 마드리드)의 출전 여부도 큰 관심을 모으는 부분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남미에서 열린 4번의 월드컵에서는 모두 남미국가들이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1930 우루과이 월드컵, 1950 브라질 월드컵, 1962 칠레 월드컵,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에서 유럽 국가들은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 징크스가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어요.

멋진 선방을 한 세르히오 로메로!

축구 경기에서 '손'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군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결승으로 이끈 것은 간판 공격수 메시의 '발'이 아닌 골키퍼 로메로의 '손'이었어요. 아르헨티나는 10일(한국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4대2로 승리했습니다. 24년 만에 감격적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을 한 거지요.

놀랄 만큼 침착한 방어였어요. 당신은 네덜란드의 첫 번째 키커 론 플라르(아스톤 빌라)의 슈팅을 정확하게 저지한 데 이어 세 번째 키커로 나선 베슬레이 스네이더르(갈라타사라이)의 골마저 완벽하게 막아내더군요. 당신의 선방 덕에 아르헨티나는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24년 만에 월드컵 결승 무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경기 최고 수훈 선수에게 돌아가는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셨더군요. 거듭 축하드립니다.
 

월드컵 응원객들을 보면 참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용한 복장들이 많아요. 네덜란드의 한 여성이 머리에는 네덜란드 국기를 꽂고, 의상은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 색상인 오렌지색으로 치장을 했네요.

4강에만 오르면 100% 결승 진출! 아르헨티나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또 한 번 확인한 기분좋은 기록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등 4강까지 올라갔던 대회에서는 모두 결승까지 올랐더라고요. 참 진기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이젠 축구계의 전설이 된 클로제!

세상에 이변도 이런 이변이 또 있을까요. 아마 클로제 당신도 놀랐을 거예요. 어떤 축구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했고, 어떤 점쟁이도 내다보지 못했고, 어떤 도박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이변 중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 수십억 축구팬들 중 몇 명이나 이런 이변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브라질이 9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에 위치한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1대 7로 패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축구를 자부하는 브라질이 자국 주최의 월드컵 대회에서, 자기 나라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무후무한 굴욕적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전차군단' 독일선수들의 발끝에서 정말 참담하게 무너지더군요. 브라질은 전반 28분 만에 무려 다섯 골이나 먹었습니다. 후반에도 두 골이나 더 허용했지요. 경기 종료 무렵인 후반 45분 오스카의 골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무참하게 영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아, 그야말로 '미네이랑의 비극'이었습니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은 이번에 '역대 개최국이 치른 경기 중 최대 점수 차 패배'라는 부끄러운 신기록을 월드컵 역사에 더했습니다.

84년 월드컵 역사에서 개최국이 6점차로 패배한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8강전에서 스위스가 오스트라이에 5대7로 졌지요.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7골을 허용했지만, 그래도 5골이나 넣었습니다.

브라질 국민들이 펑펑 울더군요. 자기나라 축구가 세계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지요. 그 충격과 슬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브라질 사람들의 일상은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나는 '축구의 나라' 입니다. 월드컵 우승컵을 5회나 들어 올린 나라이지요. '축구 황제' 펠레와 카카, 소크라테스, 호마리우, 둥가,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카푸, 카를로스, 네이마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줄줄이 배출한 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제20회 월드컵은 브라질이 주최하는 대회였잖아요. 홈그라운드의 이점까지 업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입니다. 물론 공수의 핵인 네이마르 다 실바와 티아구 실바의 결장으로 브라질 전력에 큰 공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7골이나 내 준다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변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월드컵의 최대이변은 코스타리카의 8강 진출이 될 거라고 봤습니다. D조의 최약체로 평가를 받던 코스타리카가 우승후보로 꼽히던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를 각각 3대1, 1대0으로 제압하면서 일찌감치 16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와 맞붙은 16강전에서는 연장까지 120분 혈투 끝에 1-1 무승부를 거둔 뒤 승부차기에서 5대3으로 승리했지요. 당시 8강전과 4강전, 결승전 등 경기를 줄줄이 남겨 놓았었지만 코스타리카의 돌풍을 넘어 설 수 있는 이변은 그 이후로도 일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게 세상일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클로제!

당신은 이제 세계 축구사의 전설 반열에 올랐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브라질전에서 당신은 월드컵 통산 최다득점 기록인 16번째 골을 작렬시켰습니다. 독일이 1대0으로 앞서고 있던 전반 23분 당신은 토니 크로스의 침투 패스를 토마스 뮐러가 논스톱으로 연결해 주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슛을 날렸습니다. 브라질의 줄리우 세자르 골키퍼가 공을 쳐냈지만, 당신은 다시 굴러 나오는 공을 득달같이 차 넣더군요. 호나우두가 보유하고 있던 월드컵 통산 최다골(15골) 기록을 당신이 거머쥐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클로제, 승부의 세계는 참 비정하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눈물은 누군가의 웃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 독일 대표팀의 플레이는 신들린 듯 했어요. 전반 11분 독일의 토마스 뮐러가 토니 크로스가 올려준 코너킥을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브라질의 골망을 흔들더군요. 전반 23분부터 6분간 독일은 당신 클로제와 토니 크로스의 연속 골, 사미 케디라의 골을 잇달아 성공시켰습니다. 이어 후반전에도 독일은 공세를 늦추지 않더군요. 결국 안드레 쉬를레가 2골을 추가하면서 7대1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로써 독일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에 당한 0대2 패배의 아픔을 12년 만에 깨끗하게 설욕을 한 거지요.

운명은 장난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날 당신이 월드컵 통산 최다득점인 16호 골을 넣던 장면을 호나우두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이미 은퇴한 호나우두는 브라질 방송국 '글로보'의 해설자로서 현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호나우두 입장에서는 자기나라 대표팀이 경기에서 대패를 하고, 자신의 월드컵 통산 최다득점 기록까지 빼앗기는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했지요.

브라질의 참패가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일까요. 당신의 위대한 기록이 사람들의 시선을 상대적으로 덜 끌고 있는 거 같아요. 정말 대단한 기록을 달성하셨어요. 4회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요.
 

자매로 보이는 아르헨티나 응원객들이 나란히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과 가발이 참 잘 어울리는 아가씨들입니다. 옆에 함께 한 남자는 두 아가씨 중 누구의 애인일까요.

정말 놀라운 건 당신의 나이가 올해 무려 서른여섯 살이라는 사실이에요. 이번 대표팀에 포함된 걸 놓고서 월드컵 신기록 달성을 위한 무리한 선발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도 받으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골로서 그런 의혹들을 일축해버렸습니다. 젊은 선수들 못지않게 정말 부지런히 뛰더라고요. 이번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도 후반 13분 안드레 쉬를레와 교체되기까지 58분 동안 6.698km를 뛰었지요. 어떤 공격수 못지않은 활동량 이었습니다.

클로제, 그리고 로메로!

오늘 14일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멋진 명승부를 기대합니다. 클로제는 17호, 18호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세요. 앞으로 누구도 깨기 힘든 월드컵 통산 최고 득점 기록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로메로는 한 골도 내주지 마세요. 철벽 방어로 결승전에서도 경기 최고 수훈 선수에게 돌아가는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에게 덕담을 한다는 게 아주 모순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네요.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모'와 '순', 즉 '창'과 '방패'네요. 아무튼 두 분 모두 선전하기를 빕니다. 파이팅!

상파울루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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