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11
"통일독일의 첫 월드컵 우승 축하드려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님께
정말 풍성한 수확입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차 군단' 독일이 진기한 기록들을 깨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다른 대륙에서 온 나라가 단 한 차례도 남미대륙에선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깼지요. 지금까지 남미에서 열린 4번의 월드컵 즉 1930 우루과이월드컵, 1950 브라질월드컵, 1962 칠레월드컵,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 대회에서 유럽 국가들은 번번이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 오랜 징크스를 이번에 당신의 '전차 군단'이 시원하게 깨 버렸습니다.
독일은 이제 월드컵 통산 4회 우승으로 통산 5회 최다 우승을 자랑하는 브라질에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독일의 결승 진출 횟수는 통산 8번째로 월드컵 최고 기록입니다. 브라질은 이제까지 7번 결승에 올랐지요. 독일은 또한 월드컵 본선 통산 득점 최다골인 224골 기록도 새로 세웠습니다. 2010년 남아공 대회 때까지 브라질이 221골로 60년 이상을 이 부분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지요. 이탈리아와 나란히 유럽 최다 우승 국가라는 기록도 새로 세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은 2006년 이탈리아, 2010년 스페인에 이어 3개 대회 연속 유럽 국가 우승이라는 기록도 만들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펠레의 저주'도 이겨냈잖아요. 잘 아시는 것처럼 '펠레의 저주'란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가 우승을 예측하는 팀마다 우승을 놓치는 걸 말하지요. 펠레는 브라질월드컵 개막 전부터 시종일관 독일의 우승을 점쳤는데 그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펠레가 처음으로 제대로 예측을 한 거지요. 독일은 '펠레의 저주'를 처음으로 깬 우승팀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개인기록으로는 독일의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36, 라치오)가 월드컵 통산 16호골을 터트리면서 기존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갖고 있던 기록을 깨버렸지요. 브라질 안방에서 기존 기록을 보유하나 호나우두가 지니고 있던 기록을 깼으니 브라질 관중들이나 호나우두의 속이 얼마나 쓰렸을까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님,
얼마나 기쁘십니까.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독일은 1954년, 1972년, 1990년 월드컵 우승 이후 24년 만에 통산 4번째 월드컵 정상에 올랐습니다. 마라카낭 경기장에 직접 오셔서 그 역사적 승리의 순간을 지켜보셨지요. 마리오 괴체가 연장 후반 결승골을 터트리던 순간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뻐하시더군요. 얼마나 좋으셨으면 우승 세리모니 이후 남성 락커룸까지 들어가 선수들을 치하하셨겠어요. 메수트 외질은 상의를 벗고 있던데요. 격식을 따지지 않는 총리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번은 독일의 첫 번째 우승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승은 모두 서독의 우승이었지요. 동서독이 통일된 1990년 10월3일 이후 첫 번째 우승을 기록한 거니까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독일통일 전인 6월8일부터 7월8일까지 열렸고, 이때 우승팀은 독일이 아닌 서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통일독일의 첫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로 남을 수 있게 됐습니다.
총리님과 함께 승리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까요. 경기 전 독일팀에는 여러 가지 불운들이 겹쳤지요. 우선 미드필더인 사미 캐디라가 갑작스러운 허벅지 부상으로 뛸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크라머가 긴급 투입돼 갑작스럽게 결승전 무대를 밟게 됐지요. 그러나 크라머마저도 전반 31분 볼 경합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수비수 에스키엘 가라이와 충돌하면서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게 됐지요.
반면 '명불허전' 이라는 말 그대로 불세출의 톱스타인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만만치 않은 공세를 펼쳤습니다. 독일의 중원은 메시를 중심으로 한 아르헨티나의 빠른 공격 전개에 흔들렸습니다. 이때 요아힘 뢰브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두 가지 승부수를 던졌어요. 크라머를 대신해 공격수 쉬를레를 투입한 것과 후반 막판에 클로제 대신 괴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쉬를레와 괴체는 측면을 오가면서 아르헨티나를 흔들었고 결국 선제 결승골을 합작해 냈습니다. 문자 그대로 환상적인 슛이었습니다. 클로제 대신 투입된 괴체는 연장전 후반 7분 쉬를레가 왼쪽을 돌파한 뒤 올린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은 뒤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 왼발 논스톱 킥을 날렸습니다. 그 멋진 하프발리슛은 골 망 구석으로 정확히 꽂혔지요.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괴체는 조별리그 가나전에서는 선제골을 터뜨리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였지만 프로팀에서 보인 활약에 못 미친다는 비판 속에 벤치로 물러났습니다. 그 자리를 역전노장 클로제가 채웠고, 클로제는 서른여섯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그라운드를 휘젓더니 결국 월드컵 통산 최다골인 16호골까지 터트리는 월드컵의 새 기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메르켈 총리님,
월드컵 무대는 별들이 뜨고 지는 무대입니다. 영원한 스타는 없습니다.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별들이 물러가고, 새 시대를 이끌 새로운 별들이 등장하는 세대교체의 장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섭리이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새롭게 떠오른 별로 많은 전문가들이 콜롬비아의 '주포' 하메스 로드리게스(AS 모나코) 꼽더군요. 로드리게스는 조별리그부터 8강전까지 5경기 연속 골을 터트렸습니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23세)에 월드컵 6골 기록 선수가 됐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콜롬비아가 8강에서 탈락했는데도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새로운 스타로 등극했지요. 5골을 넣은 독일의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는 2대회 연속 득점왕을 노렸지만 4강전과 결승전에서 골을 추가하지 못하고 득점 순위 2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메시와 네덜란드 로벤 반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각각 4골을 넣어 득점 순위를 이었습니다.
'메신' 혹은 '메시아'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메시는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대회 최우수상인 '골든볼'을 거머쥐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이번 대회 4골 1도움을 기록한 메시는 조별리그부터 16강전까지 4경기 연속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면서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지요.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브라질) 역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였지요. 네이마르는 크로아티아와의 대회 개막전이자 월드컵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팀에 승리를 안겼습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2골을 더한 네이마르는 단숨에 득점 선두권으로 올라섰지요. 그러나 콜롬비아와의 8강전에서 상대 수비수 후안 카밀로 수니가(29·나폴리)에게 등을 가격당한 네이마르는 척추 부상을 입고 월드컵을 접어야 했습니다. 네이마르의 부상은 안타깝게도 브라질도 몰락으로 이어졌어요.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에 1대7로 패한 뒤 네덜란드와의 3·4위 결정전에서도 0대3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네이마르의 빈 자리를 실감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아트사커의 부활에 핵심 역할을 포그바는 '현대 영플레이어상'에 선정됐더군요. 멤피스 데파이(네덜란드), 라파엘 바란(프랑스) 등이 경합했지만 최종 수상자로 포그바가 그 영예를 안았습니다. 포그바는 중원사령관으로 맹활약하면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포그바 등이 포진한 중원은 새로운 프랑스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태극전사' 손흥민(22·레버쿠젠)도 세계 축구팬들의 주목을 받은 월드컵 스타입니다. 손흥민은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한국이 0대3으로 끌려가던 후반 5분 만회골을 뽑아내며 경기의 흐름을 뒤집었습니다. 알제리 전에 앞서 열린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손흥민은 위협적인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괴롭혔습니다. 손흥민은 무득점에 그쳤음에도 경기 최우수선수(MOM)에 선정됐지요. 비록 한국은 1무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팀 성적과 관계없이 손흥민은 빛났습니다.
이 밖에도 아리언 로번(30·바이에른 뮌헨)과 로빈 판 페르시(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이번 월드컵에서 '월드 클래스급'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뜨는 별이 있으면 지는 별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는 별로는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와 우루과이의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를 꼽더군요.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를 받던 카시야스는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무려 5골이나 헌납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어 칠레전에서도 2실점한 카시야스는 결국 마지막 호주전에서는 출전조차 하지 못하는 수모를 맛봤야 했습니다. 우루과이의 '핵이빨' 루이스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유벤투스)의 어깨를 무는 기행을 저질러 브라질월드컵에서 퇴출당하기도 했고요.
33살 동갑내기로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비드 비야(뉴욕시티)와 사비 알론소(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요. 2005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한 비야는 그동안 A매치 97경기에 나서 59골을 넣었던 선수지요. 스페인 A매치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답니다. 알론소는 A매치에 113회나 출전해 센추리 클럽(A매치 100회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요. 월드컵 역대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쓴 '콜롬비아의 수문장' 파리드 몬드라곤(43·데포르티보 칼리) 골키퍼도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장갑을 벗었습니다.
메르켈 총리님, 지난 한 달 동안 이어진 월드컵 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2018년 러시아대회를 기약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할 시간입니다. 총리님, 다시 한 번 독일의 4번째 월드컵 우승 축하드립니다. 독일의 월드컵 네 번째 우승도 부럽지만 통일독일의 첫 번째 우승이라는 사실이 저는 참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대한민국도 남북한 통일팀으로 출전해 월드컵 우승컵을 치켜들 날이 오겠지요. 그땐 메르켈 총리님이 통일 대한민국의 우승 축하해 주실거지요. 다시 한 번 독일의 월드컵 우승 축하드립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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