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마지막회)
"태극전사들 '탄탄한 원팀'으로 만들어 주세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차기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원팀'이 '원맨'을 눌렀다! 2014 브라질월드컵 결산을 한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전술로 무장한 유럽팀들이 걸출한 슈퍼스타에 의존한 남미팀들을 눌렀다는 거지요. 이번 월드컵 성적표는 유럽의 완승입니다. 전체적으로 고른 기량의 선수들로 구성된 독일이 리오넬 메시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버틴 아르헨티나를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1대0으로 제압하고 4번째 우승컵을 치켜들었습니다. 이에 앞선 4강전에서 독일은 '삼바축구의 신성'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결장한 브라질을 무려 7대1로 제압했지요. '원맨'이 빠진 브라질은 너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더군요.
다른 우승후보들에 비해 슈퍼스타급 선수가 없었던 네덜란드는 브라질과의 3-4위전에서 23명 엔트리에 오른 선수를 모두 기용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3대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5승 2무의 무패기록으로 3위에 올랐습니다. 네덜란드는 대회 4강전 승부차기에서 아르헨티나에 패배했지만 공식 기록상 승부차기 패배는 무승부로 기록됩니다. 독일과 네덜란드 모두 우뚝한 스타플레이어는 없었지만 단단한 '원팀'으로 똘똘 뭉쳐 화려한 스타들을 중심으로 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눌렀던 것입니다. 8강까지 오른 코스타리카와 콜롬비아의 돌풍 역시 조직력으로 무장한 '원팀'의 위력을 입증하는 사례였습니다.
아무튼 축제는 끝났습니다. 이젠 저도 보따리를 싸야 할 때가 왔네요. 그러고 보니 브라질에서 근 한 달을 포함, 중남미에서 넉 달째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열기 속에 푹 빠져 보낸 시간이었어요. 물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16강에도 올라가지 못해 실망하기는 했지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이란, 호주 등 아시아 네 나라가 단 1승도 올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축구팬들과 함께 어울리며 아주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쿠이아바, 포르투알레그리 등 브라질 여러 도시를 돌며 월드컵 경기도 즐기고, 덤으로 브라질의 속살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어느 분이 될지는 모르지만 차기 한국 축구대표 감독 자리를 맡게 될 분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홍명보 전 감독님이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겠다고 하시더니 사퇴를 하셨네요. 아무래도 이번 월드컵 성적 부진이 몹시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가깝게는 아시안컵을 대비해야 하고, 멀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루 빨리 훌륭한 후임 감독님을 모시는 작업을 서둘러야겠지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기술위원회 개편과 반성을 통한 도약, 빠른 후임 감독 선임 등 세 가지를 국민들에게 약속하셨더군요. 어느 분이 오실지 몹시 궁금합니다.
이제 우리 축구팀은 새로운 사령탑을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지켜본 국민들은 우리 대표팀의 대대적인 혁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요. 이 시점에서 독일대표팀을 브라질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요하임 뢰브 감독과 네덜란드 대표팀을 무패의 기록으로 3위에 올린 루이스 반 할 감독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메시나 네이마르 등 월드 클래스 슈퍼스타들을 지니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 대표팀으로서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원팀' 전략으로부터 배울게 참 많을 것입니다.
먼저 뢰브 감독부터 살펴볼까요. 뢰브 감독은 선수 시절엔 그리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뢰브 감독이 1981년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범근 SBS 해설위원과 한 솥밥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차 위원은 '차붐'을 일으키면서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였죠. 뢰브 감독은 차범근 위원보다 7살 어린 갓 스물을 넘긴 선수였는데 차 위원의 백업선수로 뛰었다고 합니다. 차 위원의 활약 때문에 벤치신세만 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뢰브 감독은 결국 프랑크푸르트에서 1년여 남짓 활약하다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합니다.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뢰브 감독이 조국 독일에 4번째 우승컵을 안겨 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뢰브 감독은 2004년 독일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6년부터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뢰브 감독이 취임하기 전 독일 대표팀은 들쭉날쭉 불안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대3으로 참패한 데 이어, 유로2000대회에서는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결승에 진출하면서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다시 '유로 2004'에서는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하고 맙니다. 독일축구는 이런 불안정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긴 안목에서의 처방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국 각지에 축구센터를 지어 꿈나무들을 단계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 간 독일 축구가 유소년에 투자한 금액은 자그마치 1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 부럽고 놀라운 건 독일축구계가 선수 시절 성인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지 못했던 뢰브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는 사실이지요. 물론 일부에서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독일축구협회는 뢰브의 청사진에 만족감을 표했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뢰브 감독은 1군의 경기력을 꾸준하게 유지시키는 한편 리그에서 배출하는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대표팀에 불러들였지요. 독일 대표팀 스쿼드의 질과 양을 동시에 확보해 나간 것입니다. 뢰브 감독은 유로2008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과 유로2012에서 잇따라 독일을 4강에 진출시키면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면서 뢰브 감독은 자신의 황금기를 활짝 열어 제치게 됩니다. 선수시절의 화려한 이력과 학연을 따지지 않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능력을 믿고 그에게 대표팀 감독을 맡긴 독일국민들에게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 준 것입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토마스 뮐러, 마누엘 노이어, 토니 크로스, 마츠 후멜스, 제롬 보아텡, 베네딕트 회베데스,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안드레 쉬를레, 마리오 괴체는 뢰브 감독의 리더십이 키워낸 스타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님, 위기에 처한 우리 대표팀이 공부해야 할 또 한 분의 명장은 바로 반 할 네덜란드 감독입니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명장 중의 명장이지요. 반 할 감독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23명 엔트리 전원 출전' 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보통 필드 플레이어가 전원 출전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골키퍼 3명까지 모두 뛰게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나 루이스 반할 감독은 브라질과의 3-4위 전에서 3대0으로 승기를 잡자, 후반 추가시간에 팀의 3번째 골키퍼였던 포름을 교체로 투입, 23명의 선수가 모두 월드컵 무대를 밟게 해주었습니다.
반 할 감독은 이번에 시스템 축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지요. 반 할 감독은 명성이나 커리어에 상관없이 철저하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위주로 선수들을 선발했습니다. 아무리 출중한 선수라도 전체 팀워크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빼버렸습니다. '원맨'이 아닌 '원팀' 우선의 전략을 고수한 것이지요. 네덜란드 대표팀은 세대교체 중이었고, 내세울만한 화려한 슈퍼스타도 없는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조련사인 반 할 감독은 포백과 스리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5대1로 격파하는가 하면 현란한 '삼바축구'의 브라질마저 3대0으로 완파해 버렸습니다.
감독님, 먼 미래를 내다보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꿈나무 육성의 저변을 확대하는 일일 것입니다. 독일과 네덜란드가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도 오랜 세월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독일 축구협회는 시, 주, 국가 단위별로 선수들의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독일의 유소년축구 등록 선수는 180만 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이처럼 튼튼한 유소년축구의 토대는 분데스리가의 성장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경쟁력을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 역시 독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미래의 희망인 유소년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고, 아약스와 PSV 에인트호번이라는 양대 클럽은 유소년 선수들을 발굴했습니다. 멤피스 데파이, 달레이 블린트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국가대표로 성장을 한 케이스이지요.
감독님, 정말 어려운 시기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시겠네요. '원맨' 보다는 '원팀'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힘주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을 조직력과 투지로 똘똘 뭉친 '원팀'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때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탈수 있겠지요. 그 때 다시 '오, 필승 코리아!' 함께 외칠 것을 기약하면서 이만 총총.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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