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8
"우승후보들 줄줄이 꺾은 코스타리카 돌풍 짜릿해요"
'8강 이변' 연출한 핀토 감독님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최대 이변은 무엇일까요. 누구라도 코스타리카의 8강 진출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8강전과 4강전, 결승전 등 경기가 줄줄이 남아 있지만 결국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코스타리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팀들은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우승후보들입니다. 누가 누구를 이기거나 지더라고 하등 이변이라고 할 수 없는 상대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코스타리카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승리를 보탠다면 이제까지의 이변에 또 다른 이변을 보태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경기 후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코스타리카 선수 7명이나 도핑 테스트를 했다면서요. 보통 한 팀에 2명 정도 도핑 테스트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7명씩이나 했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지요. 코스타리카의 8강 진출은 그만큼 믿기 어려운 이변이었음을 반증하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핀토 코스타리카 대표팀 감독님,
8강 진출 축하드립니다. 중미의 작은 나라인 코스타리카가 이번 월드컵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이변에 전 세계 축구팬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인구 약 470만 명으로 남한 인구의 1/10에 불과한 소국입니다. 면적은 5만1100㎢로 남한의 절반 수준입니다. 그 작은 나라 어디에서 월드컵 8강 진출의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걸까요. 코스타리카는 축구를 향한 열정으로 뒤덮인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FIFA 통계에 따르면 축구선수가 총 108만명(정식등록 5만명)에 클럽이 254개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뿌리가 튼튼하니 나무가 무성할 수밖에 없지요.
이번 월드컵 8강에는 코스타리카와 개최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중남미 4개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 4개국이 올랐습니다. 큰 그림으로 보자면 중남미 축구와 유럽축구의 맞대결 구도가 형성된 셈입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를 차지한 국가들이 그대로 8강에 올랐습니다. 정말 하나같이 강팀들 간 빅 매치입니다. 통산 6번째 우승을 노리는 브라질과 '신흥강호' 콜롬비아 간 격돌은 네이마르 다 실바(4골, 브라질)와 하메스 로드리게스(5골, 콜롬비아)간 득점왕 대결로도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아트 사커' 프랑스와 '전차군단' 독일도 숙명의 한 판 대결을 벌입니다.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와 고른 기량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벨기에의 대결도 섣부른 예측을 불허합니다.
코스타리카는 이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4강 티켓을 놓고 일전을 벌이시겠군요. 모두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네덜란드가 앞선다고 합니다. FIFA 랭킹을 봐도 네덜란드가 15위, 코스타리카가 28위입니다. 네덜란드는 로빈 반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르옌 로번(바이에른 뮌헨)이 각각 3골씩을 터트렸습니다. 완전 물이 올라 있더라고요.
코스타리카는 D조에서 최약체로 평가를 받던 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우승후보로 꼽히던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우루과이 등이 포진한 '죽음의 조'였지요.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2승1무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우루과이를 3대1로 제압하는 이변을 낳더니 이탈리아마저 1대0으로 눌렀습니다.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거지요. 잉글랜드와도 0대0 대등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리스와 맞붙은 16강전에서는 연장까지 120분 혈투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었습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 5대3으로 승리했지요. 후반 21분 오스카 두아레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해 수적 열세에 몰렸지만 1실점으로 막아내는 놀라운 투지를 보였습니다.
핀토 감독님, 이번 코스타리카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 한국 축구팀의 4강 신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한국 축구팀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당신의 인생역정 또한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하나씩 살펴볼까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 대표팀도 지금 코스타리카처럼 D조에 편성됐었습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코스타리카가 2승1무의 성적을 거둔 것처럼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도 2승1무의 성적을 거두면서 16강에 올랐었답니다.
당시 D조에는 한국(FIFA 랭킹 40위)과 폴란드(38위), 미국(13위), 포르투갈(5위)이 배정되었습니다. 한국은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면서 1954년 월드컵 첫 출전 이후 사상 첫 승을 거두었지요. 이어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히던 포르투갈까지 1대0으로 꺾으면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16강전에서는 세계 랭킹 6위인 이탈리아를 2대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8강에 올랐지요. 8강전에서 만난 팀은 또 다른 우승후보인 스페인이었습니다. 전후반은 물론 연장혈투에서도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요.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격전 끝에 5대3으로 스페인마저 누르면서 4강 진출이라는 극적인 이변을 연출했었지요.
이제 당신과 히딩크 감독님의 비슷한 점을 찾아볼까요. 두 분이 하신 말씀이 어쩌면 그리 비슷할까요. 2002년 한일?q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님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난 아직도 배고프다(I'm still hungry)"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핀토 감독님도 16강전에서 그리스를 누른 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우린 여전히 배고프다(Story goes on and we're hungry for more)"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또한 당신과 히딩크 감독님 모두 3-4-3 포진을 즐겨 쓰고 강한 압박과 조직력을 특징으로 하는 축구를 구사하더라고요
핀토 감독님에 대해 언론들이 쏟아 내놓는 글들을 보니 당신의 인생 역정도 히딩크 감독님과 닮아 있었어요. 두 분 모두 선수로서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대성을 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핀토 감독님은 "축구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슬펐다. 내 삶의 전부였기에 축구를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았다"고 하셨다면서요.
콜롬비아 태생인 당신은 10대 때 일찌감치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선수보다는 지도자의 길을 택했던 거지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운동생리학을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당신의 가슴 속에는 "인생 전체를 걸고 월드컵에 나서기 위해 싸우자"는 꿈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가브리엘 오초아 우리베 감독에게 선수들을 지도할 기회를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지요. 우리베 감독은 콜롬비아 프로리그에서 14번이나 우승을 이끈 명장이었습니다. 그 열정을 인정받아 당신은 콜롬비아 명문 클럽 미요나리오스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지요. 2004년 코스타리카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지만 19경기 만에 경질됐습니다. 2007년에는 콜롬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26경기 만에 물러나기도 했고요. 그러나 당신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다시 코스타리카 국가 대표팀을 이끌 기회를 잡았지요. 당신은 북중미 예선에서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를 이끌면서 국민들의 신뢰에 화답을 했습니다.
핀토 감독님, 만일 코스타리카 대표팀이 이탈리아와 우루과이, 잉글랜드에 이어 이번 8강 전에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마저 잡는다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빛낸 최고의 팀이 될 것입니다. 전 세계의 숱한 축구팬들이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핀토 감독님이 만들어가고 있는 코스타리카 대표팀의 짜릿한 돌풍 덕분에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 지고 있습니다. 핀토 감독님, 정말 멋져요! 화이팅!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2014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1)"사상 첫 원정 8강 진출 부탁해요" 2014-06-02
-(2)"본선만 올라가면 주눅드는 징크스 이번엔 극복할까" 2014-06-09
-(3)"히딩크 감독님, 한국-러시아전 때 어느 편 응원할 건가요" 2014-06-16
-(4)"근호씨 당신의 오른발에 온 국민의 염원이 꽂혔어요!" 2014-06-18
-(5)"벨기에전 끝날 때까지 대~한민국 외칠래요!"2014-06-23
-(6)"젊은 태극전사들 통해 2018 러시아월드컵 희망을 봤어요" 2014-06-27
-(7)"펠레 당신은 어느 팀을 우승후보로 꼽으시나요" 2014-07-01
-(9)"남미-유럽 자존심 격돌 판에 당신 결장 아쉬워요" 2014-07-07
-(10)"남미에선 우승 못하는 유럽팀 징크스 이번엔 깰까요" 2014-07-10
-(11)"통일독일의 첫 월드컵 우승 축하드려요" 2014-07-14
-(12)"태극전사들 '탄탄한 원팀'으로 만들어 주세요" 201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