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1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 부탁해요"
보고타에서 홍명보 감독님께
정말 진풍경이었어요. 젊은 청소년들은 물론 백발의 할아버지와 퉁퉁한 몸집의 아줌마, 아리따운 여고생, 어린 유치원생 등이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보고타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알람브라의 한적한 주택가를 산책하던 중 한 공원에서 맞닥뜨린 광경입니다. 축구장 두 개 쯤은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잔디공원 이곳저곳에서 10여 개 그룹이 공을 차고 있더라고요. 11명씩은 아니더라도 8~9명씩으로 팀을 만들어 시합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만인의 만인을 위한 축구였어요.
잔디밭 한 쪽에서 한 아리따운 여학생이 혼자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더군요. 그 옆에는 여학생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잔디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학생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여학생은 'FAIR PLAY'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여학생이 공 다루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어요. 잠시 지켜봤답니다. 발과 무릎으로 공을 차올리며 노는데 20~30개 정도 찰 때까지 공을 땅에 떨어트리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발재간이었어요.
여학생이 갑자기 공차는 걸 중단하더군요. 제 시선이 신경 쓰였나 봅니다. 수줍게 웃으면서 엄마 아빠 옆 잔디 위에 앉더라고요. 막시밀리아노 콜베 고등학교 10학년에 재학 중인 앙헬리카라는 16세 소녀였습니다. 치아교정용 보철을 의식하지 않고 활짝 웃는 모습이 아주 예쁘더군요. FAIR PLAY라는 클럽의 여자 청소년팀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였습니다. 지난 해 무려 13골이나 넣은 골잡이더라고요. AS 모나코에서 뛰고 있는 라다멜 팔카오도 FAIR PLAY 출신이라면 자랑을 했습니다.
홍명보 감독님, 안녕하세요.
드디어 '결전의 땅' 브라질로 가는 장도에 오르셨다지요.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바라보는 마음이 뿌듯하기만 합니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전지훈련을 잘 치르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빼먹었군요. 저는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입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안방에서 건넌방 건너듯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올해 저의 순례지로는 2014브라질월드컵이 열리는 중남미 대륙을 선택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중남미는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더라고요. 그곳에서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 훨훨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밖에요. 그런 멋진 구경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배낭을 꾸려서 중남미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중남미 각국의 월드컵 열기가 정말 뜨겁더라고요. 저 혼자서 감상하기엔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내일신문의 '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중남미에서 띄우는 편지'를 통해 제가 보고 느낀 중남미의 축구 열기를 고국에 계신 여러분들께 전하기로 했습니다. 중남미 대륙은 아마존 원시 밀림과 열정의 삼바 및 탱고 춤, 그리고 잉카와 마야, 아즈텍 등 찬란한 옛 문명의 유적들을 품고 있는 매혹적인 대륙이지요. 앞으로 축구 이야기 뿐 아니라 중남미 대륙의 야들야들한 속살들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홍 감독님이 제 편지의 첫 주인공이 되신 거지요. 제 편지의 첫 무대는 콜롬비아랍니다.
그럼 서두에서 시작한 콜롬비아 축구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볼까요. 알람브라 지역의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할아버지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해 예순 살이라고 하는 에르모라는 분이었어요. 주말마다 운동장에 나와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에르모 할아버지는 콜롬비아 축구가 16년 동안 절치부심한 덕에 다시 우승을 노리는 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됐다고 하시더군요.
콜롬비아는 그리스, 코트디부아르, 일본 등과 C조에 속해 있습니다. 오는 15일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20일에는 코트디부아르와 경기를 갖습니다. 에르모 할아버지는 지금 콜롬비아의 전력이라면 두 경기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무난히 16강까지는 진출할 것이라고 호언을 하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콜롬비아는 세계랭킹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호입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 세계 랭킹으로는 스페인과 독일, 포르투갈, 브라질에 이어 다섯 번째로 꼽히는 강팀입니다. AS모나코에서 공격수로 맹활약하고 있는 라다멜 팔카오를 비롯해 잭슨 마르티네스(포르투), 프레디 구아린(인터밀란), 크리스티안 자파타(AC밀란) 등 유럽 명문팀에서 뛰는 A급 선수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팔카오는 크리스티아누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와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에 대적할 유일한 공격수로 꼽힐 만큼 발군의 기량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타이지요. 177㎝에 73㎏의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뛰어난 위치선정, 어떤 상황에서도 슈팅을 만들어내는 동물적인 감각, 여기에 뛰어난 헤딩 능력까지 갖춘 무결점 스트라이커라고 합니다. 1999년 8월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한 팔카오는 불과 13살의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선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팔카오는 프랑스 리그컵 몽츠 도르 아제르게스 전에서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로 인해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지요. 당초 팔카오의 월드컵 참가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었지요. 하지만 지난 4월 수술을 받고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 월드컵 출전이 가능할 거라고 하네요.
측면 공격수인 로드리게스는 '콜롬비아의 호날두'라 불린다지요. 호날두처럼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에 더해 창조적인 패스 감각을 갖춘 선수라는 거지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공을 전방 공격수 바로 앞으로 가져다주는 감각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이지요.
쿠아드라도는 우측 중원을 번개처럼 오르내리는 선수지요. 공을 드리블 하면서 침투하는 능력이 가히 일품입니다.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구아린도 몸싸움에 강하고 정확한 패스 능력까지 지녔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미의 강호인 콜롬비아가 무려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고 하네요. 이에 비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8회 연속 본선무대를 밟는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에요. 콜롬비아 사람들은 자기나라 축구팀이 실력으로는 세계최강인데 운이 되게 없다고 믿고 있더라고요.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콜롬비아 사람들에겐 악몽이었습니다. 당시 콜롬비아는 사자갈기 머리로 유명했던 카를로스 발데라마와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등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를 앞세운 강력한 우승후보였지요. '축구황제' 펠레도 콜롬비아를 우승 후보 0순위로 꼽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이었습니다.
왜 그 유명한 자살골 사건 아시죠. 미국과의 경기에서 수비수인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어이없는 자살골로 패배를 하고 말았지요. 당시 콜롬비아 대표팀이 귀국했을 때 분노한 한 시민이 에스코바르를 총으로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었습니다. 콜롬비아는 1998년 다시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이전 팀의 조직력과 실력이 예전과는 훨씬 약체로 변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는 콜롬비아 축구의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콜롬비아 국민들은 16년 만의 본선 진출과 함께 이제 그 암흑기를 벗어났다고 믿고 있더라고요.
홍 감독님,
콜롬비아 거리를 산보하는 건 여러 가지로 기분 좋은 일이예요. 적도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해발 2600m 고원에 위치한 덕에 기분 좋은 상춘의 날씨를 보이고 있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콜롬비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길거리에서 사진 한 번 같이 찍자며 수줍게 다가오는 아가씨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남미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라고 하더군요.
보고타 거리에는 노란색 콜롬비아 대표님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대표팀 유니폼은 노란색 상의와 푸른색 하의, 빨강 양말로 이루어져 있어요. 콜롬비아 국기 색깔을 본떠서 만든 거랍니다. 얼핏 보면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과 비슷하지만 유니폼 측면에 줄무늬를 넣은 게 다르더군요. 콜롬비아 사람들은 A매치가 있는 날이면 직장인들이 콜롬비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회사에 출근을 할 정도로 축구사랑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성인이면 누구나 한 두 개 쯤 국가대표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콜롬비아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는 텅 비어버린다고 합니다. 직장인들도 손을 놓고 경기를 보기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고요.
홍 감독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꼴이 됐네요. 부디 온 국민의 염원인 사상 첫 원정 8강의 꿈을 브라질에서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브라질까지 달려가서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할 겁니다. 감독님과 선수 전원이 부상 없이 건강하게 경기를 치르기를 기원합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2014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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