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7

"펠레 당신은 어느 팀을 우승후보로 꼽으시나요"

2014-07-01 12:28:03 게재

산토스 과루자섬에서 '축구황제' 펠레에게

'축구황제' 펠레님이 17년 동안 활동하셨던 산투스FC의 근거지인 산투스에 왔어요. 과루자 섬의 백사장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밀려오는 푸른 파도는 한 폭의 풍경화였습니다. 한 어린이가 아빠와 백사장에서 공을 차고 있네요. 브라질에서는 축구가 생활의 일부 인것처럼 보입니다.


대한민국 16강 진출 실패의 속상한 마음도 달랠 겸 산투스에 왔습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이군요. 까마득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밀려오는 푸른 파도는 한 폭의 풍경화였습니다. 산투스는 브라질 동남 지방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지요. 과거 커피 수출을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이고, 지금은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의 외항입니다. 산투스 과루자 섬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곳이 바로 당신이 17년 동안 몸을 담았던 브라질 축구명문 산투스FC의 본거지더군요. 고운 밀가루를 깔아 놓은 듯 한 산투스 과루자 백사장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축구황제' 펠레님 안녕하십니까.
 

2014 브라질 월드컵 마스코트인 플레코와 함께 한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네요. 플레코는 포르투갈어로 축구(futebol)와 태환경(ecologia)의 합성어랍니다.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제 20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지켜보는 마음이 남 다르시겠습니다. 1950년 6월 제4회 월드컵개최 이후 무려 64년 만에 다시 당신의 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으니까요. 더군다나 당신은 1958년 스웨덴대회와 1962년 칠레대회, 1970년 멕시코대회 등 브라질의 월드컵 3회 우승을 이끈 주역이잖아요. 얼마나 감회가 깊으십니까.

축구계의 어른답게 한 말씀 하셨더군요. 우루과이 루이스 수아레스가 지난 25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나타우의 에스타디오 다스 두 나스에서 열린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D조 3차전에서 경기 중 상대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의 왼쪽 어깨를 물어뜯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자체 징계위원회를 꾸린 FIFA(국제축구연맹)는 수아레스에게 A매치 9경기 출전 정지와 4개월간 선수 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물론 브라질월드컵에서도 그를 퇴출시켰고요. 이에 대해 펠레님은 "지금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봐왔지만 월드컵에서 선수가 다른 선수를 문 것은 처음 본다"면서 "FIFA의 징계 결정은 당연하며 앞으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하셨지요. 당신의 한 마디는 다른 누구의 말보다도 큰 위엄과 무게로 다가옵니다.

펠레님, 콜롬비아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통렬한 발리슛 보셨나요. 우루과이전에서 터진 결승골입니다. 로드리게스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몰아넣었습니다. 이번 대회 통산 다섯 골로 득점왕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요. 16강전으로 돌입하면서 득점왕 경쟁도 가열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네이마르 다 실바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독일의 토마스 뮐러 등 세계 최고의 골잡이들이 모두 네 골씩을 기록하면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출현은 정말 뜻밖인 거 같아요. 올해 스물세 살의 어린 나이인데다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는 선수잖아요. 공격수도 아니고 미드필더인 로드리게스를 득점왕 후보로 생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요.
 

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바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네요. 브라질 축구의 경쟁력은 바다에 들어가서도 축구공을 가지고 놀 정도의 열정에서 나오는 가 봅니다.

혹시라도 그들과 왕년의 당신과 실력을 마음속으로 라도 비교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당신보다 기량이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후배가 있으신지요. 아, 기분이 나쁘시겠군요. 제가 보기에도 당신과 필적할 만한 인물은 이번 대회는 물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거 같아요. 공식적으로도 당신이 '역대 월드컵 최고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지난 19일 미국 ESPN이 발표한 '역대 월드컵 최고의 선수 20명'에서 1위에 올랐으니까요. 당신에 이어 디에고 마라도나(54, 아르헨티나)와 요한 크루이프(67, 네덜란드), 푸스카스(2006년 79세로 사망, 헝가리), 지네딘 지단(42, 프랑스) 등이 당신의 뒤를 이었습니다.

펠레님, 당신의 기록들을 한 번 살펴볼까. 펠레님은 1956년 9월 불과 열다섯 살의 나이로 산토스 FC팀을 통해 데뷔를 한 이후 1977년 미국 코스모스팀에서 37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하기 까지 통산 1364경기에 출전해 1282골을 기록했습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17살의 어린 나이에 당신은 이미 브라질을 대표하는 스타였지요. 웨일즈와의 8강전에서 기록한 대회 역사상 최연소 득점포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의 활약은 프랑스와의 4강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지요. 프랑스 수비진을 농락하면서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이 역시 대회 역사상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입니다. 당신의 활약에 힘입어 브라질은 프랑스를 5-2로 누르고 결승에 올랐고요.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당신은 질풍이었습니다. 바람처럼 달려서 벌처럼 쏘았지요. 당신이 연거푸 터트린 두 골에 스웨덴 관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지요. 17세라는 나이에 당신은 축구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겁니다.

이후에도 1962년과 1963년에 열린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산투스의 우승을 견인했고, 1998년 1월 20일, 산투스가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10,000골을 돌파하는 공을 세웠지요.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월드컵 통산 100호 골 축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1999년엔 IOC에 의해 당신에게 수여한 '세기의 운동선수' 칭호가 오히려 밋밋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빛나는 활약이었지요.

젊은이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과루자 해안을 걷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변에 아름다운 청춘들입니다.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요즘 브라질 치안이 좋지 않아서 강도나 절도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은데 치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살아있는 전설 펠레님이라는 겁니다. 강도나 납치범을 만났을 때 당신이 모자를 벗으면서 '나야, 나' 하면 어떤 흉악범이라도 '아이고, 펠레님인줄 미처 모르고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하고는 가진 돈도 주고 간다고 우스개소리를 하더군요.

그런데 요즘 브라질 대표팀 경기 지켜보면서 많이 답답하시겠습니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멕시코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0대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칠레와의 16강전 경기에서도 혼쭐이 났지요. 연장전 포함 120분 간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 끝에 겨우 3대2로 8강에 오를 수 있었으니까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악동' 이더군요. 마라도나는 2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팬들이 들으면 속이 쓰릴 법한 이야기를 쏟아 냈더군요. 그는 "브라질의 경기력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네이마르는 후반 되니까 보이지도 않더라. 칠레가 이기는 경기였다. 결과만 브라질이 승리했을 뿐이다. 브라질은 강팀답지 않게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더라고요. 마라도나는 이어 브라질의 8강 맞상대인 콜롬비아에 대해 "매우 민첩하고 매력적인 축구를 한다. 모든 선수가 잘 뛰어다니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 듯이 흥분된다"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브라질 사람들이 엄청 긴장하더군요. 5일 새벽5시(한국시간) 치러지는 8강전 상대인 콜롬비아가 이번 대회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펠레님은 어느 팀을 우승후보로 꼽으시나요. 그러고 보니 방금 제가 한 질문은 드려서는 안 되는 질문이네요. 당신이 우승후보로 꼽거나 칭찬을 한 팀은 대부분 불행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 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그래서 '펠레의 저주'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펠레의 저주'는 벌써 시작이 됐더군요. 당신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보로 독일과 스페인을 꼽았지요. 지난번 월드컵 우승국으로 브라질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스페인은 예선 1차전에서 네덜란드에 5대1로 대패했습니다. 네덜란드가 아무리 강팀이라고 하더라도 스페인 대표팀이 5점 이상 내준 것은 1963년 스코틀랜드에 6-2로 진 뒤 처음입니다. 스페인은 결국 허무하게 16강에조차 들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거참 신통하지요. 당신은 2010년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3국을 우승후보로 꼽았습니다. 그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떨어졌고, 독일은 4강전에서 스페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당신은 브라질이 1라운드조차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을 퍼부었지요. 브라질이 지역 예선에서 워낙 부진했기 때문에 그런 평을 내놓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해 브라질은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신 스스로도 '펠레의 저주'를 인식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난 1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를 방문한 자리에서 2014년 월드컵 우승 후보로 브라질, 스페인, 독일을 꼽았었지요. 그러나 월드컵 시작을 2개월 앞둔 4월에는 스페인과 독일이 우승후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혹시라도 '펠레의 저주'가 당신의 조국 브라질에 씌울까봐 두려웠던 건 아닌가요. 당신은 참 애국심이 깊은 분이십니다. 펠레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당신은 브라질의 영웅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영웅이랍니다.

산토스 과루자섬에서 '축구황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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