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4

"근호씨 당신의 오른발에 온 국민의 염원이 꽂혔어요!"

2014-06-18 00:00:01 게재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대표팀 첫 골 주인공 이근호 선수에게

처음엔 이곳이 정말로 월드컵이 열리는 도시인가 의문이 갈 정도로 브라질 쿠이아바 거리는 조용했습니다. 잠자는 쿠이아바 거리를 일깨운 건 한국 축구대표팀의 든든한 후원군인 붉은 악마였습니다. 18일 오전(한국시간)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와의 1차전이 열리는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붉은악마 원정 응원단과 교민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면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네요.


거대한 용광로 같았어요. 세상에 어디에 이처럼 건강하고 뜨거운 에너지로 펄펄 넘치는 용광로가 또 있을까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우리 축구 팬들과 "러시아"를 응원하는 러시아 팬, 그 와중에서 "브라질리아"를 외치는 홈 팬들의 함성이 뒤엉키더라고요. 무서운 에너지가 구장 안에 가득 들어찼습니다.

 후반 23분 당신의 강력한 오른 발 중거리 슛이 러시아 골네트를 갈랐습니다. 교체 투입된 지 불과 12분이 지난 후반 23분 센터 서클에서 공을 잡아 단독 돌파한 뒤 페널티아크 오른쪽에서 날린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날렸습니다. 그게 그대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대표팀이 기록한 첫 골로 연결이 되더군요. 얼마나 강렬한 슛이었으면 러시아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의 펀칭을 뚫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을까요.

근호씨가 러시아전에서 터트린 통렬한 중거리 슛은 전 세계에서 날아온 한국 응원단 덕이라는 점도 알아 주셔야 해요.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한국 대표팀 12번째 선수인 우리 응원단들이 태극기를 들고 "오, 필승코리아!"를 외치고 있네요.

 

러시아 팬들도 많이 몰려 왔더라고요. 이 더운 날씨에 러시아 털모자를 쓰고 응원하려면 쪄 죽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축구 이야기 하면 '약방의 감초'라고 할 수 있는 '호랑나비' 김흥국씨가 이번에도 쿠이아바까지 응원을 왔습니다.


이근호씨,

브라질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열린 H조 1차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터진 그대의 중거리 슛은 정말 후련했습니다.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꿈꿔왔고 기다렸던 무대라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중거리 슛에 대해서는 훈련할 때 슈팅감이 좋아서 자신감 있게 찼다. 남은 경기도 해왔던 것처럼 하겠다. 알제리 전을 꼭 이기도록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4년 전 남아공 월드컵에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던 한을 이번에 시원하게 풀어버렸네요. 현재 근호씨 월급이 14만9000원이라면서요. 연봉으로 따지면 178만8000원이네요.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최고 연봉자(742억원)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교했을 때 무려 4만 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서요. 물론 상무프로축구단에 소속된 군인 신분이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가장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가 터트린 황금 골로 기록되지 않을까요.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최저 연봉 기록도 세우셨고요.

그동안 근호씨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되돌아봅니다. 근호씨는 2005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주전 경쟁에 밀려 2007년 대구로 트레이드됐었지요. 대구에서 첫 시즌 10골을 넣으며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6월 29일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A대표팀에 데뷔도 했고요. 지난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도 펄펄 날면서 대표팀을 본선으로 이끄는 주역으로 활동한 걸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찬사까지 듣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본선 직전 유럽무대 진출 실패와 함께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남아공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근호씨는 그런 정도의 시련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국내무대로 복귀해 울산 현대를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며 화려하게 다시 일어섰지요. 그 결과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대표팀에 합류를 했습니다. 지난해 9월 아이티 평가전과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에 브라질 무대에서 일을 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뜨거운 염원이 당신의 오른 발에 집중되는 순간이었어요. '오 필승 코리아!'를 저도 모르게 외쳤답니다. 너무 행복했거든요.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말씀 하신 대로 알제리 전에서는 무승부가 아니라 통쾌한 승리를 안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포르투 알레그레까지 가서 열심히 응원할 게요.

근호씨, 이번 중거리 슛은 전 세계에서 날아온 한국 응원단 덕이라는 점도 알아 주셔야 해요. 쿠이아바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대단한 응원열기였답니다. 처음엔 도대체 이곳이 월드컵이 열리는 도시 맞는 걸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죽어 있었거든요. 한 낮의 거리엔 정적이 흐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차분하더라고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 쿠이아바는 남위 15°36′, 서경 56°06′입니다. 남미 대륙의 정중앙 부근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지요. 브라질 중서부에는 마투그로수라는 광대한 고원지대가 자리하고 있어요. 쿠이아바는 마투그로수 고원의 남사면 자락에 위치한 도시랍니다. 열대 사바나 기후 지역으로 브라질에서도 가장 덥고 습한 대도시 중의 하나로 꼽힌답니다. 인근의 기마랑이스(Guimaraes) 산맥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를 막기 때문에 그렇다는 군요. 쿠이아바 인근의 하천들이 모여 파라과이 강을 만든다고 합니다. 18세기 초 금광이 발견된 이래 취락이 세워졌다고 하는군요. 인구 54만 명이 조금 넘는 조용한 도시입니다.

월드컵이 경기가 열리기 4시간 전쯤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경기장 주변엔 주차장도 썰렁하게 비어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를 않더라고요. 경기진행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더라면, 몇 시간 후 이곳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장소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분위기였답니다.

붉은 악마 15년 차라는 장종수(72) 할아버지가 얼굴에 박주영씨 문신을 하고 있네요. 평소 잠잠하다가도 큰 경기 때마다 한 방씩 터트려주던 주영씨가 결국 이번 월드컵에서도 '킬러 본능'을 드러낼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잠자던 쿠이아바의 정적을 일깨운 건 바로 전 세계에서 날아 온 한국응원단들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쿠이아바 거리에 등장한 건 재파라과이 한인회 동포들이었어요. 대형 태극기와 '즐겨라 대한민국' 이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파라과이 동포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따당땅땅 따~앙땅 꽹과리와 두둥두~웅 북소리에 맞춰 우리 응원단의 함성이 함께 하기 시작했지요. 조용하던 쿠이아바가 한 순간에 발칵 뒤집힐 수밖에요. 시들시들하던 거리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면서 한 순간에 축제의 거리로 뒤바꾸었습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의 이웃나라이지만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이곳 쿠이아바까지는 무려 1600㎞나 되는 거리랍니다. 파라과이 동포 60여명이 그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24시간 달려왔다고 하네요. 정말 그 분들 정성이 눈물겹지 않습니까. 김광진(47) 파라과이 한인회 회장님 말씀에 따르면 어제 아침 8시 아순시온을 출발해서 오늘 아침 8시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우리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서 24시간을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달려온 거였어요. 한국선수들이 이웃나라까지 오는 데 응원을 오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대표팀이 그동안 첫 경기는 항상 이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꼭 승리를 할 거라고 했습니다.

거리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브라질 사람들도 꽤 많이 만날 수 있어요.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응원나온 이분 헤어스타일 멋지죠.

 재파라과이 한인회 응원단이 한 번 뒤집어 놓은 쿠이아바 거리를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은 건 붉은 악마 응원단이었습니다. 120여 명의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대형 태극기와 '대한민국 승리한다' '투혼' 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붉은 악마 깃발을 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거에요. 붉은 악마를 자칭타칭 한국 대표팀 12번째 선수라고 한다면서요. 붉은 유니폼을 입은 붉은 악마들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불끈 솟더라고요.

근호씨, 전 국민이 함께 하는 월드컵입니다. 물론 전 세계인의 축제이지요. 남은 포르투 알레그레와 상파울루 경기에서도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 기분 그대로 16강 넘어 8강까지 쭉 갑시다! 대~한민국!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2014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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