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학교'를 만나다│④ 원인진 영락고등학교 교장
'책' 무기로 대입 바늘구멍 뚫는다
독후활동 축적, 생활기록부·면접 강점 … "교사 개입 줄이고 자발성 극대화"
입시 위주 교육에 치여 평소 책을 읽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학교장이 도서관·독서 정책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가에 따라 학생들의 독서율은 높아질 수 있다. 수업과 연계되는 독서수업·자료 검색 수업, 영어도서관 활용 수업도 가능하다. 내일신문은 도서관·독서 정책에 집중하는 학교를 취재, 모범 사례를 공유한다. <편집자주>
"입시에 몰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희 학교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독서 동아리에 참여해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하면서 진로 탐색을 하고 대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이과 학생들이 정말 책을 읽지 않는데 과학 책을 읽고 대입 자기소개서를 쓸 때 활용하고 면접을 볼 때도 책 내용을 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입 전형에 활용되는 생활기록부에도 독서 활동이 들어갑니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독서 동아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난달 30일 교장실에서 만난 원인진 영락고등학교 교장의 말이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영락고등학교는 1학년의 87%가 자발적으로 독서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 2학년은 62%, 3학년은 66% 이상이 독서 동아리에 참여한다. 책을 통해 성장하고 진로 탐색을 하는 독서교육 모범 사례다.
전공서적 읽고 대입 합격도
영락고등학교는 2015년부터 독서 동아리를 운영했다. 2015년 34팀 198명이 참여하던 독서 동아리가 2017년에는 72팀 376명으로 증가했다. 영락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처럼 독서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입' 때문이다.
요즘 입시는 학교 생활기록부 평가 등 다양한 전형으로 구성된다. 면접도 심층적·다층적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스스로 이 모든 다양한 전형들을 준비하기도, 준비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도 쉽지 않다. 종종 '고액 입시 컨설팅'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락고등학교는 '책'을 무기로 내세웠다.
학생들은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읽은 책을 바탕으로 다양한 독후 활동을 진행한다. 토론 봉사활동 캠페인 등이 그것이다. 독서 동아리 활동만 꾸준히 해도 이런 활동들이 쌓여 학교 생활기록부의 다양한 영역에 기술할 수 있는 경험으로 축적된다.
원 교장은 "현실적인 얘기인데 독서 동아리 활동과 대입을 연결해 학생들이 책을 읽도록 했다"면서 "한 학생은 대입 면접에서 교수가 전공서적을 읽은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어떻게 이런 책을 읽었느냐'고 해서 해당 대학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책이었지만 친구들과 토론하며 직접 읽은 책이기에 해당 학생은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었다"면서 "독서를 하면서 교양을 쌓고 어휘력이 늘어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이를 통해 대입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지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 교장은 학생들이 벌인 캠페인 중 인상적인 활동으로 '말랄라 프로젝트'를 꼽았다. 탈레반이 장악한 파키스탄 북부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말랄라'라는 소녀에 대한 책을 읽은 학생들은 교육받지 못하는 소녀들의 얘기를 전하며 팔찌를 만들어 판매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나중엔 수익을 한 단체에 기부했다.
학생들, 모든 것을 스스로
영락고등학교 학생들의 독서 동아리는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장점이다. 원 교장은 "학생들의 자발성은 극대화하고 교사의 개입은 줄이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독서 활동에 조언을 하지만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스스로 원하는 친구들과 동아리를 꾸린다.
보통 진로 탐색과 독서 동아리를 연결시키기 때문에 2~3학년 학생들은 '역사' '과학' 등 자신이 원하는 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함께 한다. 독후 활동을 선택해 진행하는 것도 학생 자율에 맡긴다.
진정한 자율성은 학생들 스스로 예산을 집행하는 데서 비롯한다. 영락고등학교는 처음 독서 동아리당 20만원씩 학교 예산을 배정했다가, 학생들의 적극적 활동에 50만원으로 늘렸다. 학생들은 이 돈을 책을 구입한다거나 답사·캠페인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 계획 아래 사용한다.
원 교장은 "학생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면서 "독서 동아리마다 토론의 수준은 다르지만 수업 시간에 졸던 학생들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집중하는 것을 보면 학교도 더 지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학교
독서 동아리를 위한 예산 마련은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가 교비에서 우선적으로 독서 동아리 예산을 배정했지만 이로는 부족해 교육청과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각종 지원사업에 응모한 끝에 관악혁신교육지구 특화사업인 꿈실은 책마을 사업, 서울시교육청의 행복날개동아리 사업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사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서 동아리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영락고등학교는 독서 동아리가 구입하는 책을 모두 관악구에 있는 지역서점에서 구입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서점의 상생인 셈이다.
원 교장은 "교사들이 관악혁신교육지구 교육두레 독서분과에서 활동하며 각 학교들을 컨설팅하고 관악구가 축제를 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서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지역서점과 거래하는 것은, 적은 돈이라도 고사 상태인 지역서점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서 동아리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후배 독서 동아리를 지도하러 학교에 온다"면서 "이럴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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