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 비정상 건설산업 (10)직접시공과 적정임금이 대안

"직접시공제로 건설부조리 해결 … 미국은 적정임금제"

2015-03-30 11:31:40 게재

[전문가 대담]
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산업연구실장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
이정훈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진행 - 장병호 내일신문 기획특집팀장


불공정 하도급, 산재사망 1위, 외국인 잠식….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정상화'는 과연 가능할까.

한국 건설산업 현장을 지켜봐 온 전문가 3명이 18일 서울 신문로 내일신문 회의실에 모였다.

전문가들은 모든 공사에 대한 직접시공 의무화, 그리고 적정임금제 도입이 국내 건설업의 얽히고 꼬인 문제를 풀 열쇠라고 입을 모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현장 노동자 착취하는 하도급 구조

장병호 팀장(이하 장) - 건설업계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이 매우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인이 뭔가.
 

신영철 단장

신영철 단장(이하 신) - 건설산업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치권의 영향도 크다. 종사자도 많다. 그런데 관련법이 제대로 돼 있냐면 그렇지 않다.

국내 건설산업은 유독 '중층화' 돼 있다.

대개 원·하도급 관계만 말하는데, 실은 상중하로 계급화돼 있다. 기술직만 봐도 발주처·원청·하도급 소속에 따라 실력과 무관하게 힘이 정해지고 관행들이 묶여 들어간다.

나는 발주처(정부)가 가장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런 모순구조를 몰랐을까. 가장 문제를 잘 알고, 바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문제를 해결치 않고 있다.

이정훈 실장(이하 이) - 포스코건설 수사가 한창이다. 핵심은 비자금이다. 건설은 항상 비자금이 문제다. 투명하지 않으니 인건비, 자재비, 장비대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

노동자가 피땀흘려 번 대가가 업체와 발주처, 정치인, 관료들에 의해 착취되고 있는 셈이다.

중층구조상 가장 '밑바닥', 즉 최일선 노동자와 관련된 정책, 제도, 법규들이 방치돼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심규범 실장(이하 심) - 20년 동안 주로 건설노동자 기능인력을 연구했다.

여러 기관들을 거치며 사회보험, 노동조건, 산업안전, 교육, 취업알선 등 대부분의 영역을 훑었는데, 각 분야마다 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있는데 유독 건설현장만 가보면 엉뚱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나마 95년도 고용보험 도입 이전에는 "노가다는 원래 그런거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고용보험 안에는 실업급여가 있다. 실업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건설노동자다. 그런데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급여를 못 받고 있어 추적해 봤다.

현장에서 일을 잘 하는 노동자가 대접 받아야 하고, 이런 노동자를 많이 보유한 업체가 대접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컨대 산재가 발생하면 신고해야 하는데 성실히 신고하면 불이익, 숨기면 재해율이 낮아져 이익을 본다.

해방 후 건설을 60년 해 왔음에도 최일선, 도급구조 최말단까지 미치는 제도가 거의 없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는 입낙찰 제도, 국가계약법 개선 등을 해 왔지만 보통 발주자(국가) 원청의 관계에 대한 것일 뿐이었지 그 밑 단계는 못했다.

그나마 시도된 것으로 재하도급 금지,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가 꼽히는데 이마저 현장에서는 편법으로 넘기고 있다.

'상부'만 건드려서는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 현장을 건드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 업계 분위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상층부가 상대적으로 여유 있을 수 있는 것은 제도적인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힘없고 약한 '밑바닥'을 보호하는 것은 없었다. 도입돼도 유명무실해지기 일쑤였다.

일례로 국가계약법상 원청은 가격경쟁을 제한하고 있는데 하청끼리는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싼 사람을 쓸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가 가동되고 있다.

오히려 영리법인에 대해서는 경쟁을 시켜서 국제경쟁력 있는 업체를 살려야 하는데 거꾸로 영리법인은 보호하고 말단은 경쟁을 시킨다.

사진 이재걸 기자


■적정임금으로 '제살깎기' 없애야

장 - 현장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 1년에 2차례 정해지는 시중노임단가는 8시간 기준이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해 보면 하루에 보통 9.5시간 일한다. 초과수당 고려하면 9.5시간 임금이 8시간보다 높아야 하는데 현실에선 거꾸로인 경우가 많다.

시중노임단가가 실제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지급돼야 할 돈이 아닌, 발주자가 설계 과정에서 예산을 따지는 기준 정도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수주 경쟁에서 후려치기 가장 쉬운 게 노무비다. 원수급자는 하수급자가 낮게 들어올 걸 알고 값을 깎는다. 그러면 하수급자는 임금을 후려쳐서 맞춘다.

장 - 과거엔 왜 그런 일이 없었나.

- 폐쇄경제라 외국노동자가 적었다. 지금은 정부가 통제 못하는 불법체류자들이 낮은 임금을 수용하면서 들어온다.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격경쟁력이 높다. 시중노임단가보다도 임금이 낮아지는 일이 벌어지니 젊은이들은 외면하고 일자리는 고령화된다. 숙련공도 사라진다.

지금처럼 불법외국인노동자를 끼는 '제 살 깎기' 구조에서는 정상적인 임금지급이 불가능하다.

장 - 헌법에 국가의 적정임금 보장 노력의무가 있지만 법제화 시도조차 없었다.

-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정치인과 관료들이 관심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들의 관심은 '상층부'의 적정공사비에만 쏠려 있다.

최근 1년 동안 국토부·기재부 담당 국회의원이나 정책관료들 보면 원청 낙찰 금액이 깎여 나가는 부분은 상당히 우려한다. 토론회도 열고. 하지만 적정임금 애기는 한 마디도 안 한다. 70~80%는 현장 노동자인데 이들을 외면하고 어떻게 국민의 대변자라 하겠나.

- 예컨데 발주자가 계산해 보니 100원짜리 공사가 있다. 그런데 예산절감 한다고 90원에 내놓는다. 그런데 원청은 70원에 들어간다. 발주자는 90원보다 싸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하청은 더 깎아서 50~60원에 들어온다.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값싼 외국인. 게다가 불법체류자면 응당 줘야 할 돈마저 더 깎을 수 있다. 업체가 원래 악덕이라서가 아니라 몇 번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보험도 퇴직금도 챙겨줄 필요 없으니 임금삭감 경쟁이 더 쉽다.

장 - 종합심사며 표준시장 단가며 적정공사비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있는데.

- 현장 노동자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보완 없이 하는 '제값받기'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제값받기에 실패하면 공사부실이 따라온다.

하루에 벽돌을 800장 쌓으면 줄자로 찬찬히 재가며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도급이 50%에 받아가선 2000장을 죽어라 쌓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전은커녕 길이, 높이 측정도 안한다.

제값을 주지 않고 작업을 시키면 편법이 동원되고 속도가 강조되니 안전이 뒷전일 수밖에 없다.

장 - 임금삭감과 체불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없나.

- 적정임금 법제화다. 강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정임금 수준은 시중노임단가를 참고할 수 있다.

문제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공표되고 있으니 일단 가이드라인으로 쓰자는 생각이다. 안정적이진 않아도 일정정도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건설산업에서 '낙수효과'는 전혀 없다고 지적해왔다. 실제 조사 데이터도 있고 노동자들도 경험적으로 학습이 돼 있다.

하도급구조를 방치한 정부의 제값주기 대책은 특혜다. 산업을 오히려 망가뜨릴 위험이 있다.

- 임금체불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노동부 발표만 3000억원이 넘었다. 신고되지 않은 것 까지 5000~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체불로 잡히지 않는 건설장비 등 까지 따지면 더 많다. 자체 설문조사 등에 따르면 연간 8000억원에서 1조원 정도가 체불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지급확인·지급보장 제도가 일부 검토중이거나 시행중이다.

법적 보호가 없는 장비체불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독일, 내외국인 동일임금 적용하니 불체자 줄어

장 - 불법체류자 문제가 심각하다.

- 노조 내부에서는 대략 40~5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수도권에만 80% 이상이다. 주로 목수다. 적정임금도 그렇지만 투명화가 되지 않으면 정부 정책의 근거가 전혀 없다. 외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노무인력이 정확히 얼마나 투입되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안 잡히는데 노무비, 산재, 적정공사비 산출이 어떻게 되겠나

- 외국인노동자를 직접 겨냥하는 방식은 민감할 수 있다. 바람직한 수순은 적정임금 법제화부터다. 외국인을 쓰든, 내국인을 쓰든 적정임금을 지급하라고 정해두면 기업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의사소통·관리 부담이 적은 내국인에 대한 선호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최소한 세금 쓰는 공사만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심규범 실장

- 합법 규모를 적정화해서 내국인과 동등대우를 해주고 불법은 완전히 근절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독일 건설노조가 1996년 파업을 했다. EU 통합 등으로 동유럽에서 인력이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임금을 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오히려 외국인노동자 유입이 적정 수준으로 통제됐다.

장 - 결국 정부의 의지문제인 것 같다.

- 감시자를 때려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현장 소장 등이 내국인을 골라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고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하면 된다. 이를 위해 논의된 게 미국 PW(적정임금)제다.

2010년 고용부 연구용역 하면서 청와대 행정과 기재부, 국토부, 고용부 공무원, 대한변협 등과 함께 미국에 출장 갔다.

당신들은 낙찰률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낙찰률 공개 않는다. 하지만 90%대 될 것"이라며 PW제를 이유로 들더라.

장 - 어떻게 그렇게 되나.

- 우리는 설계 과정에서 노무비를 산출하지만 미국은 노동자가 실제 받아가야 할 임금을 조사해서 먼저 못박고 공사비를 정한다.

이를 안 지키면 계약해지, 입찰금지 등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내린다. 물론 공공공사에 한해서다.

제 살 깎기는 불가능하다. 임금삭감이 불가능하므로 공사비를 낮추려면 공정관리 기법을 개선하거나 숙련공을 늘려서 노무량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말뿐인 기술경쟁이 실제로 이뤄지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조차 제살깎기로 인한 '시장실패'를 우려해 적정임금을 도입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정부도 시장실패 제어 위해 건산법을 만든 바 있지만 실제 보호대상인 사람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어서 변질됐다.

장 - 적정임금이 청년고용이나 산재예방에 실제 효과를 보이나

- 미국에서는 도제 프로그램 활성화도 적정임금 때문에 됐다고 한다. PW라 해도 훈련기관에 등록된 도제들은 법적으로 숙련공보다 임금을 덜 받고 일한다. 그래도 일자리가 바로 생기고 경력 쌓이면 숙련공이 될 수 있으니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창구가 된다.

미국 국토부 자료를 보면 PW 도입으로 산재 건수가 절반, 사망사고 15% 감소했다.

한국이 미국과 제도적 여건이 다른 것은 맞다. 핵심원리를 살리되 우리에 맞게끔 한국형 적정임금 제도를 도입하자는 말이다.

장 - 제도도입 시기가 대공황 때다.

- 후버 공화당이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새누리당이 해야 한다(웃음).

■하도급 때문에 국제경쟁력 추락

장 - 적정임금과 함께 건설 정상화의 또 다른 축으로 직접시공이 제시되고 있다.

신 - 하청은 떼먹고 내려주는 구조다. 하청이 종속화되고 책임감이 부실해져 날림·덤핑이 필연적이다. 이를 없애려면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건설사·시공사면 진짜 건설하고 시공하도록.

제도적으로 하도급을 허용하다보니 직접 장비 보유하고 공사하던 기업들이 다 '브로커'가 됐다.

얼마전 만난 한 전직 건설사 CEO가 한탄하더라. "시공계획서를 쓸 줄 몰라서 해외 나가면 판판이 깨진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선 하청들 계획서 짜깁기해도 관리만 하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원청 직원이 '측량'조차 할 줄 모르는 사례도 봤다.

주요 건설공정은 원청이 하는 게 맞다. 하청을 무조건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도 바꾸고 업체의 국제경쟁력 강화도 가능하다. 기능인력도 대접받는다. 소모품이 아니니까.
 

이정훈 실장

- 노동자 입장에서는 직접시공제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기대가 있다.

직접 건설을 하는 회사라면 현장 인력의 직접고용이 필수인 만큼 체불, 산재 위험이 낮아지고 삶의 질도 개선될 것으로 본다.

- 건설은 수주생산이다. 댐을 지어놓고 파는 사람은 없다.

생산물이 없다면 생산자의 정보(시공실적)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름모를 업체들에게 맡겨 만드는 생산자를 어떻게 믿나. 우리는 이도 모자라 재하도급까지 하는 지경이다.

실제 업체 중에도 "나의 시공능력을 모르겠다"고 털어놓는 곳들이 많다. 끝까지 직접 해 본 적이 없어서다.

- 쉽게 말하면 건설사 A를 믿고 공사를 맡겼는데 X, Y가 와서 일하는 격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는 하도급 승인규정이 있지만 하도급을 제한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직접시공제 도입했다고 하지만 50억 미만에서는 직접시공 체크 자체가 안 된다.

100억원 이상 중대형 재정공사에는 직접시공제를 모두 도입해야 실효성이 있다.

직접시공을 하게 되면 적정임금은 어느정도 따라오게 된다. 이 외에도 불공정하도급, 체불, 부실공사 문제 등 건설현장 부조리의 80%는 해소될 것이다.

- 서류상으로는 직접시공비율을 높여 계획을 잡아놓고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돈만 더 떼 가는 이른바 '위장직영' 업체들도 있다.

원청이 고용보험 피보험자 자료를 꼭 사후제출토록 하는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건설산업이 무너져가고 있다. 지금이 직접시공과 적정임금제로 산업을 회생시키고 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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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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