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비정상 건설산업 (8) 방치된 건설장비운전원
설계할 때만 '직접고용' … 저임금·체불·산재 '사각지대'
30만명 추산, 정부는 '나몰라라' … 산재보험료 1조8천억원 내고도 보장 못받아
덤프트럭 운전경력 30년인 P씨는 얼마 후면 60세가 된다. 하루 10시간, 한 달에 20일씩 일하지만 경비를 빼면 월 순수입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당시 한 달 평균수입과 같은 수준이다. 숙련도는 고사하고 물가상승분조차 반영되지 않은 액수다.
그는 일을 건별로 받아 처리하는 이른바 '탕뛰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가경쟁이 치열해 수입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덤프트럭 기사 K씨는 2011년 4월 작업중 차량이 뒤집어지면서 운전석에서 튕겨져 나와 전치 6개월의 부상을 입었다. 그는 직접고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고 현장 소장의 업무상과실도 무죄판정을 받자 손배소를 제기했다.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K씨는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정부 공식통계조차 없어 = 건설장비 운전원은 일반 일용직 건설노동자와 더불어 가장 최일선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임에도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기형적인 고용계약 관행 때문에 체불과 산재로부터 보호받을 최소한의 제도장치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장비운전원을 관할하는 부처는 명목상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다.
국토교통부는 건설기계 관리 업무를 위해 건설기계관리법령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 해당되는 장비운전원에 대해 별도로 조사를 하거나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인 차주 장비운전원이 사업주에 해당되므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국내에 장비운전원이 몇 명인지 공식적인 통계를 낸 적이 없다.
국토교통부 '건설기계 현황 통계(2014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건설기계 43만대 중 주로 제조업에 쓰이는 지게차 15만6000여대를 빼면 약 27만대다. 기계 1대당 최소 1명 이상의 운전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 임대·탕뛰기 계약이 94% = 공공발주공서에서 설계는 장비운전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짜놓고 실제로는 장비임대나 불법도급에 해당하는 탕뛰기 방식으로 계약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2013년 1588명의 운전원들을 대상으로 '건설기계 실태조사 및 분석'을 실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장비운전원의 절반에 달하는 49.5%가 하루단위의 임대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2.3%는 탕뛰기를 하고 있었으며 12.6%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된 방식으로 임금을 받고 있었다. 탕뛰기는 예컨대 덤프 1대를 운반할 경우 단가를 책정해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장비운전원 P씨가 당초 건설사의 설계대로 직접고용됐다면 받아야 할 돈은 시중노임단가를 기준으로 상여금·퇴직급여충당금 등을 반영할 때 하루 8시간에 20만6000원, 한 달에 400만원이 넘는다. 10시간 일하는 경우라면 일당은 28만 3000원. 한 달에 500만원 이상에 달한다.
2~3배 이상의 급여를 손해보며 일하고 있는 셈이다.
장비운전원은 장비임대료 명목으로 턱없이 낮은 급여를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제때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설장비는 굴삭기와 덤프트럭이다. 2013년 건설노조가 이들 장비운전원에 대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체불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10명중 6명꼴이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1대당 3년 평균 체불금액은 덤프트럭 917만원 및 굴삭기 1480만원이었다. 이 액수로 전체 체불금액을 추정하면 단 2개 기종만 체불금액이 1조 7382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체불피해 방지를 위해 2013년 6월 '대여금지급보증제'를 도입했지만 올 1월까지 발급실적은 전체 건설장비(지게차 제외 27만대)의 3%대에 불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장비대금에 대한 지급보증제가 도입시행된 직후 건설기능인력에 대한 '임금지급 보증제도' 도입이 논의되기도 했다. 2013년 10월쯤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회 환노위에서 좌절된 바 있다.
◆산재보험료납부 해도 보험처리 안돼 = 공사설계 과정에서는 직접고용을 이유로 산재보험료 납부 대상에 들어가면서도 실제로는 임대·탕뛰기 계약을 맺다보니 산재처리 대상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원칙적으로 산재보험료는 지급된 보수총액에 산재보험요율을 곱해 계산한다. 하지만 건설업은 보수총액 산정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노무비율에 의한 산정방식'을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건설노조와 건설경제연구소는 '건설공사 장비운전원 산재보험 적용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장비운전원에 대한 산재보험료 과다징수액을 추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무비율에 의한 산정방식'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2001년~2013년 동안 직접노무비에 해당하는 장비운전원 명목으로 산재보험료 1조 8293억원을 징수했다.
하지만 확정보험료를 기준으로 정산하는 과정에서 임대로 운영된 장비운전원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산재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신영철 소장은 "애초 설계공사비에는 장비운전원을 직접고용 방식으로 직접노무비에 계상해 간접노무비 및 안전관리비 등을 요율대로 반영해 놓고도, 실제 현장작업은 임대방식으로 운영되었다"며 "산재보험 적용대상만 제외했을 뿐, 애초 직접고용을 전제로 계상된 간접노무비 및 안전관리비 반영분에 대하여는 (감액)정산하지 않은 불일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비운전원의 작업방식이 애초 설계와 달라졌는데도 장비운전원만 피해를 보고, 건설업체에게 반영된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가 없어 오히려 업체들만이 반사적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장비운전원을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정부(근로복지공단)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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