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비정상 건설산업 | (5)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없어
4대강 턴키 사업장, 건설노동자 59만명 퇴직금 떼먹었다
최초 계약 때보다 60% 덜 지급, '정부 추진 사업' 무색 … '하루 4천원' 퇴직공제금 제도 유명무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건설노동자들에게도 사회안전망이 있다. 퇴직금이다. 정부는 건설노동자 임금의 일부를 떼서 적립한 후 현장을 떠날 때 퇴직공제금을 지급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민간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서조차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확인 결과 이명박 정부 시절 수자원공사가 발주한 일부 공사구간의 경우 퇴직금을 지급받은 노동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전자카드 제도를 도입해 누락을 막는다는 방침이다. <편집자 주>
이명박 정부가 당시 대표적인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 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에게 지급했어야 할 '퇴직공제금'을 떼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170개 공구 중 4개 공구에서만 59만여명(누적인원 기준)분에 달하는 퇴직금이 미지급됐다.
◆퇴직공제금 지급대상 축소신고 = 퇴직공제금이란 건설노동자가 현장을 그만두거나 사망할 때 임금에서 일부 적립했다 지급하는 돈이다.
현재 적립액은 하루 4200원. 2012년 4100원에서 100원 올랐다. 매달 20일씩 1년간 일해도 지급액은 100만여원으로 국내 노동자 평균월급 223만원(통계청)의 절반도 안되지만 생계유지를 위해선 요긴한 돈이다.
17일 건설경제연구소가 한국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장 4곳의 퇴직공제금 납부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당 사업장의 퇴직공제금 중 60%에가 미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에 한 명이 일한 것으로 계산하면 무려 59만명 분이다.
연구소는 수공이 발주한 낙동강살리기 17·18·23공구, 한강살리기 6공구의 원청 도급계약에 반영된 퇴직공제부금(납부액)과 준공 당시 실제 납부된 퇴직공제부금을 비교했다.
이들 공구는 수공이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방식으로 발주했으며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입찰담합이 적발된 바 있다. 건설사는 각각 한진중공업·GS건설·대림산업·현대건설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들 공구의 최초 도급계약 시 직접노무비는 1686억원, 퇴직공제부금은 노무비의 2.3%에 해당하는 38억원이었다. 그러나 준공 도급계약 시 직접노무비는 1782억원으로 100억원가량 늘어난 반면 퇴직공제부금은 14억원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퇴직금 지급 대상자 수를 축소신고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연구소는 "각각의 공제부금을 공사 당시 기준 하루 4100원으로 나누면 퇴직금이 원래 94만명분이지만 실제 지급된 것은 59만명이 적은 35만명분"이라며 "직접노무비 증가분을 고려하면 납부 및 퇴직금 지급이 누락된 인원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구별로는 낙동강 17공구가 당초 6억5100만원 중 1억500만원만 납부해 납부율 16%로 가장 낮았으며 다음으로 한강6공구(31%), 낙동강18공구(35%), 낙동강23공구(60%) 순이었다.
이는 직접고용된 장비노동자들이 일부 있었음을 고려해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신영철 소장은 "최초 설계에는 장비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식으로 공사비를 부풀려 퇴직공제금 부과대상이 되지만 실제 작업은 임대방식에 의해 이뤄지다보니 부과대상에서 제외돼 정산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고 풀이했다.
◆발주처, 납부누락 '예산절감' 포장 = 건설노동자 퇴직공제제도가 정부 추진 사업에서부터 외면받는 실태는 계속 지적돼 왔다.
2013년 은수미(새정치연합) 의원은 LH공사 건설현장에서 퇴직공제금 납부누락율이 4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1년 정동영 당시 민주노총 건설연맹은 전년 기준 퇴직공제금 추산액이 6486억원이 돼야 하지만 실제 공제회에 납부된 돈은 3000억원에 불과하다며 3년간 누락규모가 1조원 이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정훈 건설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신고누락은 60%가 넘는다"며 "건설을 생업으로 하는 노동자의 작업일수는 200일 정도는 돼야 하는데 200일 이상 납부인원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퇴직공제금 떼먹기는 하청업체에서 주로 벌어진다.
10억원 이상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 하청업체에 신고납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건설 하청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매월 현금으로 퇴직공제금을 내지만 원청은 1달 후에 수개월자리 어음으로 결제해 준다"며 "당장 돈 한 푼이 아쉬운 우리에게 이득이 없는 공제금 납부의무를 전가하는 건 누락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원청업체로서는 납부누락이 오히려 '득'이다. 공제비가 당초 반영한 것보다 적게 납부되면 그만큼 되돌려 받기 때문이다. 미미하지만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보니 굳이 하청업체에 납부를 독려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원청이 직접 납부책임을 지는 10억원 미만 규모의 공사도 다를 바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원청업체 관계자는 "하청업체가 영세하다보니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해도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에 쫓기다보면 누락을 알면서도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영세 하청업체들은 불법체류자도 적지 않게 쓰는데 이들이 납부에 비협조적일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퇴직공제금 누락 사업장에 대해 지도하고 과태료를 물리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신 소장은 "건설노동자들에게 그나마 법으로 보장된 사회안전망이 업체 태만과 정부 관리소홀로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모든 공사에 대해 원청업체에게 신고납부 의무를 부과시켜야 '벼룩의 간'을 빼먹는 관행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대상 400만명, 지급은 22만여명
- '전자카드'로 퇴직금 누락예방 가능
["기획취재 | 비정상 건설산업]
- (1) 브로커 보호장치만 '탄탄'| 정치권·관료들이 겹겹이 보호막 유지시킨다 2015-03-03
- (2) 적정임금 법제화 논의 | 저임금에 죽어가는 건설업 … 해답은 '헌법 제32조 제1항' 2015-03-05
- (3) 건설기능인력 노령화, 산업기반 와해 | 건설현장 노동자 10명중 8명이 40대 이상 2015-03-10
- (4) 건설현장 '안전 사각지대' | 매일 2명씩 사망,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 2015-03-12
- (5)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없어] 4대강 턴키 사업장, 건설노동자 59만명 퇴직금 떼먹었다 2015-03-17
- (6) 엉터리 직접시공 의무제] '브로커' 전락한 건설사 … 정부, 반쪽짜리 법조차 '나몰라라' 2015-03-19
- (7) 외국인만 고용하는 건설현장 | 못믿을 '고용효과' … 현장엔 외국인 노동자만 바글바글 2015-03-23
- (8) 방치된 건설장비운전원] 설계할 때만 '직접고용' … 저임금·체불·산재 '사각지대' 2015-03-25
- (9) 고양이에 생선맡긴 '노임조사' | 정부공사 임금기준 20년째 건설업계가 결정 2015-03-27
- (10)직접시공과 적정임금이 대안 | "직접시공제로 건설부조리 해결 … 미국은 적정임금제"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