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 비정상 건설산업 (4) 건설현장 '안전 사각지대'

매일 2명씩 사망,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

2015-03-12 13:10:11 게재

소규모 건설현장서 산재 집중발생, 대형 현장도 은폐 만연 … 하도급만 책임지고 원청은 '솜방망이'

건설은 국내에서 가장 위험한 산업현장으로 꼽힌다. 사망자는 물론 다치는 사람이 전체 산업 최고수준이다. 원청과 하도급 업체의 불건전한 '공생' 속에서 은폐되는 산재가 많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편집자 주>

경기도에 사는 50대 건설기능직 K씨는 1990년대 초반 현장에서 추락사고를 당했다.

그는 당시 산재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추간판탈출(허리디스크)로 큰 수술을 받았는데, 회사의 종용으로 산재처리 대신 '공상처리(요양비, 휴업급여 등을 회사가 대신 지급하고 산재법 적용을 받지 않는 것)'를 했기 때문이다. 수술부위가 도지리라곤 생각지 않고 무심코 공상처리에 합의한 K씨는 2014년에 수술부위가 다시 악화돼 산재요양신청을 했지만, 산재신고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현재 K씨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한 달에 7일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전체보다 사망자 더 많아 = 건설업은 국내에서 가장 산재가 많은 업종이다. 통계에 잡힌 것만 따져도 그렇다. K씨처럼 공상처리로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건설업 사망자 수는 매년 600명 가량이다. 매일 2명꼴로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 재해통계에 따르면 2013년 숨진 전체 노동자는 1929명이다. 이 중 30%에 달하는 567명이 건설현장에서 사망했다.

건설업 다음으로 사망자가 많은 산업은 제조업(460명), 광업(380명), 운수·창고 통신업(135명) 순이다.

노동부가 집계한 건설업 노동자 수는 256만명으로 전체 노동자(1544만명)의 16% 수준이다. 제조업(377만명, 24%)보다 100만명가량 적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오히려 건설업이 제조업보다 100여명 많다.

건설 사망자는 해마다 감소와 증가를 반복하고 있지만, 다른 산업군과 비교하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2004년 779명으로 최악을 기록한 후 이듬해 반짝 감소했지만 다시 2008년까지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8년 이후 다시 감소하는 듯 하던 사망자 수는 최근 예년 수준으로 늘었다. 지난해 사망자는 다소 감소했지만 사망자 최다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엔 역부족이다.

업종별 산업재해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단일 산업 중 건설업 산재 피해자는 2만3600명으로 전체의 25%를 차지, 제조업(2만9432명, 32%)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올 2월 11일 오후 사당종합체육관 신축공사장 붕괴현장에서 119구조대원과 구조견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소규모 사업장서 집중발생 = 건설산재는 영세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대형 사업장에 비해 안전관리가 취약한 게 현실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해 10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료 징수 및 집행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규모별로 볼 때, 유독 1억원 미만 공사에서의 집행율(집행금액÷징수금액)이 126.6%를 기록,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반면 1억원 이상 공사의 집행율은 32.6%에서 38.9%에 그쳐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사망자 역시 소규모 공사에서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8~2012년 5년간 발생한 건설업 사망재해자 2728명 중 절반에 가까운 1344명이 20억원 미만 공사에서 발생했다. 5년간 사망자 수는 20억원 이상 공사의 경우 5년간 감소세를 보인 반면 20억원 미만 공사에서는 꾸준히 270명 안팎을 유지했다.


◆은폐 산재, 건보 부실 심화 = 전문가들은 대규모 공사현장 역시 숨겨진 산재사고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상처리로 은폐되는 산재가 많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실제 우리나라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망자는 1.59명(2008년 기준)으로 OECD 최다지만 산재부상자는 62.7명으로 중간그룹에 속해 은폐된 산재가 많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건설 유관기관들이 조사한 산재은폐 현황을 보면 숨겨진 산재는 적게는 전체의 56%(건설산업연구원, 2002년), 많게는 93%(대한건설정책연구원, 2008년)에 이른다.

건설정책연구원이 2009년 133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총 497건의 산재 중 공상처리된 경우가 432건으로 86.9%에 달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장은 "연구기관별로 이해관계를 고려해도 산재은폐율이 매우 높다"며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이 부실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재고질화 원인은 하도급 구조 = 원청인 대형건설사와 하도급업체의 불건전한 '공생'관계가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들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산업기본법은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안전관리자 및 건설업자에 대해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건설공사 역시 국가·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법에 따라 산재를 일으킨 건설업체에 입찰참가제한 처분 등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산재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산재 책임을 하도급업체가 지고 원청업체는 가벼운 처분을 받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건설공사에서 하도급업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다. 현장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재 신고의무도 대부분 원청이 아닌 하도급업체가 진다.

건설업 종사자들에 따르면 산재 발생 시 하도급업체는 이를 공상처리한 후 원청으로부터 그만큼의 비용을 다른 명목으로 지급받는 게 관행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게 됨에도 향후 거래 유지를 위해 은폐를 자행한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하도급 업체들이 거래를 유지하려 처벌을 무릅쓰고 산재를 숨기면 대형 건설사들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며 "영세 하도급이 영업정지를 당해도 다른 하도급을 쓰면 되니 하도급 산재예방에 그만큼 소홀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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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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