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읽는 '촛불정신'과 대선

2021-10-13 12:37:47 게재
이지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광장을 가득 메웠던 5년 전 촛불집회는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에 이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휘부도 없이 시작하여 자발적인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시민 저항이었다. 노조와 사회단체의 동원보다 인터넷 카페와 동호회의 자발적 참여가 돋보였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넘쳐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에게 무엇을 남겼나

내일신문의 이번 조사가 말해 주는 것처럼, 국민은 여전히 촛불집회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민주주의나 정치권에 대해서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고 느낀다.

촛불집회의 성과가 낮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문재인정부의 책임이 크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정부는 적폐청산을 국가적 과제로 떠안았다.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을 뜯어 고치는 일은 새로 집권한 정부들이 흔히 하는 일이다.

그러나 문정부의 문제는 '자신들은 깨끗하고 밖은 더럽다'는 식의 사고로 적폐청산이 추진되었다는 데 있다.

개혁의 주체는 자신들이고 청산할 적폐는 전 정권이며, 검찰·법원·언론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폐청산을 부른 촛불집회는 문정부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부정', '월성 1호기 원전 자료 조작', '청와대 고위직의 부동산 내로남불' 등, 일련의 사건들은 도덕적이어야 하는 문정부에 자가당착으로 다가왔다. 국민은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이 '내 편만 지키는 선택적 공정'이 아닌지 되물었다. 광장은 결국 '조국 사태'를 통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졌고, 정치의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촛불정신'을 '국민통합'으로 바라보았으면 어땠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허탈감에 빠져있는 보수진영을 끌어안으면서, 지지층을 설득하고 야당과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개혁은 다수 국민의 동의 속에서 추진되고,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쌓이지 않았을까?

이러한 상상은 군부세력과도 협상하여 민주화를 이끌었던 김영삼·김대중의 정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두 지도자의 정치 역정은 한국 민주주의가 투쟁과 타협을 통해 공고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정치의 교본이다.

촛불 5년을 경과하는 이 시점은 차기 정부의 수장을 뽑는 대통령선거를 5개월 남기고 있다. 그동안 양당의 경선과정은 한마디로 '정치적 양극화'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정당 지지층은 인물과 정책을 따지지 않고, '정권 유지'와 '정권 탈환'을 위해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다.

대형 악재가 터져도 상대의 흠만 보기 때문에 지지율은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 집단 정체성에 의존한 정당의 후보 공천은 진영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층의 선호와 거리가 먼 선택지가 본선에 올라오는 것을 의미한다. 중간층은 정치적으로 소외되며 선거에서 멀어지고, 정부가 다수 국민의 의지를 반영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벼랑으로 내몬다.

경선 불복 논란을 안은 채,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였다.

이제 국민의힘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편해졌다. 한 명의 상대에 이길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시간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본선에 후보로 나오든, 이번 대선은 질주하는 '정치의 양극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야당과 중간층에 대한 소통 의지와 능력이 유권자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조금이나마 더 야당과의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인물인지, 누가 더 중간층에 다가갈 수 있는 후보인지를 물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유권자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청년 유권자의 역할이 기대된다. 최근 선거에서 2030세대는 예년에 비해 높은 참여율을 보였고, 진영 간 대립구도에서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바뀌어야 정치가 산다. 이것이 '촛불정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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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