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기상·기후 | 인터뷰-유희동 기상청장

"범람하는 기후모델링, 불확실성 개선한다"

2022-09-05 11:17:49 게재

수치예보 한계 극복 위해 인공지능 접목 … 예산 인력 부족해도 방법은 찾으면 돼

유희동 기상청장 | △기상청 차장(2021년 1월~2022년 6월) △기획조정관(2020년 7월~2021년 1월) △부산지방기상청장(2019년 1월~2020년 6월) △예보국장(2017년 9월~2018년 12월) △관측기반국장(2017년 1월~2017년 9월)△미국 오클라호마대 기상학과 졸업(이학박사)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졸업(이학석사). 사진 이의종

"'날씨 예보 가치는 소비자의 의사결정 지원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날씨 예보가 우리 국민들의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지원할 때 두배, 세배 이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월 30일 유희동 기상청장(59)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의 예보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월초 이상기후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예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의 필요성을 주창해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 개발을 이끌어내는 등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는 업무 성향은 청장이 돼도 여전했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새로운 예보로의 전환을 앞당기고 기후모델링 신뢰도를 향상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비쳤다. 자칫 잘못하면 반발에 직면할 수 있는, 민감한 이슈지만 시민들의 높아진 기후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 청장과의 인터뷰는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이뤄졌다.

■예보 정확도는 늘 도마에 오른다.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관측자료 질을 향상시키고 수치모델을 개선하는 작업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상기상 현상에 따른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위험기상에 대한 직접 전달 체계를 만들기 위해 검토 중이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기상청이 지진 재난문자를 국민에게 직접 보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상청-옛 국민안전처-국민'이 아닌 지진 감지기관이 바로 국민들에게 전달을 하니 효율적인 면이 있었다.

행정안전부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안전이 최우선 아닌가. 개인적으로 기상청이 8월초 폭우 당시 '시간당 최대 몇 mm 비가 쏟아져 내린다'는 예측치를 제공한 게 최선인지 반성을 했다.

불확실성이 있는 예측자료가 아닌 우리가 가장 잘 알고 확실한 데이터인 관측자료를 기반으로 위험기상 정보를 해당 지역 주민에게 전달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늦어도 20분 전까지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위험기상 정보를 공유하는 게 목표다.

■예보 정책에 변화가 일어나는 건가.

IBM이나 구글이 거금을 들여서 기상회사를 인수하고 인공지능 예보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극비 사항이라 정확한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과 예보가 접목해 새로운 역사가 열릴 거라 생각한다.

수치예보도 100% 완전할 수는 없다. 태생적으로 대기를 나타내는 방정식의 한계나 초기 자료 문제 등으로 완벽한 수치예보모델이 나올 수는 없다. 제3세대 예보를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인공지능 예보를 도입하려는 거다.

수치예보는 인간이 만든 방정식을 토대로 여러 자연 현상을 슈퍼컴퓨터 등으로 계산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자체 학습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든 바둑 기보를 학습해서 인간과 겨루는 알파고도 어려웠는데, 예보는 자연의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는 만큼 최고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문제는 공무원 월급 수준으로는 최고의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모셔올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우리 기상청이 보유한 보물인 각종 기상 데이터를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마음껏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길이 열릴 거라 생각한다. 과학자인데 다양한 정보들이 담긴 기상 데이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데이터 사유화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상청 데이터는 공공재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자료이므로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기상청 식구들에게도 최대한 기상 관련 데이터를 국민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라고 늘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쓸수록 데이터 오류도 밝혀내고 더 많은 사회적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의 필요성을 처음 주장할 때도 비판이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이 두렵다고 꼭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 없지 않나. 지금에야 박수를 받지만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기상과 기후, 비슷하지만 좀 결이 다른 면이 있는데, 어떻게 업무 시너지를 높일 생각인가.

옛날에는 기후가 기상 안에 포함되는 한 분과 정도였는데 이제는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바람에 비중이 커졌다. 단기도 잘 못 맞추는데 무슨 미래 50년 100년 뒤를 예보하냐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기후변화 시대에 그 부분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어야 우리 미래 시대에 준비해야할 일들을 할 수 있지 않나.

기상청에서 8월 23~26일 성인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벌어지는 이상기상 현상들에 대한 이슈 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약 84.3%가 최근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또한 그러한 인식을 한 시점은 5년 이내가 82.2%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데이터만 봐도 기후위기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은 없다.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의 진실 여부는 이제 논쟁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관심이 높아진 만큼 너무 많은 미래 전망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어디가 잠긴다, 50년이나 100년 뒤에는 몇 ℃ 상승한다 등 많은 시나리오들이 있지만 불확실한 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기상청은 앞으로 이러한 근거 확립 부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우리 기상청이 다른 나라와 차별을 두면서 집중해야 할 일은 모델링 재현(시뮬레이션) 부분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기후를 해당 모델을 가지고 분석했더니 어느 정도 정확하다를 확인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의심 없이 미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모델링 신뢰도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재현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나도 모델링을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모델링의 불확실성이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모델링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자는 얘기다. 과거 데이터 등을 미래 기후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방법론에 적용했을 때 실제로 2020년 기후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지 재현하는 거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데이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다. 게다가 그것들을 시발점부터 지금까지 재현해 내는 데는 굉장히 고도의 추론 기술 등이 필요하다.

힘들어도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야 국민들이 위험한 상황에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 2011년 3.11 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노르웨이 대기연구소는 방사성 물질이 남서풍을 타고 한반도 전역을 뒤덮는다는 분석을 내놨다. 국민들은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고 기상청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해당 모델링 결과는 오류로 판명이 됐다.

■수장으로서 직원들이 함께 목표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고위직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월급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이 더 일을 해라'라는 말을 한다. 사람 머리는 희한하다. 어느 한 곳에 집중을 해서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실 조직이 발전하려면 좋은 멘토가 있어야 한다. 고위직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그 헌신과 열정을 보고 크게 된다. 나에게도 진기범 국장과 전임 청장 등 멘토 두 분이 있었다. 돌아가신 진 국장은 3.11 동일본 대지진 때 함께 밤을 새워가며 일본에서 방사능이 우리 쪽으로 거꾸로 넘어올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계속 검토를 했다.

당시 너무 민감한 이슈라서 행여 나중에 직원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되도록 관여를 시키지 않았다. 심신은 힘들었지만 기상청을 위해서 헌신과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다. 이런 일을 간부들이 해줬으면 하는 거다. 간부 한둘이 열정을 다하면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더 많은 후배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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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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