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부동산에서 시작된다│② 한국판 서브프라임의 전조
부동산 떠받치려 가계빚 폭탄 사실상 방치
소득증가 기어가는데 빚 조장 정책 쏟아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고공행진
'자산효과' 안 나타나고 '소비위축'만 초래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는 인식은 지난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2017년까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을 5%p 인하된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새로 출범한 2기 경제팀의 첫 작품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였다. LTV·DTI가 본격 완화된 3분기 이후 가계빚은 급증하기 시작했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3%p 가량 높아졌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목매다 가계부채 폭탄을 사실상 조장 또는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증가율 사상 최대 = 가계빚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통계인 가계신용이 고공행진하면서 금융당국은 2011년 이후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2011년 8.7%에 달했던 가계신용 증가율은 1년 만에 5.2%로 내렸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가계빚 둔화추세는 막을 내렸다. 2013년에는 가계신용 증가율이 6.0%로 늘었고 빚 권유 정책이 쏟아진 2014년에는 6.6%로 더 높아졌다.
특히 지난 한 해동안 늘어난 가계빚은 67조6000억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과 겹치는 3~4분기 증가액이 50조7000억원으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4분기 증가액 29조8000억원은 분기증가액 기준 역대 최고다. 빚 권하는 정책이 빛을 발한 셈이다.
빚 권유 정책이 가장 잘 먹힌 곳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었다. 가지고 있는 담보(주택)는 똑같은데 빚을 더 얻을 수 있는데다 사상 최저 금리 덕분에 이자도 적으니 빚 내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지난해 늘어난 은행권 가계대출 38조5000억원 가운데 36조7000억원(95.3%)이 주담대였다. 은행권 주담대 증가 규모는 지난해 1분기 2조원에 그쳤지만 2분기 7조4000억원, 3분기 11조9000억원, 4분기 15조4000억원 등 급격히 늘어났다. 증가율로 따지면 지난해 주담대 증가율 10.2%는 관련 통계가 나온 이후 역대 최대다.
가계부채 관련 통계가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도 정부는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소득증가와 함께 빚이 어느 정도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3년 기준 한국이 160.7%로 미국(115.1%)이나 OECD 평균(135.7%)을 능가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63.6%로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빚증가에 소비침체 부메랑 = 정부가 부동산부양에 집중하면서 가계부채를 사실상 방치한 사이 소비심리는 정부당국이 기대한 방향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집값 상승 기대가 높아질 경우 자산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도 늘어나리라는 게 정부의 기대였지만 늘어나는 빚 때문에 소비심리가 오히려 침체하는 역효과가 일고 있다. 집값이 들썩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출산 등 구조적 요인으로 장기적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약해 소비가 제약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달 103으로 지난해 세월호 사태 직전인 108 수준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연구서 '빚으로 지은 집'에 따르면 1997~2007년 사이 가계 부채가 크게 늘어났던 나라일수록 불황이 닥친 2008~2009년 가계 지출은 더욱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저자인 미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란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났다"고 경고했다.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과 가계에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해장술을 마시려는 것과 같다"면서 "가계 부채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가계빚 늘리기 정책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빚을 늘리는 정책은 정말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가계부채 중 신용대출은 없애는 정책을 써나가되, 주택담보대출은 총량을 묶어놓고 기존 빚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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