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4
2025
“화무십일홍이다.” 구속 전 피의자 신문에서 김건희씨가 술회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거다. 윤석열씨도 일찌감치 권력무상을 짚었다. 대통령후보 시절 “5년짜리 권력이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 말하자면 ‘권불오년’이다. 비록 그 자신은 5년은커녕 3년도 채우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권불오년, 화무십일홍”으로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부창부수(夫唱婦隨)한 셈이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동시 수감에서 일말의 그리스식 비극을 본다. 운명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 운명에 다가가는 아이러니 말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서서히 파멸하고 관객은 그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모순에 가득 찬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서 오히려 긍정의 힘을 얻는 거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이를 짚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모순과 고통을 긍정으로 승화하는 그리스 비극의 스토리 구조를.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일렉트라’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운명과 신념, 고뇌와 선택의 모순 속에서 진실을
08.13
정부와 산업계는 지속가능전략 수립을 위해 미래 환경이슈를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현재는 기후변화에 절대적 비중을 두지만 다음 단계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기후 다음으로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주장해왔다. 그 예상은 다양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이슈에서도 몇가지 이정표적인 사건이나 결정들이 발생해왔다. 기후행동을 위한 과학적 연구와 자료를 제공하는 연구기관으로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1988년 출범했듯이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간정책플랫폼(IPBES)이 2013년 출범했다. 또한 과학적 연구–정부정책–산업계 연계의 시발점이 되는 기업 공시제도에서 기후와 생물다양성에 특화된 공시 요구가 시작되었다. 2015년 자발적 기후정보 공시를 위한 기후관련재무공시태스크포스(TCFD)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어 기후공시 보편화의 혁신적 출발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2023년 자연관련재무공
08.12
독일 하노버에 있다는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 무덤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에 비서 한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서 인터넷을 검색하는 중이다. 라이프니츠는 영국 수학자 뉴턴과 함께 미적분의 공동 발견자로 수학사에 이름이 높다. 어렵사리 무덤 위치를 확인하니 ‘성요한 교회(Neustädter Kirche)’라는 곳이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어 살펴보니 본당 내부가 소박하다. 인류지식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 이런 대우를 받나 싶다. 라이프니츠에 대한 푸대접은 수학사에서도 비슷하다. 필자는 ‘미적분의 역사’(C. H. 에드워즈)라는 책을 최근까지 지인들과 읽었는데 책에 이런 맥락의 글귀가 나온다. “와이트사이드(D. T. Whiteside)가 뉴턴의 수학 논문들을 정리해내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했다. 반면에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영어권 자료들이 소홀히 하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어떻게 개
08.11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예고없이 생중계된 이 회의에서 산업재해 대책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았을 때 과태료가 얼마인지 물었는데 참석자들이 답변하지 못하자 이 대통령이 말했다. “이게 우리의 문제죠. 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잠시 뒤 회의장 밖에서 확인해 답이 전해졌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미비로 적발될 경우 과태료는 최소 5만원, 최대 5000만원이었다. 이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는 등의 제안이 나왔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조치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장을 아예 모르거나 상당한 거리가 있는 법규와 제도·행정이 수두룩하다. 이재명정부가 애써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음식점, 마트나 식료품점, 편의점 등이 없는 농촌·산촌·섬지역 주민에게 소비쿠폰 쓰기는 버거운 일이다. 쿠폰으로 생활필수품을
08.07
‘불나면 그냥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칼럼을 쓰는 날 아침 한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소의 의문과 불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 14만551가구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비율은 2.8%(3884가구) 뿐이다. 검색해 보면 영구임대주택은 노태우정부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 포함되어 1992년까지 지어졌다. 이 사업이 중단된 이후 50년 임대아파트가 나왔는데 이 경우에도 스프링클러 설치 비중은 7.4%뿐이라 했다. LH 관련자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담당자는 간이 스프링클러라도 설치하자는 사업에 따르는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국민의 치명적인 위험을 막는 예산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을까? 또 다른 조사 결과와도 연결되었다. 통계청은 7월 29일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지
08.06
일찍이 리영희 선생은 “새가 양 날개로 날듯이 정치도 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경쟁해야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한쪽이 완전히 망가져 경쟁이 사라졌다. 이래서야 한국 정치가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망가진 것은 보수쪽 날개인 제1야당 국민의힘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선포한 뒤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 속에 탄핵되었다. 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완패해 국민의힘이 야당이 된 게 지난 6월이다. 대선에서 완패했으면 철저히 반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2일 치러질 전당대회도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희망을 보여주기보다 윤석열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갈려 대결하는 양상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3일 열린 당 대표 후보 비전 발표회에서도 비전은커녕 ‘찬탄’과 ‘반탄’의 일그러진 모습만 보였다. 특히 한국사 강사 출신인 전한길씨가 윤 전 대통
08.05
물리학자들은 한학기 수업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학회 참석 여행을 떠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기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지난 학기동안 전세계에서 이룬 첨단 연구결과가 무엇인지 듣고 배우고 토론한다. 필자도 올 여름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대중에게는 휴양지로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에는 수준 높은 공과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열대의 해변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최신식 연구동과 기숙사가 자리를 잡고 장학금으로 전세계에서 우수한 대학원생을 불러 모은 연구중심 대학이다. 학회 마지막 발표자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오시카와 교수였다. “이 학회 참석자 중 내가 최고령이더라”란 멋쩍은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강연이 이어졌다. 그보다 겨우 한살 적은 필자는 두번째로 나이 많은 학회 참석자란 명예를 자동으로 수여받았다. 아들 또래 연구자들의 수준 높은 연구 결과 발표에 귀 기울이고 질문하고 배우며 벅찬 한주일을 보내고 왔다. 학회식사와
08.04
정권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사표 내는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전 정권 때 임명된 공직자들이 새 정부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눈치껏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알아서 물러나지 않고 배짱부리듯 버티다가 정권에 밉보이면 어떤 수모와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지혜로운’ 생각이다. 얼마 전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검찰총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나, 윤석열정부 초기 금융위원장이 임기 2년 남겨놓고도 사표를 던진 것은 다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고위 공직은 임기와 상관없이 정권이 교체되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나는 게 보통이다. 정무적으로 임명된 자리는 정무적으로 판단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자리 문제가 순리대로 해결되지 않고 늘 잡음이 불거지는 곳이 있다면 언론 방송계다. 정부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한 KBS와 EBS는 물론 상법상 주식회사이며 특수법인이 대주주로 있는 MBC, 또 이들 공영방
07.31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인공지능(AI) 및 가상화폐 코인 기술 공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가지 모두 기술 및 제도 기반이 부실한 채 과장된 수사로 추진되고 있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골자다. 정치적 동기가 앞선 탓이 크다.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 공약이 소버린AI라는 국내판에 한정되어 글로벌 제품을 기대하는 현실적 기술 수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소버린 시제품은 이미 국내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AI 100조원 공약은 그들을 국내 시장 상품화하는데 수십조원 지원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딥시크는 지금 사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그러면 우리 공약에는 딥시크 같은 글로벌 시장 도전은 없다는 말과 같아진다. 챗GPT는 지금 사용자가 7억명이 넘는데 개발비는 7조원 가량 소요됐다. 생성AI 및 저전력 기술은 날로 발전해 싱가포르정부는 700억원이라는 선에서 소버린AI를 현재 제작 중이다. 100조원이란 거금이 용처 세부 계획 없이 추진될 경우 제2의
07.30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인공지능(AI)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의외로 많지 않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 가운데 AI를 유의미하게 업무에 적용하는 곳은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기술이 아직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안전성과 윤리문제 탓일까. 영국 시사주간지 디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 기사(Why is AI so slow to spread?)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냈다. ‘관료주의가 주범’이라는 것이다. 안전·도덕 등의 문제와 무관하게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AI 기술이 수두룩한데도 대부분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고 그 까닭은 ‘밥그릇’을 위협받게 된 임직원들의 관료주의적 저항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성과를 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조직이 이 정도라면 ‘경쟁 무풍지대’ 정부조직의 관료주의는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신산업 규제합리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는 뉴스가 이런
07.29
요즘 국제뉴스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이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협상과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성범죄자 엡스틴파일 공개 관련 딜레마일 것이다. 두 가지 이슈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관세협상 의사결정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엡스틴파일에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분산되면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관세협상에서는 정책의 비중이 더 크고, 엡스틴파일 문제는 정치의 비중이 더 크다. 정책과 정치가 충돌할 때 정치가 이기는 것이 현실이다. 2003년 1월 필자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 갔을 때 일이다. CNN의 한 기자가 방금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이야기하다 오는 길이라면서 클린턴 말로는 재임기간 중에 북미수교를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조금 부족해서 마무리 짓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중동문제에 신경써야 했기 때문이라 했다. 필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진짜
07.28
“중동에는 석유가 있지만,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中國有稀土).” 1992년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한 말이다. 이 남순강화는 선부론(先富論, 부자가 될 사람은 먼저 부자가 되게 하자)과 개혁개방을 천명해 중국이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의 희토류 언급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33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되면서 희토류는 양국 협상에서 가장 빛나는 전략카드로 떠올랐다. 올해 봄 미국은 중국에 최고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인공지능(AI)용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를 비롯해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중국은 최고 120%의 보복 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섰고 양국의 무역 분쟁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두 나라는 지난 6월 런던에서 2일간 협상을 벌였고, 일단
07.24
중세 이전 지도에는 세상의 끝이 있었다. 바다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거다. 머지않아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지도가 나왔다. 축적도 위치도 부정확했지만 이 지도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손 안의 모바일 지도로 골목길까지 찾아가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도 관련 퀴즈 하나. 남북이산가족이 고향을 추억할 때 보는 지도는? 네이버 지도라고 대답했다면 “땡~”이다. 정답은 구글 지도다. 강원도 고성~금강산~원산지역을 보자. 버스와 배로 관광했던 금강산이다. 하지만 네이버 지도는 깜깜 먹통이다. 고성읍~통천읍~원산시 외에 아무런 지명이 없다. 반면 구글 지도는 고성군~장전읍~통천군~봉천군~원산시까지 자세하다. 큰 지명은 한글로, 리(里) 단위의 작은 지명은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여기에 평양-원산고속도로와 마식스키리조트, 아마도 군사용일 듯한 구읍리비행장까지 표시돼 있다. 네이버는 북한의 지도반출을 승인 받지 못했을까. 북한은 왜 구글에 지리정보를 제공했을까. 평양을 보면 ‘로
07.23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이 관심을 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는 집단적 행위다. 그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소통은 공동체의 성패를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정치지형은 소통의 도구인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급변해왔다. 하지만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제자리걸음이다. 권력 기관이 제공하는 일방적 정보에 익숙해져 있다. 이 같은 소통 방식은 정치 불신만 키웠다. 지역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방식 등 구조적 한계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권위적 문화와 목표지향적인 리더십, 매체 의존적 행정시스템이 만든 결과다. 한국 정치가 소통의 부재로 인한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싹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식 소통’을 주목하는 이유다. 언론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정치적 의사결정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되었다. 시민토론회, SNS 라이브 질의응답, 유
07.21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라는 말을 남겼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일본 경찰이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작성한 공술서에 담겼다. 선교사로 내한했던 헐버트가 을사늑약에 항거하고 항일운동을 이어가다 1907년 사실상 강제 추방당한 일을 안 의사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헐버트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일제의 식민지배와 만행을 규탄하며 평생을 오롯이 한국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는 38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1000여 차례의 강연, 기자회견, 기고 같은 방법으로 일본을 비판하고 압박했다. 한편으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승만과 한인 독립운동단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인들도 한국 독립이 가망 없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훼절한 뒤에도 외국인인 그가 끝까지 변심하지 않았
07.17
2020년 10월 문재인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들도 속속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최고의 가치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교란하는 등 에너지를 둘러싼 환경을 급격하게 바꿔 놓았다. 미국 중동 등 에너지가 풍부한 나라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에너지가 부족한 유럽은 직격탄을 맞았다. 전기요금 대폭 인상과 함께 강제 절전까지 이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로 MMbtu당 2달러까지 떨어졌던 액화천연가스의 가격이 35배 수준인 70달러를 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전기요금을 올릴 수 없었던 한전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기를 사올 돈이 부족해져 정전 발생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07.16
‘히스테리시스’란 말이 있다. 신경질이나 짜증을 쉽게 내는 사람에게 흔히들 사용하는 ‘히스테리’와는 다른 말이다. 히스테리시스는 자성체가 외부 자기장을 제거해도 원래 있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자기를 띄는 현상을 부르는 물리학 용어다. 우리말로 바꾸면 ‘과거 이력 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학입국의 기치를 두고 반세기 이상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기계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에서부터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로 연결되는 첨단기술까지 과학기술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심장이었다. 심장은 얼핏 보면 그냥 내버려둬도 스스로 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심장이 뛰기 위해 산소와 포도당을 실어 나를 혈류 공급이 필요하고,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전기신호도 필요하다. 한 국가의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피와 같은 예산 투입이 필요하고, 안정적인 젊은 연구자들의 수급이 이루어
07.15
정권 교체 후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 재개 의지를 적극 표명해온 만큼 지난 정권기의 거친 대치국면은 일단 숨고르기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취임 직후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하자 북한이 이에 즉각 호응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지만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진전이다. 남북관계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지난 달 6.15 남북공동성명 25주년에 보낸 이재명 대통령의 축사다. 이 대통령은 ‘평화’ ‘공존’ ‘번영’하는 한반도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통일’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6.15 선언 정신을 온전히 이어가되 당장 실현이 어려운 통일이라는 목표보다는 남북한 간의 실질적 협력과 평화 달성에 노력을 집중해 나가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통일부 명칭 변경논
07.14
미국의 정치와 언론계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선동적인 주장과 입법 및 산업계 실무 동향으로 ESG 투자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기업들에 나타나는 본질적 변화가 아니다. 예를 들면 최근 펩시콜라가 2040년 넷제로 목표와 지속가능한 농업정책 추진을 재확인하거나, 휴렛팩커드(HP)가 공급망에서 순환경제와 생물다양성을 강화하거나, 유나이티드 항공이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 투자를 확대하는 등 대부분 글로벌 선도기업이 핵심 사업 전략으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ESG 투자라는 용어가 탄생 20년 만에 트럼프로 상징되는 보수 정치세력의 도전과 역풍에 직면했다. 특히 한국의 진보 정권 등장은 미국과의 탈동조화로 지속가능성 정책과 전략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청정에너지 관련 산업의 쇠퇴와 방위산업 및 원자력 관련 산업은 ESG 투자 또는 사회책임투자 측면에서 진전이 아니라 후퇴일 수도 있다. 최근 이재명정부가 강조하는 AI 산업마저도 막대한 전력 수요와 윤리적 이슈로 지
07.10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단연 세계 최대 ‘뉴스 메이커’다. 전세계가 눈을 뜨면 트럼프 대통령이 밤 사이에 무슨 말을 했는가부터 챙긴다. 그의 한마디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들썩거린다. 아침 말 다르고 저녁 말 다르고, 인용하는 숫자는 오류투성이고, 감정이 죽 끓듯 수시로 바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가 툭 던진 ‘한마디’를 놓고 좌불안석이다. 아무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맞수가 없는 절대 기축국이라고는 하나, 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처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긴장케 한 적은 없다.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황제놀음’이다. 트럼프는 특히 ‘동맹들’에게 가혹하다. 미국의 단물을 빨아먹어온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다름아닌 동맹들이라고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나 아시아의 한국, 일본을 보는 시각이 그렇다. “미국 때문에 잘 살게 됐으니 이제는 토해내라”는 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안보 비상이 걸린 유럽연합에 대해 트럼프는 국방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