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
2025
사법개혁이 뜨거운 ‘국민의제’로 떠올랐다. 검찰개혁은 수사와 기소 분리라는 원칙을 확정하고 법제화 단계에 들어갔다. 이제부터 개혁의 목표는 법원, 사법부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중추인 법원장들이 사법개혁을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며 방어선을 쳤다. 명분은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훼손을 앞세우고 있다. 원론은 맞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통해 국민주권을 수호하는 제도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은 저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 “권력은 권력으로, 야심에는 야심으로 대항해야 제어된다”고 했다. 법에 의한 통치를 통해 권력의 독주를 막는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권력 내부의 권한통제도 포함된다. 근대 민주주의 헌법은 대부분 이 정신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헌법 103조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 독립성 보장이다. 현실적으로도 입법부 행정부와
09.17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러 정상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중국이 평화와 협력의 편에서 반미 전선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비슷한 시간, 미국 조지아 이민국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현장을 급습, 우리 근로자 316명을 ‘노예처럼’ 구금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따지고 보면 모두 미중 패권경쟁과 연동된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상호작용을 하면서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게 된다. 한국이 유념할 것은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한국의 정치적 분열이 부딪칠 경우 정책 공간의 축소, 외교의 위축 등 혼선과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내정치가 외부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강대국이 국내의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 일상화될 위험이 커진다. 12.3 비상계엄은 현직
09.16
생물다양성 손실은 집단행동 딜레마의 전형적인 사례다. 손실에 따른 위험은 모두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지만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과 노력은 제한적이고 개별적이다. 예를 들면 생물다양성 손실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취약한 공급망 위험에 노출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개별 기업이 투자에 적극 나설 인센티브는 부족하다. 그런 배경에서 최근 들어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 등을 통한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규제를 통한 생물다양성 보전 및 복원을 의무화하려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의 자연보전 및 복원 투자를 위한 동기부여로서 자연시장을 활성화하여 생태계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고 생물다양성크레딧이나 자연지분과 같은 금융상품 또는 메커니즘과 제도에 관한 논의가 EU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 개인 토지소유주 또는 NGO 등이 이러한 금융상품 발행을 통해 보전과 복원을 위한 자금조달을 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올해 7월 EU는 생물다양성과 자연복
09.15
‘중국 중성미자 실험’이라는 기사를 접하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왕이팡(王貽芳) 박사다. 그는 중국 최고의 중성미자 물리학자이고, 베이징 소재 고능물리연구소(IHEP) 소장이다. 필자가 접한 소식은 왕 박사가 이끄는 중성미자 실험(주노JUNO실험)이 8월 말 실험시설 구축을 완료하고, 데이터를 받기 시작한다는 거다. 필자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지도 않은 중국 중성미자 물리학자 이름을 아는 이유가 있다. 그는 김수봉 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한때 경쟁 관계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중성미자 변환 상수라는 걸 알아내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김수봉 교수는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실험을 했다. 원전에서는 핵분열 과정에서 중성미자가 쏟아진다. 이 중성미자들을 갖고 중성미자 질량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고, 실험 이름은 레노(RENO)였다. 왕이팡 박사는 당시에는 중국 광둥성에서 ‘다야베이’ 실험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2012년 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과를 내놨다
09.11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 전격전의 창시자 클라우제비츠의 외교 명언이다. 이를 거꾸로 “외교는 전쟁의 연장이다”고 해도 맞을 듯하다. 전쟁과 외교는 불신으로 주조된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겠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뒷수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회의가 열린다.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등 90개 왕국과 53개 공국이 참석한다. 패전국 프랑스는 도마 위 생선 격이다. 전후 영토의 재분배와 세력균형 왕정복고가 초점이었다. 자국 이익이 우선인 협상테이블에서 파이 한 조각도 양보하기 어렵다. 그러니 회의는 부지하세월로 늘어질 수밖에. 그래서 이런 비판이 나왔다. “회의는 춤춘다. 나아가지는 않는다.” 마치 회의만 하는 요즘의 UN처럼 말이다. 빈 체제는 1814년 9월 1일부터 1815년 6월 9일까지 9개월 넘게 걸려 수립됐다. 오스트리아는 잘츠부르크를 회복하고 베네치아를 획득한다. 영국은 몰타와 세일론을 얻고 러시아는 폴란드 대부분과 핀란드를
09.10
행정안전부는 7일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총 11개의 개편이 포함되었는데그 중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크게 띄었던 것은 3번째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이었다. 그 핵심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 일부를 떼어내어 환경부에 붙이고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당초 대선 공약은 기후에너지부의 신설이었다. 지금까지 에너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후는 환경부가 맡다 보니 엇박자가 있기는 했다. 기후 목표를 도전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한 발전량 목표를 과소하게 정해왔다. 정부는 이에 맞추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LNG의 도입을 위한 장기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LNG 발전량이 줄지 않고 늘었다. 그러다 보니 장기계약이 아닌 현물시장에서 그때그때 비싼 LNG를 사오게 되고 이것이 발전원가를 상승시켜 한전의 적자가 커지거나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모순이 반복되었다. 선진국들도 에너지와 기후의 통합적 관리
09.09
가족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몰이는 ‘한류’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언어 음식 거리풍경 의상 풍속 등 한국적인 여러가지를 영상 속에 담아내며 세계 곳곳에서 ‘따라 하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 아니다. 헐리웃 제작사가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급한 미국 영화다. 미국인들이 ‘K-컬처’의 힘을 믿고 제작·유통 일체를 맡아 전세계에 공급한 게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인들 사이에 한류와 한국문화의 인기가 한국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며 세계적으로 이미 보편화돼 있음을 일깨워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쯤에서 이렇게까지 고속성장한 ‘K-신드롬’의 출발점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시작한 건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K-신드롬’의 출발점은 ‘K-팝’이고, 그 산실은 ‘연예기획사’로 불리는 전문기업들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한국의 문화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돌파구를 연 게
09.08
K-컬처의 힘이 놀랍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삽입곡 ‘골든’이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5주째 1위를 차지했다. 톱 100에 오른 케데헌 삽입곡이 5곡에 이른다. 골든은 미국 빌보드 ‘핫100’에서도 통산 3주 1위를 했다. 앞서 6월에는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인 미국 토니상 6개 부문을 거머쥐었다. 2016년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한 창작 뮤지컬이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 7개월 만에 이룬 쾌거다. 케데헌은 기존 1위 ‘오징어 게임1’을 제치고 넷플릭스 최고 인기 콘텐츠로 등극했다. 케데헌 등 K-콘텐츠의 인기몰이에 관광 성지로 부상한 곳이 적지 않다. 서울 도심 고궁이나 인사동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서울 낙산공원, 북촌 한옥마을, 남산타워, 광장시장에 이어 부산 감천문화마을, 자갈치시장,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에 만든 해변열차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를 찾는다.
09.04
한국은행은 8월 28일 기준금리를 2.5%로 동결했다. 금리인하를 미룬 이유로 든 것이 수도권 집값 불안이다. 한은이 부동산 가격 문제를 들고 나온데 대해 정책 대상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한은의 논리도 타당성을 갖고 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2% 내외로 관리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부동산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착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가주거비를 물가계산에 포함하지 않고 전월세만 물가지수에 포함하고 있으며, 계약기간 2년 혹은 계약갱신권을 사용하는 경우 4년간 변화가 거의 없을 수 있다. 실제 거주에 드는 주거비를 반영하면 물가상승률이 통계청의 것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한은이 정책책임 범위를 넘어섰건 아니건 분명한 것은 수도권 부동산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10월에는 금리인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이에 따라 부동산시장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번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정책이라
09.03
중대한 과학적 발견의 출발점은 언제나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은 과학자 개개인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해서 무엇이 나중에 더 큰 열매를 맺을지 속단할 수 없다. 일단 골고루 물을 주고 어디서 싹이 틀지 지켜봐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잠시 사라졌던 풀뿌리 기초연구 지원이 이번 정부에서 부활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때로는 국가 구성원 전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집단적 형태의 과학연구와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런 추세는 더 늘어날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두 세기 전인 1820년 무렵 차분기관이란 걸 만들려고 했다. 그 당시 천문학자 공학자 항해술사들은 로그함수 값, 삼각함수 값을 계산한 표를 지참해야 했는데 사람 손으로 계산한 숫자에는 오류가 많았다. 배비지는 영국정부로부터 무려 군함 두 척을 살 수 있는 비용을 지원받아 그 계산을 오류없이 빠르게 해낼 기계 개발에 몰두했다. 비록 배비지의 차분기관은 작동하는 데 실패했지만
09.02
미국이 세계 주요 국가와 벌이고 있는 관세전쟁이 고비를 넘고 있다. 이제 세계의 관심은 중국으로 쏠린다. 중국은 그동안 예상과 달리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도 했다. 중국은 이번 관세전쟁의 진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난 쌍둥이 적자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여야만 했는데 세계무역에서 흑자로 톡톡히 재미보는 나라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 통계로 지난해 미국의 적자는 1조2940억달러인데 반해 중국 흑자는 사상 최대인 9895억달러였다. 한쪽은 압도적인 세계 1위 적자 국가이고 다른쪽은 대칭적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 흑자 국가이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화를 낼만하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번 관세전쟁에서 아직까지 큰 타격을 받고 있지 않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 7월 대미 무역흑자는 237억4000만달러다. 직전 6월의 흑자액 265억7000만달러보다 10여% 줄어들었기는 했다. 이 한달 액
09.01
2학기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마련한 교수법 특강에 전에 없이 많은 교수들이 참여해 학습 분위기가 뜨거웠다. ‘인공지능과 에듀테크를 적용한 스마트한 수업 전략’이라는 특강 주제가 교수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수업 전략이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있는 걸까. 교수들의 1차적 관심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해 과제를 작성 제출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AI는 기본적으로 교수보다 똑똑하다. 이 때문에 AI를 등에 업은 학생이 상상 이상의 훌륭한 과제물을 제출할 때 평가자는 곤혹스럽다. 한 눈에 보아도 몽땅 AI가 대신한 것 같다는 판단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0점 처리할 수는 없다. 많은 대학에 AI 윤리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만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부정행위로 간주하거나 제재할 방도는 없다. AI 탐지 프로그램을 돌려도 보지만 지금 나와 있는 프로그램들은 정확도가 낮아 표절을 잡아내는
08.28
지난주 서울에서 계량경제학회 세계대회(ESWC)가 개최됐다. 단일행사로는 경제학계의 가장 큰 행사로서 5년마다 열린다. 필자에게는 35년 전인 1990년 바르셀로나 대회가 가장 인상깊었다. 결혼 후 집사람의 미국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바르셀로나의 경제분석연구소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 대회가 열렸고, 당시 필자가 알고 지내던 경제학자들이 거의 참석해 특별한 기억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대회의 준비와 조직에 참여한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수고를 많이 했을 것이다. 성공적 대회개최를 경하한다. ESWC는 경제학자들의 학술대회다. 경제에 대한 얘기보다는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들 중에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보다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 게 좋은가를 분석하는 논문들이 더 많았다. 최근 경제학이 현실경제로부터 유리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학이 경제의 흐름에 길잡이 역할을 하
08.27
베트남 군대가 대한민국의 K9 자주포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여러 감회가 새로워진다. 공산당이 일당통치하는 베트남은 1960~1970년대 한국군과 총부리를 겨눈 적국이었고, 지금도 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 무기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한국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교류하고 있지만 국방에 관한 한 요지부동이었다. 1991년 여름, 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 공산베트남 정부의 공식 취재초청을 받아 호찌민 공항에 발을 디딘 때가 생각난다. 베트남정부는 기자에게 맨 먼저 전쟁박물관을 들르게 했다. 입구에 걸린 대형 세계지도에 ‘베트남을 침략한 제국주의 국가와 부역국가들’을 표시했는데 한국이 선명하게 포함돼 있었다. 사진자료실에는 따발총을 든 조그만 체구의 베트콩 소녀 앞에 두 손을 번쩍 든 ‘침략자’ 한국 참전군인의 모습도 전시돼 있었다. 베트남정부가 제공한 기자의 취재신분증서에는 국적이 ‘NTT’로 표기돼 있었다. 알아봤더니 베트남식 한자 발음으로 ‘남조선
08.26
노벨평화상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요한 셀프 로비가 상식선을 넘으면서 그의 욕망은 국제사회의 풍자의 소재가 되고 있다. 노르웨이 권위있는 경제 일간지 다겐스 네링슬리브는 지난 8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옌스 스톨텐베르크 노르웨이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다고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재무장관이 지난 7월 오슬로 시내를 걷다 느닷없이 트럼프 전화를 받았고, 양국 관세 문제 이야기가 오가다 결국 화제가 노벨상으로 흘렀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짧은 통화만으로도 트럼프가 얼마나 노벨상에 매달려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노벨상은 스웨덴이 주관하는 다른 부문과 달리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의회가 선임한 5인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스톨텐베르크는 총리를 두 차례 지낸 뒤 NATO 사무총장까지 역임한 유럽의 유력한 정치인이다. 트럼프와 여러 차례 국제 회의에서 마주쳤던 그는 이번에도 세계정치의 권력자
08.25
로마시대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비판정신을 담아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마 권력층의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를 나무랐다. 타키투스는 저서 ‘아그리콜라’에 ‘(로마인들은) 약탈 학살 강탈에 제국이라는 거짓이름을 붙이며, 폐허를 만들어 놓고 이를 평화라 부른다’라는 칼레도니아 족장 칼가쿠스의 연설문을 담았다. 오늘날 ‘그들은 사막을 만들어 놓고 그걸 평화라 부른다’라고 축약해 전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고 양민을 짓밟아 놓고선 ‘평화를 위해서’라고 내세운다. 푸틴은 침공 명분의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나치세력 제거를 들었다. 그것도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둘러댔다. 러시아군은 전쟁 개시 후 3년 반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았다. 최근까지 병원 학교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일삼았다. 심지어 어린이 병원을 목표로 삼아 대량학살을 저질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
08.21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에 대한 감탄과 우려의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중국 인재는 공대에 몰리는데 한국 인재는 의대에만 미쳐있다는 ‘21세기형 망국론’이 정설이 됐다.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법조인 의사가 공무원으로 편입되어 있어서 경제적 보상을 못받는 그 나라의 제도 때문에 인재가 공대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의사 월급을 국가에서 공무원 수준으로 규제한다거나, 판·검사에서 물러난 법조인의 변호사 개업을 법으로 막아 그들이 몇년 안에 수십억 재산을 모을 기회를 없앤다면 탁월한 두뇌의 흐름은 다시 공대 쪽으로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법조인이나 의사직은 이제 신분상승보다 신분유지의 직업에 가깝다. 연소득이 수억원인 의사 집안에서 금수저로 자란 자녀에게 공대를 권하는 건 부모에 비해 겨우 1/3 정도 수준의 경제생활을 감수하란 뜻이다. 요즘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 고교와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부터 쌓
08.20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외교적 ‘구성의 기술’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과의 현안 조율을 거친 후 한미회담에 임하는 것은 동북아 질서에서 중심적 위상뿐만 아니라 외교의 자율성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는 한일 협력이 한미일 협력의 토대를 강화하고, 한국이 동북아의 ‘중재자’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민주권 중심의 외교 좌표 설정으로 해석된다. 한국 외교는 지난 수십년간 ‘동맹’이라는 고리에 묶여 자율성을 제약받았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미래지향성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도 위상이 바뀌고 달라졌다. 지금 미중이 사활을 건 전략경쟁에 돌입했다. 인도 태평양을 두고 미중이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동북아 정세는 불안정한 변동기에 들어섰다. 그 중간에 한국이 있다. 한국의 외교적 선택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한국 외교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까? 먼저, 한일 정상회담이다.
08.19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미래가 이미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확정된 미래’라고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미래는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재 출산율과 인구구조가 이미 ‘감소 경로’에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며 출생자수보다 사망자수가 많아져서 총인구 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인구구조상으로도 젊은 여성인구 자체가 줄고 있어서 설령 출산율이 회복된다 해도 회복가능한 총인구 수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외국 이민자가 늘어나서 인구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도 정치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인구감소는 이미 확정되었고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줄어드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석유 고갈은 확정된 미래라고
08.18
2025년의 광복절은 몇 가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정부와 독립운동 단체가 역사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기념식을 열던 볼썽사나운 일이 재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권교체 이후 독립 광복의 의미를 다시 살린 결과다. 그러나 다른 한편 광복의 햇수가 쌓이는 만큼 분단이 길고 깊어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분단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평화가 위태로울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위험에 직면해야 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평화와 상생공존, 공동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선제적 도발도 배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역대 대통령이 광복절마다 통일문제를 언급해 오기는 했지만 분단체제 자체를 극복 대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