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2025
14억 중국인들이 쓰는 언어는 같지 않다.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베이징표준어(普通話)와 상하이 광둥 푸젠 등 다른 지역 언어는 서로 ‘외국어’라고 할 만큼 다르다. 헤어질 때 인사말이 표준어로는 ‘자이지엔(再見)’이지만 상하이 말로는 ‘차이웨이(哉威)’이고, ‘괜찮습니다’를 뜻하는 ‘메이콴시(沒關係)’가 상하이에서는 ‘무마궤이이(姆媽規一)’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4년 전 들른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서점에서였다. 시내 한복판 청핀(誠品)서점의 외국어학습 서적 코너에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주요 외국어 교재가 밀려나고 ‘상하이어(上海話)’ ‘광둥어(廣東話)’ 학습교재가 목 좋은 곳에 배열돼 있었다. 상하이어 교재에는 ‘상하이 진출을 위한 필수준비과정(前進上海 必備課程)’이라고 쓴 띠지까지 둘려있었다. 대만정부 인사들을 만나 왜 그런지를 물었더니 답변이 한결같았다. “대만인들도 중국의 지방언어를 알아야 취업과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만기업들 사이에 대륙
10.29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운동화공급을 석권했던 중국이 베트남에 그 자리를 내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 운동화가 지난 몇년 사이 중국을 떠나 베트남의 호치밍시티로 공장을 대거 옮겼다고 전했다. 이유는 중국의 임금상승, 미국의 공급망재편 정책, 베트남의 산업유치 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화는 영어로 ‘스니커(sneaker)’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대부분 젊은이들은 이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고무창과 캔버스를 결합한 신발을 신고 걸으면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 ‘몰래 움직이다’라는 뜻의 스니크(sneak)에서 파생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젊은이들의 청바지 문화와 결합하며 운동화는 자유와 반항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마를린 먼로, 제임스 딘 같은 유명 배우들이 스니커를 신는 순간 이 신발은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후 나
10.28
5년 전 필자는 내일신문 지면에 ‘천방지축 부동산정책’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경제학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정책을 마구 쏟아내는 당시 정책결정자들의 정신을 분석해보니 치유불가능한 '이데올로기성 부동산편집증후군' 이 있다고 풍자적 진단을 내렸다. 최근 발표된 부동산정책으로 봐서는 현정부도 같은 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즌1에서는 한 가지 규제를 해서 뚫리면 다른 규제로 그걸 틀어막고 그것도 뚫리면 다른 규제로 또 틀어막고 하는 천방지축형이었는데, 시즌2에서는 처음부터 초강력규제로 꽁꽁묶어 못 움직이게 하는 ‘결박형’이라는 것이다. 둘다 개념없는 부동산 정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개념없다는 것은 경제학적인 사고가 결여된 나이브하고 오만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결박형 부동산정책은 시장을 아주 확실히 죄어서 부동산가격이 오를 여지를 아예 봉쇄하려는 전략을 쓴다. 이 전략의 논리적 근거는 돈을 묶으면 매매를 못할 것이고 그러면 가격이 오를 수 없을 것
10.27
법 만능주의에 대한 경종은 일찍이 로마 시대부터 울렸다.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법이 많을수록 정의는 줄어든다”고 경계했다. 그의 명저 ‘의무론’에 오랜 격언이라고 쓴 걸 보면 당시 로마인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원어(Summum ius, summa iniuria)를 직역하면 ‘극단적인 법 적용은 극단적인 불의가 된다’는 뜻이지만 의역으로 통용된다. 이 격언에는 법의 양적 팽창이 실질적 정의 실현보다는 처벌 위주의 형식적 적용, 자의적 해석, 법률가 중심 통치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이 된 후 내란청산과 개혁을 명분으로 입법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느낌을 준다. 검찰청 폐지 법안 처리를 완료한 뒤 사법·언론개혁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청래 대표가 사법·언론개혁도 연말까지 완수하겠다고 못 박은 걸 보면 기세를 짐작할 만하다.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유포하면 최대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해야
10.23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이 법원장들에게 묻는다. “윤석열의 12.3은 내란 아니냐.” 법원장들은 사실상 침묵했다. 내란 여부는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어렵다는 거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4일 재판관 전원일치로 “피청구인(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고 결정했다.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했다. 윤석열 측은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했지만 배척됐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여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했다. 위헌위법 비상계엄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까. 현행 형법의 적용 죄목은 ‘내란죄’뿐이다. 따라서 12.3 비상계엄은 “계몽령”이나 “고도의 통치행위”가 아니라 그냥 내란행위인 거다. 이것이 시민의 상식과 판단이고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지금 윤석열과 그 수하들이 내란 우두머리 또는 주요임무 종사자 혐의로 재
10.22
오늘날의 세계를 한두마디로 압축하면 탈세계화와 탈화석연료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탈화석연료를 의미하는 에너지 전환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주력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태양광과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기술만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전소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전기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변압기와 차단기 등으로 이루어진 전력망 확충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풍력터빈 등 발전기 제조에 필수적 소재인 희토류 확보 그리고 스마트한 전력 수요관리를 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는 전통적인 석유·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넘어서 전력망 확충, 희소광물 자원 확보, 그리고 디지털 수요관리를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에너지 안보의 시대입니다. 이제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에너지 안보는 중동의
10.21
최근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의 관계에 삐걱거린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여권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은 한팀이라고 강조하는 자체가 일사불란하지 않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기간에 여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채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연이틀 필리버스터를 펼치는 장면이 언론을 장식하면서 대통령의 대미 활동과 성과를 홍보하는데 적잖은 방해를 받았다. 여권 일각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법안들도 아닌데 대통령 방미 기간을 피하는 것이 현명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과 민주당 사이에 국정운영 방식에 차이를 보인 것은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직후부터다.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여야 협치를 도모하겠다고 했지만 정 대표는 내란척결과 강력한 개혁추진이 취임일성이었다. 대통령실은 ‘복수와 보복이 아닌 올바른 방식’의 개혁을 주문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청 폐지와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하면서 갈
10.20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부끄럽게 했던 건 우주론이다. 우주론은 우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인데 아인슈타인은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고 그걸 우주에 적용해 봤다. 장방정식의 해를 구해 보니 정적인 우주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동적인 우주만 해로 나왔다. 당시 사람들은 우주가 정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인슈타인은 1915년에 내놨던 장방정식에 ‘우주상수’ 항이라는 걸 추가했다. 때가 1917년이었고 이게 현대우주론의 시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게 드러났다. 1929년 미국 LA 인근 패서디나의 윌슨산에 있는 천문대에서 허블이라는 천문학자가 우주가 팽창한다는 걸 관측으로 확인했다. 윌슨산 천문대의 100인치 후커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여러 개의 은하를 관측하니 더 먼데 있는 은하일수록 은하의 후퇴속도(적색편이)가 더 크다는 걸 확인했다. 더 먼데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면 그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거다.
10.16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시장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던졌다. 그것도 “폭탄돌리기” “언젠가는 터질 일” “(1990년대 초) 일본의 자산 버블 붕괴” 등 매우 강경한 표현들까지 동원했다. 그만큼 현재의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어 심각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현실성을 의심받는 ‘9.7 공급대책’ 이상의 공급정책이 전혀 없음도 확인시켜주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 25개 모든 구와 경기도 12개 지역을 통으로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버린 극단적인 규제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정책당국의 고민도 이해할 만 하다. 위협용이든 아니든 당국은 동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세제 수단까지도 내비치고 있다. 주택가격에 따른 담보인정비율(LTV)한도 축소와 서울의 평균아파트거래액을 고려해 보면 전국에서 가장 수요가 몰리는, 달리 말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지역의 부동산거래 금지령처럼 해석할 수도 있겠다. 노무
10.15
한국의 보수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집권 여당이었던 보수당 국민의힘은 아직도 계엄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당으로서 정치적 도덕성에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당의 실패가 아니다. 한국 보수세력의 누적된 구조적 결함이 병증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권위주의, 리더십의 세대교체 실패, 극우 포퓰리즘, 이념적 정체성 붕괴 등이 한꺼번에 병증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보수의 기본적 가치는 3가지로 정의한다. 보수주의는 사회를 전통과 질서의 틀 안에서 안정을 유지한다. 국가권력의 제한적 행사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시민사회의 자유와 책임, 역할을 엄격히 한다. 그러나 한국 보수는 반헌법적 비상계엄으로 이 같은 본연의 정체성을 버렸다. 경찰과 검찰이라는 공권력, 국가를 방위하는 군을 정치권력 강화에 동원했다. 정치적 실패에 대해서도 책임 회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보수당으로서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 보수의 뿌리와
10.14
1970년 보잉 747기가 나온 이래 서울과 뉴욕을 14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꿈의 여객기’라고 불리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기종이 2011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뉴욕 간 소요시간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지난 55년간 속도에는 아무 개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잉 747과 같은 시기인 1969년에 탄생한 인터넷은 같은 기간 동안 그 속도가 무려 10억배나 빨라졌다. 이는 기계공업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0억배를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전통적 기계와 컴퓨터의 작동속도 차이를 서울 뉴욕 간 주파속도로 따져본다면 피부로 느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즉 컴퓨터라면 인천공항 활주로를 이륙하자마자 단 1분 내에 뉴욕 케네디공항 활주로에 도착해야 말이 된다. 14시간 대 1분, 무려 750배 차이다. 인터넷이 얼마나 빠른 지 대변해주는 증거다. 올 10월은 인터넷 탄생 56주년되는 달이다. 인터넷은 1969년 1
10.13
긴 추석 연휴 끝에 증시가 열린 10일,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3600선을 넘어섰다. 2일 3500선을 밟은 지 거래일 기준 하루 만의 최고가 경신 기록이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9만전자’에 안착했다. 2위 SK하이닉스도 ‘42만닉스’에 등극했다. 덕분에 유가증권시장(2974조6464억원)과 코스닥시장(452조8112억원) 시가총액이 약 3427조원으로 불어났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 3000조원대 진입은 지난 7월 10일 처음 이뤄졌다. ‘코스피 5000’을 공약한 이재명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와 상법 개정, 외국인 자금 유입에 힘입었다. 그러나 국내에는 주식 시가총액보다 훨씬 큰 자산시장이 존재한다. 주택시장이다. 한국은행이 주택 공시가격을 시장가격으로 환산해 지난해 말 전국 주택 시가총액을 산출한 결과 7158조원이었다. 증시 시가총액의 두배를 훌쩍 넘어선다. 시도별로 보면 고가 아파트가 많은 서울 주택 시가총액이 2498조원(34.9%)으로 전국 1위였다.
10.02
과학은 ‘고갱이’다. 불필요한 것은 다 버리고 최소한의 공리체계만 남기기를 추구한다. 수학이 대표적이지만 물리학도 못지 않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탄탄한 논리, 검증과 재현 가능한 실험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서양철학사에 그런 방법으로 버릴 것은 죄다 버린 뒤 살아남은 공리체계로부터 철학을 다시 쌓아올리려 했던 인물이 있다. ‘방법서설’의 저자 데카르트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부록으로 ‘기하학’이라는 수학책을 썼다. 그리스의 기하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철학의 토대를 다시 쌓고 부록 ‘기하학’에서 그리스식 기하학을 대수학의 토대 위에 재구성했다. ‘방법서설’의 완전한 제목은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가지 학문(sciences)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다. 데카르트는 철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 체계를 의심의 여지없는 기초 위에 재구성하고자 꿈꾸었던 수학자 과학자였다. “왜?”는 사라지고 꼰대스러움만 남아 물리학자로
10.01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 두어 달 전 여당 대표가 소위 3대 개혁입법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돌진 성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아무렴 일국의 형사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인데 그렇게 쉽게 되기야 하겠냐는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여당이 말하는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은 무얼 어떻게 왜? 바꾸려 하는 건지 정체가 애매하고, 그렇게 바꾸어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건지 모호한 대목이 적지 않다. 총론만 있고 각론이 부실하거나, 의도는 알겠는데 효과는 도리어 역으로 나올 수도 있는 내용이 간간이 눈에 띈다. 때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여당을 향해 “중요 쟁점에 대해서는 대책과 해법 마련을 위해 국민 앞에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토론하라”고 주문한 바 있어 일정한 방향 조정과 속도 조절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 대표가 공언한 그대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09.30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등산을 하는데 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놔두면 야생동물들의 몫이긴 하지만 등산로 한가운데 떨어진 굵은 밤만 주웠다. 군밤을 먹고 싶지만 굽는 재주가 없어 냄비에 삶은 밤을 안주삼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계절의 순환도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필자로선 올해 한 가지 억울한 게 있다. 산딸기를 제철에 따먹지 못한 것이다. 2월부터 내 팔자에 없는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 생각할 게 많았다. 그렇다 해도 등산길 양옆에 흔한 산딸기가 며칠동안 안 보였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계절이 옛날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봄에 차례대로 피던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도 평생에 처음보는 일이거니와,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걸쳐 이렇게 하루걸러 비가 오는 것도 처음 본다. 기후변화 탓인가. 백년수명의 인간이 기후변화 운운하는 것이 우습긴하다. 기후변화도 그렇지만 세상이
09.29
지금 인공지능(AI )강국은 미국과 영국이다. 영국이 그 위치에 있는 까닭은 케임브리지대 전산학과와 에딘버러대 전산학과 출신 4명이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휩쓸었다는 데 있다. 그 다음이 중국으로 영국과 공동 2위라고 보면 될 수준이다. 그러나 우린 한참 뒤 10위 밖이다. 왜 그럴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고착화된 소프트웨어(SW) 기피주의 때문이다. AI는 SW 세계에서 첨탑에 해당한다. 꼭대기가 있으려면 기초가 든든해야만 한다. 알파고라는 AI가 안드로이드란 운영체제(OS)와 F1이란 데이터베이스(DB)위에서 작동했듯이 AI의 기초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둘이다. 그 둘이 SW의 핵이다. 중국은 이런 OS를 국가 주도로 이미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껏 한번도 만드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삼성은 시스템반도체, 비메모리, 그래픽카드(GPU)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셋은 SW 없이는 설계조차 못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SW 글로벌 점유율은 불과
09.25
‘쓰’라는 글자가 너무 예쁘다. 마치 웃는 모습 이모티콘 같다. ‘꽃’은 글자 자체로 꽃 형상이다. 한글이 너무 재미있다. 일본에 한글 열풍이 일고 있다. 일상 언어에 한글을 섞어 사용하는 ‘한본어’가 유행하는 거다. 예컨대 “진짜 카와이이(예쁘다)” “아사카라(아침부터) 너무 먹었어요”하는 식이다. ‘얼짱’ ‘진짜’ ‘웃겨’ ‘배고파’ 등은 소셜미디어는 물론 공중파 TV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자연스럽게 말한다. ‘겨뿌겨뿌’는 삼겹살을 줄인 ‘겹겹’의 일본어 발음이다. 한글 간판과 광고도 늘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는 한글이 부각된 상품들이 쏟아진다. ‘볶음면’ ‘우유크림빵’은 한글 표기가 일본어보다 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본의 젊은 세대에 한국 프리미엄이 확산하고 있는 거다. 노년세대의 한국 디스(경멸) 풍조와 정반대다. K-컬쳐의 영향이겠다. 특히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히트를 치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약칭
09.24
얼핏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국가권력의 중심축은 법률 제정권을 가진 의회다. 대통령과 사법부의 권한행사는 법률적 근거나 의회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입법권을 가진 의회가 권력의 출발점이 된다. 3권분립의 원칙은 권력 독점과 집중을 경계하고 다수의 의견이 수렴되어 국가 권한이 행사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의회는 구성과 운영에서 다양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양보와 합의가 기본 덕목이 된다. 따라서 의회에서 정당 간 타협은 필수적이며 갈등의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의회는 시끄럽고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꽤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헌법 41조에 따라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국회 운영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국회법을 살펴보면 국회법을 어겼을 때 이를 규제할 강제조항이 없다. 예를 들어 국회법 5조에 국회 개원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한 후 7일 이내로 명백히 정해져 있지만 16대 국회를 제외
09.23
이달 초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짓고 있는 75억달러(약 10조원) 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줄줄이 체포돼 쇠사슬에 묶여 억류되는 광경은 충격이었다. 그건 마치 테러 진압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번 단속으로 공장 건설과 운영을 위해 초빙된 기술자들을 포함해 총 475명이 구금됐다. 그중 300명이 한국 국적자였다. 상당수는 단기체류 비자나 장비 설치 목적의 합법 비자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불명확한 행정절차와 과도한 단속으로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내몰렸다. 이것은 단순한 노동문제가 아니다. 배터리 공장은 미래산업의 심장부다. 청정에너지 기술 경쟁에서 거북이걸음으로 뒤처진 미국이, 정작 막대한 돈을 들여 자국 내 전략 산업의 토대를 쌓아주는 한국 기업 기술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트럼프의 정치 구호가 무색해진 순간이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간 뒤
09.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대 위협국인 중국 견제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놨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거창하게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중국이 125% 상호관세 맞불과 함께 반도체 전기차 같은 미국 핵심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희토류 수출을 막겠다는 반격 카드를 내밀자 속수무책이었다. 트럼프가 물러서서 관세를 30%로 낮추고 중국도 10%로 내려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미국이 중국에 공세를 취하다 후퇴한 건 이뿐만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5월 중국 유학생 비자를 대거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인 유학생이나 학자들이 미국의 첨단 기술과 핵심정보를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깔렸다. 그러자 미국 대학들이 들고 일어났다. 중국 학생을 받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내 중국 유학생은 27만여명에 이른다. 트럼프는 어쩔 수 없어 두손을 들고 말았다. 게다가 수용 인원을 6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