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8
2026
2026년 5월 베이징은 단순한 외교 도시가 아니다. 지금 베이징은 세계질서의 대기실이 되었다. 먼저 이란 외교장관이 왔다. 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 곧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마주 앉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키스탄 지도부도 베이징을 찾을 것으로 전해진다. 이 흐름을 따로따로 보면 외교 일정의 나열이다. 그러나 하나로 묶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지금 베이징은 회담장이 아니라 세계질서의 교차로다. 이란은 생존의 출구를 찾으러 왔다. 트럼프는 거래의 가격표를 들고 왔다. 푸틴은 전쟁의 명분 있는 출구를 찾으러 온다. 파키스탄은 안보와 경제의 생명줄을 확인하러 온다. 미국 홀로 세계문제 해결하던 시대 끝나 이 장면의 핵심은 하나다. 미국이 여전히 가장 강한 나라이지만 이제 미국 혼자 세계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의 가장 큰 힘이지만 그 힘을 행사할 때마다 비용이
05.15
정녕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대 제국들은 쇠망의 문턱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한 무리수를 두었다. 재정은 고갈되고, 국론은 분열되고, 신흥세력이 발호하는 상황에서도 제국은 군사행동으로 그 위엄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기울어가는 제국의 군사적 모험은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지난 2500여년 동안 아테네와 로마,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뭇 제국들이 역사의 반복을 입증했다. 기원전 413년, 에게해의 패자였던 아테네는 대규모 함대를 지중해 시칠리아로 출동시켰다. 시칠리아를 정복한 다음 이를 발판으로 카르타고까지 굴복시킴으로써 지중해 전체를 손아귀에 넣는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멀었고 보급선은 길었다. 시칠리아의 중심이었던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아 끝까지 버텼고, 결국 아테네 원정군을 괴멸시켰다. 시칠리아 원정 실패 이후 아테네는 채 10년도 버티지 못한 채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서로마제국 역시
05.14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공습으로 개시된 중동전쟁이 어느덧 두달 반을 넘기고 있다. 종전은커녕 휴전 여부조차 불투명한 가운데 세계 정치와 미디어의 이목은 여전히 중동의 화약고에 집중되어 있다. 최강국 미국과 최고 반미국가 이란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궤도를 그리며 파고드는 극초음속 미사일, 수천 대가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AI 군집 드론(Swarm Drone), 그리고 이를 빛의 속도로 요격하는 드론 킬러 레이저 등 현란한 최첨단 무기체계가 향연을 벌이는 중동전쟁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 전쟁은 인류가 목격한 가장 정밀하고도 비인격적인 기술 전쟁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 있는 미얀마 내전 하지만 중동전쟁의 현란한 불꽃에 가려져 그 못지않게 많은 희생자와 처참한 피해를 낳고 있는 미얀마 내전이 우리의 관심과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
05.13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4월 21일 미 의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는 2029년 1분기까지 조건 충족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의 전작권 회수 시점을 재단하면서 정치적 훈수까지 두는 장면은 일개 미국 장성이 아니라 식민총독의 모습이다. 우리 국방부가 전작권 전환 시기는 미확정이며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은 것은 당연했다. 전작권은 미국 장군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군 통수권과 직결된 주권문제다. 전작권,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맞물려 미국은 한국이 더 큰 방위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군사 지휘권 역시 한국이 갖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온갖 조건과 검증을 내세워 시기를 뒤로 밀어왔다. 한국군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군사체계를 미국식 작전 개념에 계속 묶어둘 수
05.12
수백명의 구글 직원들이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 국방부가 구글의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밀 군사 업무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또다른 경쟁 AI 기업인 앤스로픽(Anthropic)이 유사한 제한을 요구했다가 국방부와 갈등을 빚은지 두달 만에 나온 움직임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이번 청원에는 구글의 핵심 AI 조직인 딥마인드 소속 연구진을 포함해 6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서명했다. 이들은 순다르 피차이 CEO에게 국방부와 기밀 AI 활용 계약을 체결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직원들은 서한에서 기밀 군사 프로젝트에 AI 기술이 투입될 경우 구글 내부조차 해당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리는 AI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원하며, 비인도적이거나 극도로 해로운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치명적 자율무기와
05.11
데이터와 AI로 진화하는 라쿠텐 라쿠텐 그룹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이커머스(EC) 플랫폼인 ‘라쿠텐 시장(楽天市場)’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여기에 금융 모바일 광고 물류 등 다양한 서비스가 결합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며 고객을 자사 플랫폼 안에 효과적으로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월간 약 4500만명의 이용자, 1000만 회선을 넘는 모바일 가입자, 그리고 약 25년간 축적된 방대한 서비스 데이터는 라쿠텐이 스스로 ‘금광’이라고 표현할 만큼 중요한 전략자산이다. 라쿠텐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와 서비스 전반의 고도화를 추진하며, 데이터 중심의 플랫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라쿠텐은 2025년 국내 EC 거래액 6조엔을 돌파했으며, 2030년까지 ‘라쿠텐 시장’의 거래액을 10조엔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러한 성장전략의 핵심에는 ‘AI의 적극적 활용’이 자리 잡고 있다. 라쿠텐은 “세계에서 가장 AI를 많이 활용하는
05.08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모든 주식들의 총액은 대략 69조달러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2026년 올해 안에 상장을 목표로 하는 거대기업들이 세 곳이나 있다. 스페이스X 오픈AI 앤트로픽이다. 스페이스X의 예상 몸값은 2조달러 이상이고, 오픈AI는 8520억달러, 앤트로픽은 3800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심지어 오픈AI의 몸값이 1조달러, 앤트로픽의 몸값은 9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따라서 이들 세 기업의 가치를 예상해 보면 최소 3조2320억달러에서 최대 3조9000억달러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 이 금액은 현재 미국주식장의 4.68%에서 5.65%에 이르는 비율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 가운데는 이들 세 회사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기존의 다른 기업에 투자한 자금을 빼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그 여파로 다른 회사들 특히 동일한 ‘정보기술 섹터’에 속한 다른 기업들의 주가가 내려갈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과연 그럴까? 빅3의 상장
05.07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커버스토리에서 “누군가 부탄가스(환각제)를 흡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원유 시장을 향한 원색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전세계 일일 수요의 14%에 달하는 1400만 배럴의 공급이 매일 증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물 시장은 연말 유가가 배럴당 88달러로 복귀할 것이라는 이른바 ‘라라랜드’식 환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배럴당 88달러로 복귀는 환상 실제로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종전협상안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며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오히려 시장의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는 파격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의 철저한 해협 봉쇄로 이란의 원유 저장시설이 이미 임계치 수준의 포화상태, 즉 ‘탱크 톱’에 이르렀음을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이란은 늘어나는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해 조만간 유정 자
05.06
인공지능(AI)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전장이 이란이다. 전쟁에 AI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AI 패권을 둘러싼 에너지 전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컴퓨팅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풍력·태양광과 달리 기후의 영향을 덜 받는 청정에너지인 원전에 대한 인식도 유럽연합(EU)에서 바뀌고 있다. 스위스 유력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과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연일 이란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AI를 꼽는 이유다. 최근 독일 출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탈원전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지난달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에너지 정상회의 개막회의에서다. 그는 “1990년에는 유럽 전력의 1/3이 원전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약 15%에 불과하다”며 “믿을 수 있고 저렴한 저탄소 전원을 외면한 것은 실수였다”고 밝혔다. 원전을 폐쇄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정책을 겨냥한
05.04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탱해 온 핵심축인 한미동맹이 최근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이른바 ‘구성 핵시설’ 발언이 기폭제가 된 기밀누출 논란과 미국의 정보공유 제한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치권의 격렬한 여야 공방을 넘어 정부 부처 간의 기능적 시각 차이, 나아가 동맹의 신뢰위기라는 다층적 문제를 수면 위로 노출했다. 특히 북핵 위협의 고도화와 지정학적 파고가 거세지는 엄중한 시기에 발생한 이번 논란은 우리 내부의 전략적 불협화음을 드러낸 동시에 한미 정보공유체계의 취약성을 나타내고 있다. 정쟁으로 내부 보안과 외부 신뢰 실추 정치권은 안보현안을 놓고 날 선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두고 정부와 민주당은 해당 시설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첩보’ 수준의 데이터이며, 정책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통상적인 언
04.30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선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태어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수만년에 걸쳐 전 지구로 그 영역을 넓혔다. 지구를 정복한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대기권을 넘어 우주로 그 경계를 넓히고 있다. 지구별을 떠나 새로운 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우주 탐험은 미국과 소련 간 경쟁에 의해 주도됐다. 소련이 한발 앞섰다. 1957년 10월 4일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다. 이어 1961년 4월 12일 소련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다. 미국은 곧 소련을 추월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미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이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다. 인간은 이제 달을 너머 또 다른 별을 바라본다.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2016년 9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제67회 국제우주항공
04.29
중동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충돌은 선전포고 없이 시작되었지만 에너지와 해상 물류를 동시에 흔들며 세계경제 전반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정은 곧바로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돼 원유와 LNG 가격 상승은 전력비뿐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 가격까지 밀어 올린다. 특히 나프타를 비롯한 화학원료 비용 증가는 플라스틱과 합성소재, 반도체 공정 소재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에 해상운임 상승과 공급지연이 겹치면서 공급망은 더이상 효율을 위한 경제적 장치가 아니라 충격을 견디고 단절을 회피하기 위한 안보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을 무력충돌에다 산업과 경제가 결합된 구조로 이해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소환되는 개념이 ‘군산복합체’다. 이는 전쟁을 움직이는 힘이 군 내부가 아니라 산업 전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은 본래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1961년 1월 퇴임 연설에서 군
04.28
중국이 아프리카를 향한 경제외교의 수위를 한단계 더 끌어올리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14일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아프리카 53개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5월 1일부터 전면적인 무관세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국가에 한정해 제공하던 혜택을 사실상 수교국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다만 대만과 수교를 유지하는 에스와티니는 제외됐다. 이 대목만 보아도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단순한 통상 확대가 아니라 분명한 외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경제와 외교를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결정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겉으로 보면 이번 선언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시장 접근성을 넓혀주는 호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단지 관세인하로만 읽어서는 안된다. 이번 무관세 확대는 중국이 아프리카를 자국 중심의 경제사슬 안으로 더 깊이 편입시키려는 장기전략의 한 장면이다. 중국은 관세혜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물류와 금융, 산업단지와 디지털
04.27
지난 4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8년 만에 다시 인도를 국빈방문했다. 취임 후 1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그것도 세계가 안전장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출렁이는 지금 왜 하필 인도였을까. 국제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던 시대에는 규범과 제도가 위기의 속도를 늦추는 완충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규범은 흔들리고, 공급망은 갈라지며, 해상 교통로는 불안정해졌다. 충격은 더 빠르게 번지고 위험은 더 멀리 퍼진다. 이런 시대에 불안정한 질서 자체를 함께 견뎌낼 파트너를 찾는 것은 중대한 과제다. 인도는 그 드문 나라 중 하나다. 흔들리는 세계와 인도라는 안전망 인도는 거대한 내수시장, 젊은 인구구조, 디지털 역량과 과학 기술력, 제조업 육성 의지, 에너지 전환, 우주와 해양 전략까지, 한 나라 안에 미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춘 나라다. 세계 각국의 자본과 기업이 인도를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1월에는 유럽연
04.24
2026년 2월 28일 아침,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동시 공습으로 시작된 미-이란 전쟁은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충격과 당혹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파장은 유럽의 나토(NATO) 국가나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은 물론, 미국과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나라들에도 똑같이 미쳤다. 공습 개시 39일 만인 4월 7일 휴전에 들어간 이 전쟁이 이쯤에서 끝나든 안 끝나든 향후 각국의 외교정책과 국제정치, 나아가 세계질서에 끼칠 영향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아세안과 동남아 국가들도 이번 전쟁의 충격과 피해를 실감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에 정치적·심리적 상처 남겨 이번 전쟁은 동남아 국가들에 유가폭등과 물류마비 같은 경제적 피해 수준을 넘어서는 깊은 정치적·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전쟁 개시와 수행 전 과정을 통해 보여준 미국의 일방주의는 아세안과 회원국들이 소중하게 키워온 ‘아세안 중심성’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또한 미국 스스로 내세워 온 ‘규칙기반의 국제질서’라
04.23
이란문제를 바라보는 미국 여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미국인은 오랫동안 이란의 핵무장을 원하지 않았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 조사들을 분석해 보면 미국 여론은 2000년대 말부터 이란 핵 문제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2009년 조사에서는 군사행동 위험이 따르더라도 이란의 핵 개발을 막는 편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61%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2012년(58%)과 2013년(64%)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인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핵을 보유한 이란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군사행동이 시작되면 달라진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올 2월 말 실시한 조사에서는 미국의 대이란 군사공격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27%, 반대가 43%, 유보가 29%로 나타났다. 이어 입소스의 3월 말 조사에서는 목표를 모두 이루지 못하더라도 개입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응답이 66%에 달했다. 지난주 조사에서도 이번 군사행동이 가치 있었다는 평가는 24%에 그쳤지
04.22
물리학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는 세 힘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안정된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류츠신의 소설 ‘삼체’나 동명의 영상 시리즈가 이 불안정성을 모티프로 삼았다. 재앙은 이미 요동치던 체제가 마침내 자기 파국의 얼굴을 드러낼 때 찾아온다. 지금의 국제질서가 딱 그렇다. 세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본질은 미국이 설계했으나 이제는 미국 자신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불안정한 체제 그 자체에 있다. 문제는 그 체제의 핵인 미국이 이제는 도리어 그 불안정을 앞장서서 증폭시키는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규칙 설계자에서 파괴자로 한때 미국은 세계 규칙의 설계자였다. 자유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 동맹과 다자주의, 그리고 달러를 축으로 한 국제통화질서가 미국의 ‘삼체’다. 미국은 만들었고 다른 나라들의 순응을 요구했다. 지금의 미국은 자기가 만든 규칙을 흔드는 파괴자가 됐다. ‘삼체’가 서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04.21
“빌어먹을(fucking) 해협을 열어라, 미친 놈들아(crazy bastards). 그러지 않으면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오늘 밤 문명 전체가 사라질 것이다.” 종전협상 중인 이란을 향해 협박과 저주를 넘어 저속한 욕설까지 내뱉은 트럼프는 전쟁에 비판적인 교황을 향해서도 선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자신을 예수처럼 묘사하는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12시간 만에 삭제하기도 했다. 이런 극단적 발언과 기행은 단순히 트럼프 특유의 도발적이고 충동적인 스타일을 넘어 그의 인지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의 막말정치는 2016년 첫 대선 도전 때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기성 정치권을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으로 규정하고,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Fake News)’로 호도하면서 이를 타파할 ‘아웃사이더’ 이미지와 막말로 지지자들을 규합해 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골적인
04.20
국제질서의 대혼돈을 초래한 중동전쟁이 출구를 찾고 있는 시점에 미중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4월 15일 미국이 중동전쟁 발발 후 석유가격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실시한 러시아 및 이란 산 원유 구매 허가를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을 겨냥한 정책은 아니다. 그런데 발언 중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와 이란과의 금융거래에 대해 경고하고 중동전쟁 중 중국은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였다고 비판한 것이 미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았다. 중동전쟁에 미중관계마저 불안해지면 국제질서는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베센트 발언, 중국 겨냥한 압박일까 불과 2주일 전만 해도 트럼프가 이란이 협상장으로 나오는 데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어 이 갑작스러운 상황은 다소 당혹스럽다. 중국은 이란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
04.17
막대한 부채와 금리 부담에 짓눌린 정부가 우주 개발의 주도권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투자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국가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어렵고, 재정 제약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우주 산업의 중심축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과거 국가가 독점하던 영역을 이제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다음 우주 경쟁’은 사실상 기업 간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가 프로젝트’의 구조적 한계 파이낸셜타임스(FT) 2월 기고에서 과학 칼럼니스트 안자나 아후자는 NASA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기술적으로도 여전히 어려운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 프로젝트는 달까지 약 38만4000km를 왕복하는 고난도 임무로, 연료 충전 시험 중 수소 누출이 발생하는 등 기술적 문제로 일정이 지연되기도 했다. 비용은 더욱 심각하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는 1000억달러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단일 발사 비용도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블룸버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