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8
2026
로컬 브랜드하면 흔히 대전 성심당이나 군산 이성당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 빵지순례 코스 말고도 역사와 문화, 특유의 제조 기법을 자랑할 만한 브랜드들이 많다. 지식재산처가 5월 발명의 달과 제61회 발명의 날(5월 19일)을 맞아 지역 브랜드 가치 재발견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캠페인을 전개하며 손잡은 주류기업들이 그런 경우다. 이번 협업에 대선주조(부산) 금복주(대구·경북) 보해양조(광주·전남) 선양소주(대전·세종·충남) 무학(울산·경남) 충북소주(충북) 한라산(제주) 등 지역을 대표하는 7개사가 참여했다. 소주병 라벨에 ‘지식재산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문구를 넣었다. QR 코드를 찍으면 전국에서 운영하는 지역지식재산센터(RIPC)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RIPC는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 지원, 예비창업자 아이디어 상담, 유관기관 사업 연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6.3 지방선거에 나선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공
05.14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첫 기억은 만화적 상상력이었다. 일본의 마징가Z에 맞선 한국의 태권V는 기계 영웅의 이미지였고, “국가위기 시 KIST 본관 옆 연못이 열리고, 태권V가 출격한다”는 설화 같은 유머는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이제 그 시절의 막연한 동경과 상상은 ‘피지컬 AI(Physical AI)’란 실체적 기술이 되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2025년 CES에서 젠슨 황이 선언했듯 생성형 AI 이후는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로봇의 시대다. 당시 무대에 등장했던 휴머노이드 14대 중 6대가 중국산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2024년 이후 소개된 휴머노이드의 70%가 중국산일 정도로 로봇기술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년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 처음 출전했던 로봇들이 불과 1년 후 인간의 기록을 추월하고, 춘절 행사에서 어린이들과 정교한 대련을 하는 모습은 기술발전의 가속도를 증명한다. 중국의 로봇산업은 이제 거리
05.13
대한민국의 ‘광장 민주주의’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가 오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권력을 견제하며 역사를 바꿔왔다. 그러나 시선을 우리들의 삶터인 도시와 지역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자치 민주주의’는 뒤처져있다. 시민이 주인인 ‘민국’이 아니라 거대정당이 지배하는 ‘당국’에 가까운 현실이다. 선진국들은 오랜 시간 경제와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켜며 시민 자치의 경험을 축적해왔다. 반면 우리는 국가와 엘리트가 주도한 압축성장의 길을 빠르게 달려왔다. 경제발전에는 성공했지만 자치 민주주의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방선거는 여전히 정당공천과 인기경쟁, 그리고 개발공약 중심의 선거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왜 좋은 시장을 뽑지 못하는가. 사람을 몰라서가 아니다. 판별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의 말솜씨나 이미지, ‘무엇을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에 끌리지만 그 공약이 도시를 어디로 이끌지는 따져 묻지 않는다. 선거는 사람을 고르는
05.12
이제는 곧 인공지능이 많은 부문에서 사람의 능력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역할 상실에 빠질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긍정적 사고 회로를 작동시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전의 시절과는 달리 사람들이 좀 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유로운 삶을 살아도 되는 시대가 되지는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초고도의 인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럼 어떤 교육이 이런 최고 수준의 인재를 만들어 낼까?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빅터 앰브로스 교수가 2025년 2월 한국을 방문해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강연을 시작하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의 성적표를 공개했다. 그 성적표에 의하면 대부분의 과학 수학 과목에서 A학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부끄러운’ 성적표를 굳이 공개한 이유는 어렸을 때의 나쁜 성적이 노벨상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음을
05.11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말들이 있다.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가 유리하다” “비가 오면 보수가 유리하다” “막판 부동층이 승부를 가른다” “여론조사 1위 후보에게 표가 쏠린다”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속설들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래서 언론보도나 선거해설에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실증적 선거 연구는 이런 속설들이 대부분 허구임을 보여준다. 가장 널리 퍼진 통념은 투표율과 이념성향의 관계다. 항상 노령층의 투표율은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청년층 유입 때문이므로 진보 진영이 유리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이 도식과 상반된다. 17대 대선에서는 투표율 63.0%에 보수인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18대 대선에서는 투표율 75.8%에 박근혜 후보가, 19대 대선에서는 투표율 77.2%에 문재인 후보가, 20대 대선에서는 투표율 77.1%에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 투표율이 높아도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승리했다. 일관된 방향은 없다.
05.07
지난 4월 28일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함으로써 5월부터 최소한 공공부문에서는 1년 미만 ‘쪼개기 계약’과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채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에 더해 내년부터는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 불안정한 고용을 보상하기 위해 일종의 퇴직수당격인 ‘공정수당’을 새로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최저임금의 118%를 생활임금의 평균으로 보아 ‘적정임금’으로 설정하고 급식비 복지포인트 명절상여금 등 복지혜택에서의 차별을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공정수당에 대해 노동부 담당자는 “단기계약일 때 더 높은 보상률을 제공해 노동자의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장기계약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보도되었다. 기간제 채용을 줄인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번 대책은 대통령의 “불안정한 노동에 대해 더 많은 보상을 해야 한다” “정부가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 등의 언급에 따른 조치다.
05.06
6.3 지방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과 후보들은 분주해졌지만 세상의 관심은 아직 무덤덤하다. 누가 누구를 상대로 얼마나 이기고 질 것이라는 식의 경마식 보도는 선거 때 열독률이 가장 높은 뉴스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뉴스로 먹고 사는 언론에서도 이런 아이템을 그다지 즐겨 취급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시중에선 오히려 선거 무관심, 선거 실종 같은 단어들이 현실감 있게 와 닿는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전쟁과 휴전 소식, 그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주식시세는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저만치 밀어낸다. 하긴 지방권력이 누구 손에 들어가든 내 삶과 별무상관이라 생각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결과가 뻔한 선거에 구태여 눈길 줘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당 대표에서 쫓겨나 무소속으로 출전한 야권의 스타정치인, 그리고 야당 공천을 받은 공식후보가 3파전을 벌이게 된 부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그나마 볼거리
05.04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의 간택’이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한국이 북한과 대치하는 데다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약소국 신세일 때였다. 정통성이 없는 군사독재정부였을 때 더욱 그랬다. 한국이 미국의 신임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은 미국 중심 질서 안에서 태동한 나라여서다. 광복 직후 한반도 남쪽의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군정 아래 들어갔고, 정부 수립도 미국의 승인과 지원 속에 이루어졌다. 6.25전쟁 이후 미국은 한국의 생존 보증자처럼 됐다. 이 출발이 암묵적 구조를 고착시켰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좌익 이력을 지닌 박정희로서는 대표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군사정부 ‘승인’을 받았다고 과시한다. 이게 엄청난 정치적 효과를 몰고 온다.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뒤 1979년까지 장기집권했다. 쿠데타로 집
04.30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 이 말은 소설가 정을병의 단편 ‘육조지’에 나온다. 구속된 피고인의 넋두리로 형사사법 체제를 풍자한 거다. 앞부분을 보면 맥락이 이해된다.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이다. 소설은 ‘창작과 비평’의 1974년 겨울호에 실렸다. 군사독재 철권통치 시절이다. 지금은 어떨까. 민주화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맞춰 형사사법체제도 선진화됐을까. 전혀 아니다. 일단 수사대상에 오르고 기소되면 변호사를 써야 한다. 기본 수임료는 500만원선. 사건 성격에 따라 변호사비는 천문학적으로 뛴다. 과거 중견 화장품업체 사장의 변호사비가 공개된 적이 있다. 판사 출신 최 모 변호사를 50억원에 선임한 거다. 서민 기본 수임료의 1000배다. 그 사장은 집행유예를 받지 못하자 구치소에서 변호사의 뺨을 때렸다. 분노한 변호사가 고소하면서 수임료 규모가 드러났다. 유전무죄를 믿는 그들만의 세상 일면이
04.29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는 사람도 있지만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전쟁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고 주거지와 생산시설을 파괴해 인력과 자본스톡을 크게 감소시킨다. 사람들이 애써 쌓아올린 부를 허물어뜨리는 경제적 재앙이다. 고전경제학은 공급역량 측면에서 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본다. 전쟁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여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정부지출이 늘어나므로 국내총생산이 증가하고, 인력이 전쟁에 차출되므로 실업률이 줄어든다. 거시적 수요를 중시하는 케인즈경제학의 입장에서 본 전쟁의 긍정적 영향이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중동전쟁이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산유국들이 밀집해 있는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이라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중동사태가 호전되어도 한번 오른 국제유가가 다시 내려가는 것은 단기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다수 에너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04.28
지난 30년은 ‘세계화’의 시대였다. 국경은 낮아졌고, 생산과 물류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국경을 열고 달려온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 시대였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들며 이 가정은 흔들리고 있다. 전쟁은 더이상 특정 지역의 군사적 충돌에 그치지 않는다. 식량가격 에너지비용, 금융시장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을 흔드는 ‘경제 시스템의 충격’으로 확장되고 있다. 평화시대는 저물고 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그 양상이 바뀌었다. 현대전은 화면 속 지정학적 공간, 전선(Frontline)에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새로운 네트워크 전선이 승부처다. 러시아의 유전과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호르무즈와 홍해의 물길이 그것이다. 경제의 숨통을 조일 목적으로 국가의 자금과 물자의 이동을 차단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무기화다. 그 결과, 전쟁은 당사국의 피해를 넘어 세계인의 지갑까지 공격하는 양상
04.27
고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서기 284~305)는 제국 중흥을 위해 통치조직과 군대를 크게 확충했다. 1세기에 25만명이었던 병력을 60만명으로까지 불렸다. 늘어난 재정소요는 통화량 확대로 해결을 시도했다. 물가가 치솟자 ‘최고가격 칙령’(301년)을 발표했다. 곡물 옷 운송비 등 1400여개 물품과 용역에 최고가격을 매겼다. 최고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은 물론 구매자까지 사형에 처한다고 엄포를 놨다. 서슬 퍼런 조치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상인들이 밑지고 팔게 된 물건을 거둬들였다. 암거래되는 물건들에 ‘위험수당’이 붙으면서 값은 되레 더 치솟았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지도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도 같은 실수를 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가가 치솟자 곡물과 빵, 우유 등 생활필수품의 가격상한선을 정부가 정하는 최고가격제(1793년)를 발동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로마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격을 낮추겠다던 정책이 식량부족만 심화시키는 참사를 일으켰다.
04.23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 재개가 난항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전쟁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개연성이 높다. 벌써부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 패권이 급격히 저물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완벽한 승리의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세계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있는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실망 탓이 클 것이다. 트럼프행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도 크다. 미국 경제가 고유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투자자들이 전쟁 정보를 이용하여 한몫을 잡고 있다는 뉴스가 그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트럼프의 거친 관세정책, 베네주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등에 대한 과도한 요구에 부담을 느끼던 주요 국가들도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태세다. 모호한 전쟁 명분, 민간인 폭격으로 트럼프 지지율이 바닥인데다 마가세력의 동요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가 미국의
04.22
일론 머스크가 다소 무모해 보이는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반도체 공장을 직접 짓겠다는 ‘테라팹’ 구상이 그것이다.(로이터, 2026년 3월 23일 자) 그가 미국 텍사스에 세우려는 이 반도체 공장은 기존 범용 칩만으로는 자신의 비전을 담아낼 수 없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단순한 생산시설 신설이 아니라 반도체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의 조성자로 변신하겠다는 야심에 가깝다. 엔비디아를 위협하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삼성전자와 TSMC라는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기업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들여 생산시설을 내재화하겠다는 발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른 기업이라면 막대한 초기투자와 수율 문제, 공정기술의 불확실성 때문에 외주 생산을 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후발주자로서 실패 확률도 높다. 반도체 산업은 한 번의 실패가 단기간에 교정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테라팹이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머스크는 자신이 구상
04.21
지난 3월 30일 제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은 지역의 미래와 직결된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대응의 최적지로 제주를 지목하며, 재생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는 2013년 제주가 야심차게 선포했던 ‘탄소제로섬 2030’(Carbon-Free-Island2030)의 비전을 국가적 어젠다로 다시금 소환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전력 수요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운행 차량 37만대 전체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계획의 국제적 위상은 대단했다. 특히 2015년 프랑스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당시, 우리 정부는 파리협정의 주요 모델로 제주의 탄소제로섬 비전을 전세계에 직접 소개하며 큰 주목을 끌었다.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대응의 선도국임을 증명하는 핵심 브랜드가 바로 제주였던 셈이다. 이
04.20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없애거나 바꾸자는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수시로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인 시절부터 상징적인 표현으로 규제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목포 대불산업단지 진입을 방해하는 전봇대가 몇 달째 방치된 사실을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손톱 밑 가시를 빼야 한다”며 규제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가 붉은 깃발을 꽂은 마차를 추월하지 못하게 해 자동차산업이 뒤졌다며 ‘붉은 깃발’을 치우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들을 국가대표 선수로 칭하며 “(선수) 신발 속 돌멩이를 빼내겠다”고 했다. 5년 주기로 낡고 불합리한 규제들을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신발 속 돌멩이’로 비유하며 수술 대상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구호에 그쳤다. 정부마다 나름 규제개혁 건수를 들먹이며 자랑했지만,
04.16
바람이 분다. 지방선거가 눈앞이다. 50일도 안 남았다. 여기저기 출마자들이 깃발을 흔든다. 헌데 색깔도 글씨도 흐릿하다. 초록동색이거나 농담만 다른 무채색이다. 그러니 깃발이 펄럭여도 ‘소리 없는 아우성’조차 없다. 울림이 없는 거다. 표심도 잔잔하다. “골라, 골라” 외쳐도 힐끗 보고는 지나친다. 시민들은 10대 0이냐, 9대 1이냐 내기 건다. 지자체장 후보 경선에서 여당은 현역 전패, 야당은 현역 불패인 배경이다. 흥이 날 리 없다. 오히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눈길을 끈다. 조국혁신당 조 국은 평택을, 국민의힘 출신 한동훈은 부산북갑에 깃발을 꽂았다. 부산갈매기 조가 부산을 떠나고 검사로 3년 근무한 인연 뿐인 한이 발을 들였다. 대신 우회 대결이 됐다. 변수는 있다. 둘 다 제3당과 무소속이다. 평택을은 단일화가 관건이다. 부산북갑은 무공천이 이슈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후보를 낼지, 이른바 자객 공천을 할지 여부에 판세가 흔들릴 전망이다. 조의 깃발은 “
04.15
나는 운전대를 잡고 주택가 도로를 지나고 있다. 저 멀리 횡단보도가 보인다. 그 앞 차도와 보도의 경계에는 가지런히 다듬어진 쥐똥나무 관목이 줄지어 서있다. 대략 1m 남짓 높이다. 그 너머에 어른이 서 있다면 물론 알아볼 수 있다. 상체가 관목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1m도 안되는 키 작은 아이가 서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관목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아이가 차도로 뛰어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찰나까지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가속페달을 밟고 있을 것이다. 우리 도시는 늘 위에서 보기 좋게 디자인되지만 정작 삶은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높은 곳에서 보면 도시는 질서정연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선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다. 도시를 어디에서, 누구의 눈높이에서,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 이 질문에 따라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95cm는 만
04.14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었다. 중동에서 시작된 전쟁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확인된 세계 질서는 이제 더욱 분명해졌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어느덧 45일째 접어든 이번 전쟁은 멀리 떨어진 중동의 불안정이 한국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어떤 의미인지 다시 묻고 있다. 정부가 ‘최고가격제’나 ‘차량 5부제’ 등 고강도 정책으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그 부담은 가계와 기업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2주 간의 휴전 선언으로 포성은 잠시 멎었지만, 협상 타결은 쉽지 않고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아울러 미국이 중동을 떠난다 해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대표되는 중동의 불확실성은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불간섭이라는 새로운 국제 환경에서 ‘미국 없는 중동’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서 가장 불안한 고리로 남
04.13
흔히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고전적인 논쟁을 즐기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바이오산업에선 정답이 명확하다. 닭이 먼저다. 여기서 닭은 우수한 연구인력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숨쉬는 생태계를 의미하며, 달걀은 그 결과물인 신약과 사업화 성과를 뜻한다. 닭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사육 환경, 즉 생태계(허브)가 제대로 갖춰져야 비로소 황금알을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K-바이오허브’란 이름으로 보스턴 모델을 이식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보스턴의 본질과 한국의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인식의 격차가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황금알을 낳는 혁신의 주체를 키우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들을 모아둘 ‘물리적 공간’을 짓는데 매몰되어 있는 것인가. 보스턴 모델 겉모습 아닌 내용 배워야 미국 보스턴의 캔달스퀘어는 과거 우범지대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1마일’로 탈바꿈했다. 이 기적의 이면에는 정책적 열망과 리더십에 따른 철저하게 계산된 생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