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
2025
로마시대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비판정신을 담아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마 권력층의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를 나무랐다. 타키투스는 저서 ‘아그리콜라’에 ‘(로마인들은) 약탈 학살 강탈에 제국이라는 거짓이름을 붙이며, 폐허를 만들어 놓고 이를 평화라 부른다’라는 칼레도니아 족장 칼가쿠스의 연설문을 담았다. 오늘날 ‘그들은 사막을 만들어 놓고 그걸 평화라 부른다’라고 축약해 전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영토를 빼앗고 양민을 짓밟아 놓고선 ‘평화를 위해서’라고 내세운다. 푸틴은 침공 명분의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나치세력 제거를 들었다. 그것도 전쟁이 아니라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둘러댔다. 러시아군은 전쟁 개시 후 3년 반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았다. 최근까지 병원 학교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일삼았다. 심지어 어린이 병원을 목표로 삼아 대량학살을 저질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
08.21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에 대한 감탄과 우려의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중국 인재는 공대에 몰리는데 한국 인재는 의대에만 미쳐있다는 ‘21세기형 망국론’이 정설이 됐다.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법조인 의사가 공무원으로 편입되어 있어서 경제적 보상을 못받는 그 나라의 제도 때문에 인재가 공대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의사 월급을 국가에서 공무원 수준으로 규제한다거나, 판·검사에서 물러난 법조인의 변호사 개업을 법으로 막아 그들이 몇년 안에 수십억 재산을 모을 기회를 없앤다면 탁월한 두뇌의 흐름은 다시 공대 쪽으로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법조인이나 의사직은 이제 신분상승보다 신분유지의 직업에 가깝다. 연소득이 수억원인 의사 집안에서 금수저로 자란 자녀에게 공대를 권하는 건 부모에 비해 겨우 1/3 정도 수준의 경제생활을 감수하란 뜻이다. 요즘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 고교와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부터 쌓
08.20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외교적 ‘구성의 기술’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과의 현안 조율을 거친 후 한미회담에 임하는 것은 동북아 질서에서 중심적 위상뿐만 아니라 외교의 자율성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는 한일 협력이 한미일 협력의 토대를 강화하고, 한국이 동북아의 ‘중재자’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민주권 중심의 외교 좌표 설정으로 해석된다. 한국 외교는 지난 수십년간 ‘동맹’이라는 고리에 묶여 자율성을 제약받았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미래지향성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도 위상이 바뀌고 달라졌다. 지금 미중이 사활을 건 전략경쟁에 돌입했다. 인도 태평양을 두고 미중이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동북아 정세는 불안정한 변동기에 들어섰다. 그 중간에 한국이 있다. 한국의 외교적 선택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한국 외교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까? 먼저, 한일 정상회담이다.
08.19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미래가 이미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확정된 미래’라고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미래는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현재 출산율과 인구구조가 이미 ‘감소 경로’에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며 출생자수보다 사망자수가 많아져서 총인구 감소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인구구조상으로도 젊은 여성인구 자체가 줄고 있어서 설령 출산율이 회복된다 해도 회복가능한 총인구 수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외국 이민자가 늘어나서 인구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도 정치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인구감소는 이미 확정되었고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줄어드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석유 고갈은 확정된 미래라고
08.18
2025년의 광복절은 몇 가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정부와 독립운동 단체가 역사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기념식을 열던 볼썽사나운 일이 재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권교체 이후 독립 광복의 의미를 다시 살린 결과다. 그러나 다른 한편 광복의 햇수가 쌓이는 만큼 분단이 길고 깊어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분단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평화가 위태로울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위험에 직면해야 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평화와 상생공존, 공동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선제적 도발도 배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역대 대통령이 광복절마다 통일문제를 언급해 오기는 했지만 분단체제 자체를 극복 대상으
08.14
“화무십일홍이다.” 구속 전 피의자 신문에서 김건희씨가 술회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거다. 윤석열씨도 일찌감치 권력무상을 짚었다. 대통령후보 시절 “5년짜리 권력이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 말하자면 ‘권불오년’이다. 비록 그 자신은 5년은커녕 3년도 채우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권불오년, 화무십일홍”으로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부창부수(夫唱婦隨)한 셈이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동시 수감에서 일말의 그리스식 비극을 본다. 운명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 운명에 다가가는 아이러니 말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서서히 파멸하고 관객은 그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모순에 가득 찬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에서 오히려 긍정의 힘을 얻는 거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이를 짚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모순과 고통을 긍정으로 승화하는 그리스 비극의 스토리 구조를.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일렉트라’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운명과 신념, 고뇌와 선택의 모순 속에서 진실을
08.13
정부와 산업계는 지속가능전략 수립을 위해 미래 환경이슈를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현재는 기후변화에 절대적 비중을 두지만 다음 단계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기후 다음으로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주장해왔다. 그 예상은 다양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이슈에서도 몇가지 이정표적인 사건이나 결정들이 발생해왔다. 기후행동을 위한 과학적 연구와 자료를 제공하는 연구기관으로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1988년 출범했듯이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서비스에 관한 정부간정책플랫폼(IPBES)이 2013년 출범했다. 또한 과학적 연구–정부정책–산업계 연계의 시발점이 되는 기업 공시제도에서 기후와 생물다양성에 특화된 공시 요구가 시작되었다. 2015년 자발적 기후정보 공시를 위한 기후관련재무공시태스크포스(TCFD)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어 기후공시 보편화의 혁신적 출발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2023년 자연관련재무공
08.12
독일 하노버에 있다는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 무덤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에 비서 한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서 인터넷을 검색하는 중이다. 라이프니츠는 영국 수학자 뉴턴과 함께 미적분의 공동 발견자로 수학사에 이름이 높다. 어렵사리 무덤 위치를 확인하니 ‘성요한 교회(Neustädter Kirche)’라는 곳이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어 살펴보니 본당 내부가 소박하다. 인류지식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 이런 대우를 받나 싶다. 라이프니츠에 대한 푸대접은 수학사에서도 비슷하다. 필자는 ‘미적분의 역사’(C. H. 에드워즈)라는 책을 최근까지 지인들과 읽었는데 책에 이런 맥락의 글귀가 나온다. “와이트사이드(D. T. Whiteside)가 뉴턴의 수학 논문들을 정리해내는 기념비적인 작업을 했다. 반면에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영어권 자료들이 소홀히 하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어떻게 개
08.11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예고없이 생중계된 이 회의에서 산업재해 대책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았을 때 과태료가 얼마인지 물었는데 참석자들이 답변하지 못하자 이 대통령이 말했다. “이게 우리의 문제죠. 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잠시 뒤 회의장 밖에서 확인해 답이 전해졌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미비로 적발될 경우 과태료는 최소 5만원, 최대 5000만원이었다. 이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는 등의 제안이 나왔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조치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장을 아예 모르거나 상당한 거리가 있는 법규와 제도·행정이 수두룩하다. 이재명정부가 애써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음식점, 마트나 식료품점, 편의점 등이 없는 농촌·산촌·섬지역 주민에게 소비쿠폰 쓰기는 버거운 일이다. 쿠폰으로 생활필수품을
08.07
‘불나면 그냥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칼럼을 쓰는 날 아침 한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소의 의문과 불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 14만551가구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비율은 2.8%(3884가구) 뿐이다. 검색해 보면 영구임대주택은 노태우정부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 포함되어 1992년까지 지어졌다. 이 사업이 중단된 이후 50년 임대아파트가 나왔는데 이 경우에도 스프링클러 설치 비중은 7.4%뿐이라 했다. LH 관련자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담당자는 간이 스프링클러라도 설치하자는 사업에 따르는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국민의 치명적인 위험을 막는 예산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을까? 또 다른 조사 결과와도 연결되었다. 통계청은 7월 29일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지
08.06
일찍이 리영희 선생은 “새가 양 날개로 날듯이 정치도 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경쟁해야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한쪽이 완전히 망가져 경쟁이 사라졌다. 이래서야 한국 정치가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망가진 것은 보수쪽 날개인 제1야당 국민의힘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선포한 뒤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 속에 탄핵되었다. 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완패해 국민의힘이 야당이 된 게 지난 6월이다. 대선에서 완패했으면 철저히 반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2일 치러질 전당대회도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희망을 보여주기보다 윤석열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갈려 대결하는 양상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3일 열린 당 대표 후보 비전 발표회에서도 비전은커녕 ‘찬탄’과 ‘반탄’의 일그러진 모습만 보였다. 특히 한국사 강사 출신인 전한길씨가 윤 전 대통
08.05
물리학자들은 한학기 수업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학회 참석 여행을 떠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기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지난 학기동안 전세계에서 이룬 첨단 연구결과가 무엇인지 듣고 배우고 토론한다. 필자도 올 여름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대중에게는 휴양지로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에는 수준 높은 공과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열대의 해변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최신식 연구동과 기숙사가 자리를 잡고 장학금으로 전세계에서 우수한 대학원생을 불러 모은 연구중심 대학이다. 학회 마지막 발표자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오시카와 교수였다. “이 학회 참석자 중 내가 최고령이더라”란 멋쩍은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강연이 이어졌다. 그보다 겨우 한살 적은 필자는 두번째로 나이 많은 학회 참석자란 명예를 자동으로 수여받았다. 아들 또래 연구자들의 수준 높은 연구 결과 발표에 귀 기울이고 질문하고 배우며 벅찬 한주일을 보내고 왔다. 학회식사와
08.04
정권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사표 내는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전 정권 때 임명된 공직자들이 새 정부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눈치껏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알아서 물러나지 않고 배짱부리듯 버티다가 정권에 밉보이면 어떤 수모와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지혜로운’ 생각이다. 얼마 전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검찰총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나, 윤석열정부 초기 금융위원장이 임기 2년 남겨놓고도 사표를 던진 것은 다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고위 공직은 임기와 상관없이 정권이 교체되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나는 게 보통이다. 정무적으로 임명된 자리는 정무적으로 판단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자리 문제가 순리대로 해결되지 않고 늘 잡음이 불거지는 곳이 있다면 언론 방송계다. 정부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한 KBS와 EBS는 물론 상법상 주식회사이며 특수법인이 대주주로 있는 MBC, 또 이들 공영방
07.31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인공지능(AI) 및 가상화폐 코인 기술 공약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가지 모두 기술 및 제도 기반이 부실한 채 과장된 수사로 추진되고 있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골자다. 정치적 동기가 앞선 탓이 크다.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 공약이 소버린AI라는 국내판에 한정되어 글로벌 제품을 기대하는 현실적 기술 수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소버린 시제품은 이미 국내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AI 100조원 공약은 그들을 국내 시장 상품화하는데 수십조원 지원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딥시크는 지금 사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그러면 우리 공약에는 딥시크 같은 글로벌 시장 도전은 없다는 말과 같아진다. 챗GPT는 지금 사용자가 7억명이 넘는데 개발비는 7조원 가량 소요됐다. 생성AI 및 저전력 기술은 날로 발전해 싱가포르정부는 700억원이라는 선에서 소버린AI를 현재 제작 중이다. 100조원이란 거금이 용처 세부 계획 없이 추진될 경우 제2의
07.30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인공지능(AI)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의외로 많지 않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 가운데 AI를 유의미하게 업무에 적용하는 곳은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기술이 아직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안전성과 윤리문제 탓일까. 영국 시사주간지 디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 기사(Why is AI so slow to spread?)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냈다. ‘관료주의가 주범’이라는 것이다. 안전·도덕 등의 문제와 무관하게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AI 기술이 수두룩한데도 대부분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고 그 까닭은 ‘밥그릇’을 위협받게 된 임직원들의 관료주의적 저항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성과를 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조직이 이 정도라면 ‘경쟁 무풍지대’ 정부조직의 관료주의는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신산업 규제합리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는 뉴스가 이런
07.29
요즘 국제뉴스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이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관세협상과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성범죄자 엡스틴파일 공개 관련 딜레마일 것이다. 두 가지 이슈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관세협상 의사결정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엡스틴파일에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분산되면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관세협상에서는 정책의 비중이 더 크고, 엡스틴파일 문제는 정치의 비중이 더 크다. 정책과 정치가 충돌할 때 정치가 이기는 것이 현실이다. 2003년 1월 필자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 갔을 때 일이다. CNN의 한 기자가 방금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이야기하다 오는 길이라면서 클린턴 말로는 재임기간 중에 북미수교를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정말 조금 부족해서 마무리 짓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중동문제에 신경써야 했기 때문이라 했다. 필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진짜
07.28
“중동에는 석유가 있지만,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中國有稀土).” 1992년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한 말이다. 이 남순강화는 선부론(先富論, 부자가 될 사람은 먼저 부자가 되게 하자)과 개혁개방을 천명해 중국이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의 희토류 언급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33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되면서 희토류는 양국 협상에서 가장 빛나는 전략카드로 떠올랐다. 올해 봄 미국은 중국에 최고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인공지능(AI)용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를 비롯해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중국은 최고 120%의 보복 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섰고 양국의 무역 분쟁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두 나라는 지난 6월 런던에서 2일간 협상을 벌였고, 일단
07.24
중세 이전 지도에는 세상의 끝이 있었다. 바다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거다. 머지않아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지도가 나왔다. 축적도 위치도 부정확했지만 이 지도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손 안의 모바일 지도로 골목길까지 찾아가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도 관련 퀴즈 하나. 남북이산가족이 고향을 추억할 때 보는 지도는? 네이버 지도라고 대답했다면 “땡~”이다. 정답은 구글 지도다. 강원도 고성~금강산~원산지역을 보자. 버스와 배로 관광했던 금강산이다. 하지만 네이버 지도는 깜깜 먹통이다. 고성읍~통천읍~원산시 외에 아무런 지명이 없다. 반면 구글 지도는 고성군~장전읍~통천군~봉천군~원산시까지 자세하다. 큰 지명은 한글로, 리(里) 단위의 작은 지명은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여기에 평양-원산고속도로와 마식스키리조트, 아마도 군사용일 듯한 구읍리비행장까지 표시돼 있다. 네이버는 북한의 지도반출을 승인 받지 못했을까. 북한은 왜 구글에 지리정보를 제공했을까. 평양을 보면 ‘로
07.23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이 관심을 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는 집단적 행위다. 그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소통은 공동체의 성패를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정치지형은 소통의 도구인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급변해왔다. 하지만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제자리걸음이다. 권력 기관이 제공하는 일방적 정보에 익숙해져 있다. 이 같은 소통 방식은 정치 불신만 키웠다. 지역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방식 등 구조적 한계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권위적 문화와 목표지향적인 리더십, 매체 의존적 행정시스템이 만든 결과다. 한국 정치가 소통의 부재로 인한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싹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식 소통’을 주목하는 이유다. 언론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정치적 의사결정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되었다. 시민토론회, SNS 라이브 질의응답, 유
07.21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라는 말을 남겼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일본 경찰이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작성한 공술서에 담겼다. 선교사로 내한했던 헐버트가 을사늑약에 항거하고 항일운동을 이어가다 1907년 사실상 강제 추방당한 일을 안 의사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헐버트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일제의 식민지배와 만행을 규탄하며 평생을 오롯이 한국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는 38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1000여 차례의 강연, 기자회견, 기고 같은 방법으로 일본을 비판하고 압박했다. 한편으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승만과 한인 독립운동단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인들도 한국 독립이 가망 없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훼절한 뒤에도 외국인인 그가 끝까지 변심하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