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2025
인공지능(AI) 시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주식 하는 사람은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 관련 주식이 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쾌재를 부르거나 한숨을 쉰다. 인공지능은 이미 의사보다도 더 정확히 병을 진단한다. 작사·작곡도 인간보다 더 뛰어나게 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인간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나은 마라톤 기록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할 것 같다. 전쟁의 승패도 인공지능 드론과 로봇이 좌우할 것이다. 법정에서 판결문이나 변론문도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작성하는 사실상 인공지능 판검사·변호사 시대가 온다.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정당들도 틈날 때마다 인공지능을 들먹인다. 정상외교에서도 인공지능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우리 언론은 하루가 멀다는 듯 인공지능 관련 뉴스 기사 사설 칼럼 등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광풍에 휩쓸려 이것이 가져올 해악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앞장서 말하기를 꺼린다. 인류 역사를
지난 11월 발표된 한미 팩트시트는 단순한 외교문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 본격적인 과학기술산업(STI, Science–Technology–Industry) 동맹을 맺고 신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음을 알리는 구조적 문서다. 이번 팩트시트에는 한미 군사동맹의 현대화뿐 아니라 한국정부와 기업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1500억달러는 조선 부문), 반도체 공급망 공동 대응, 전기차·배터리 가치사슬 협력, 조선·해양기술 및 제조 협력, 인공지능(AI)·양자컴퓨팅·정찰기술 협력, 우주·사이버 협력, 핵추진잠수함 보유 승인, 민간 핵농축·재처리 용인 등이 포함되었다. 오늘의 신냉전은 군사·이념 대결이 아니라 AI·반도체·배터리·우주·양자 등 전략기술·산업·공급망·인재를 둘러싼 기술패권 경쟁이다. 첨단기술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면서 동맹의 중심도 군사에서 STI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전략기술 동맹의 핵심 국가로 편입시키는 배경도 이러한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오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당초 계획보다 하루 연장하며 지난주 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치열한 논쟁 끝에 도출한 선언문에는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담지 못했다.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완강한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현대 산업화의 근간이 되었던 화석연료와 단절을 선언하지 못하고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겠다는 모습이었다. 물론 합의문에는 해수면 상승, 가뭄 등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적응 재원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약 3배로 늘리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억제하기 위한 행동의 ‘이행 가속화’를 목표로 하는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운영하기로 한 것도 소중한 성과다. 그런데 이러한 수준의 합의문이 과연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후재앙이 현실인데 화
11.25
동북아의 지도가 조용히 뒤틀리고 있다. 이제 판을 움직이는 것은 ‘거리’와 ‘속도’, 그리고 ‘정밀성’이다.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Long-range precision steike)는 자국 영토 밖 수백~수천km 거리의 표적을 짧은 시간에 높은 정확도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재래식 또는 핵 탑재 타격체계다. 즉, ‘멀리·정확히·빨리’ 타격하는 무기이며, 단순히 ‘타격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작전수단’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구조를 재편하는 냉정한 기술적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정밀타격 무기는 이제 ‘전술’이 아니라 ‘지정학’이다. 그것은 전략적 메시지이자 위기관리의 언어이며 전쟁의 문턱을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오늘 동북아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된다. 정밀타격 경쟁이 가속될수록, 북·중·러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
199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정보통신기술(ICT) 생산성 논쟁은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동일한 경고를 던진다. 당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도입했지만 정작 매출 증가나 생산성 향상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최신 장비를 갖추고도 업무 방식은 기존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범용인공지능(AGI)과 대규모언어모델(LLM)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투자는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기업들은 인력 역량 결여, 데이터 축적 미흡, 운영체계 미비 등 다양한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창출하지 못하는 AI 투자는 결국 국가적 자원 낭비와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에 기여하려면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생산성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AI 도입 방식에 있다. 그 해법과 기회
날이 제법 춥다. 장갑 낀 양손을 웃옷 주머니에 넣은 채 종종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배풍등(排風藤)을 향한다. 가운데께로 푸른 빛 절반, 가장자리로는 짙은 갈색 절반쯤이라 가지에 달린 몇 개의 배풍등 잎은 막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서는 북반구 온대지방의 날씨를 닮았다. 풍(風)을 쫓는 효능이 있다는 이 식물을 영어로는 리라(lyre) 닮은 잎을 가진 ‘밤그늘(nightshade)’이라 부른다. 리라는 한쪽 끝이 백자 손잡이 흡사한 현악기를, 밤그늘은 밤에 독성을 띠는 열매의 특성을 빌어 지은 이름이다. 대체로 밤그늘은 감자나 토마토 가지 등 가짓과 식물을 가리키지만, 때마침 까만 열매를 단 까마중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필자에게 올 한해는 배풍등을 처음 보고 그 이름을 찾고 더운 여름 지나 맺은 푸른 열매가 오롯이 붉은색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느라 다 지나갔다. 이른 봄 배풍등 잎을 처음 보았을 때는 뒤늦게 나팔꽃 잎 모양을 떠올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식물의 이름을 유추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