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
2024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노래 속 각설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유독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문과-이과 담론이다. 주로 문과 출신이 쓴 글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어야 스티브 잡스 같은 훌륭한 공학자가 될 수 있다’ ‘문과 출신에겐 이과생에게 없는 긴 호흡과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이 전파된다. 쉽사리 동의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는 이과 출신이라 문해력(文解力)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개념이 모호할 땐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게 좋다. 물리의 신 뉴턴도 ‘좋은 사례가 이론보다 더 중요하다(Examples are more important than theory)’고 했다. 이과 수업이 이론 강의와 실험 실습, 연습문제 풀이를 병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장과 이론이 현실과 타당하게 들어맞는지 검증하는 게 실험실습이고, 이론을 구체적으로 사례를 통해 풀어보고 이해하는 게 연습문제 풀기다.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가 무얼
10.07
서울 근교에 문을 연 지 얼마 안된 음식점에 들렀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보리 비빔밥집이다. 주방 앞에 크게 내건 사장 겸 주방장의 이력과 조리경연대회 수상 경력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소재 호텔 조리부에서 일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베트남에 파병돼 조리병으로 근무하며 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1978년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다시 호텔 부장급 요리사로 근무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기능공 식사를 책임지는 영양사 겸 총 주방장을 지냈다. 이어 아프리카 나이베리아에서 레스토랑을 열었다. 귀국해 강원도 춘천, 경기도 남양주에서 한정식과 소머리 곰탕집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말 접었다. 그러다 하는 일 없이 지내기 무료해서 8개월 만에 다시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비빔밥집 사장님처럼 적잖은 경험과 조리대회 우승 경력자라도 요즘 한국에서 음식점 경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식당과 카페 등 업소가 워낙 많고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다. 손님들이 대기표를 받
10.02
자고 나면 깜짝 놀랄 뉴스가 터져 나오는 시국이다 보니 웬만한 뉴스는 얼핏 보고 큰 감정 동요 없이 지나칠 때가 있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보도된 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 관한 뉴스도 그 중 하나다. 이 매체는 매년 추석 즈음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함께 ‘대한민국 신뢰도’라는 제목의 여론조사를 해 특집기사로 공표한다. 이번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신뢰도 10점 만점에 2.82점으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보도됐다. 취임 첫해인 2022년 3.62점, 이듬해 3.63점에서 올해 최저점을 경신한 것인데, 파면되기 전 박근혜 대통령의 말년 신뢰도가 이보다 높은 3.91점이었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한들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늘 20~30%에서 맴돌았음을 고려하면 이 또한 깜짝 놀랄 뉴스는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0~10점으로 평가해달라는 항목에 응답자의 44.6%가 0점을 주었다는 대목에서는 적이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
09.30
한국의 근현대는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참혹한 전쟁을 겪어낸, 그리고 억압적 독재를 무너뜨린 격정의 역사였다. 고통과 좌절, 희생이 따랐으나 한국인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위대한 역사를 일궜다. 그러나 여기까지인가? 집권세력은 무엇에 홀린듯 역사를 고치고 헌법을 뒤틀며 국가를 자기들 뜻대로 ‘개변’하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정권 이래 잠행하던 뉴라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순순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기세가 완강하다. 겉보기에는 정치지형도 이들의 사상공작 정치운동에 유리하다. 집권여당이 이명박정권의 친미일 반북, 친기업 반서민, 언론장악 기도 등을 답습하고 있어서다. 권력이 국민들에게 겸손할 생각이 없는데다 의회주의 정당정치라는 정치규칙을 막무가내 무시하고 있는 것도 유리한 환경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번에도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력의 오만과 부패, 의료 대란 등 거듭되는 실정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친일과 이승만 독재에 비판적인
09.26
우리 사회에 다시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가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신체의 자유와 언론ㆍ출판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심각하다. 법조계와 언론계에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법조인이 ‘법기술자’, 기자가 ‘기레기’로 조롱당하는 현실이 그것을 반영한다. ‘자유’에 대한 개념도 보수와 진보진영이 각자 제멋대로 쓴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진지한 담론은 들을 수 없다. 인권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생각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을 보면 좀더 정밀하게 구분한다. 프리덤(Freedom)과 리버티(Liberty)다. 프리덤은 보통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능력으로 쓰인다. 어떤 힘 앞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행위를 감행할 수 있는 힘(The power to do)을 의미한다. 반면 리버티(Liberty)는 인간에 대
09.25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이었던 플라톤은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 전쟁의 기원이 사람들이 소박한 생활을 넘어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 이웃의 땅을 원하는 탐욕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만이 전쟁의 원인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권력자의 영역확대를 향한 욕망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역사 속의 숱한 정복자들이 좋은 예다.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 없는 세상은 없는 게 인류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목하 세계에는 두 개의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및 레바논 간의 전쟁이 그것이다. 둘 다 크게보면 국제정치 상 패권국가들 간의 세력다툼의 일환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미국과 그 동맹국인 서유럽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서방세력의 지원이 없다면 두 나라는 벌써 지도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서방세력을 적대세력으로부터 방어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09.24
사진은 초상권이 달린 데이터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입학원서나 입사원서에서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입학이나 입사 후에 학생증이나 사원증을 만들 때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사진을 찍어 가져오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촬영한다. 초상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관리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듬뿍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온갖 신청서류에 사진을 요구하며 대개 사진관에 가서 찍도록 만든다. 초상권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관리가 안된 사진이 딥페이크를 만드는 데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게 국내 현실이다. 사진을 재산권이 달린 데이터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자동차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데이터 시대라고 한다. 어떤 데이터든 가장 처음 만들어질 때 데이터 출처를 표시하도록 강제하기만 하면 정품 데이터인지 아니면 허위 데이터인지 구분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인공지능(AI)이 대두되면서 AI가
09.23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까닭은 언제나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는 난제 때문이다. 개혁을 저돌적인 의지만으로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연금·의료·교육·노동의 4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6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임기 절반 가까이 되도록 선행 개혁과제는 물론 올해 초 추가한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결실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개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개혁의 기본을 모르는 탓이 크다. 모든 개혁에는 세밀한 사전 정지작업과 각고정려한 설득의 리더십이 필수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스타일로 말미암아 개혁의 동력을 꺼트리는 일이 더 잦았다.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인물들은 설득자이기는커녕 애물단지처럼 됐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갈파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사회심리학자가 이를 실험
09.19
1996년 12월 초다. 당시 명지대 총장인 고 건씨가 연락했다. 기사 중 약력에 전북 출신으로 잘못 기입돼 있다는 거다. 부친이 서울 근무 중 마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본적과 부친의 생활 근거지는 전북이 맞지만 출생지는 서울이라는 취지다. 출생과 출신 용어를 두고 가벼운 입씨름이 있었다. 그날 저녁 서울 혜화동 음식집에서 만났다. 진보매체의 정치부 기자와 동석이었다. 술잔을 돌리며 담소를 나누는데 각종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퇴폐적으로 여겨졌던 비디오방을 궁금해했다. 자연스레 인근 비디오방을 찾아가 고씨를 알아 본 주인의 도움으로 구석구석 살펴봤다. 이어 호프집으로 옮겨 대학생들과 어울렸다. 청년들 관심사에 관심을 보였고 건배도 했다. 포장마차에 들어가서는 어묵 꼬치에 소주를 마시던 직장인들의 애환도 들었다. 이쯤이면 명약관화했다. “총리 제의를 받으셨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 증후군, 즉 레임덕에 빠져 있었다. 차남 현철씨가 구설수에 올랐고 남북관계도
09.12
올 여름은 정말로 심하게 더웠다. 8월의 폭염일수는 16일로 1973년 통계 집계 이후 두번째로 많았고 열대야 일수는 11.3일로 두자릿수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특히 놀랍게도 8월 5일(93.8GW), 12일(94.5GW), 13일(94.6GW), 19일(95.6GW), 20일(97.1GW) 이렇게 무려 다섯차례나 최대 전력수요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래도 발전소의 적기 건설과 안정적 운영을 위해 많은 이들이 고생했기에 정전의 위험없이 올 여름을 잘 넘기고 있는 중이다. 전력과 관련해서는 섬과 다를 바 없고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라는 점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자 우리의 자랑거리다. 밤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맺히는 완연한 가을을 나타내는 백로(白露)가 지난 7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0일에는 서울에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까지 발령되었다. 그날 정부, 한전 및 전력거
09.11
지난 2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정책에 반발해 전공의 등이 병원을 떠난 이후 6개월 넘는 병원 응급실 공백사태로 추석연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추석은 명백한 응급의료 위기”라고 밝혔다.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병원들의 응급실 폐쇄, 주말 야간 휴진도 잇따르고 있다. 10개월 영아와 공사장 부상자가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거나 의식불명에 빠진 최근 사례가 가뜩이나 환자가 늘어나는 명절연휴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행동으로 병원을 떠났다가 개별 복귀한 전공의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배신자’ ‘부역’ 등의 표현을 달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해온 의료계가 추석연휴 응급실 근무자의 명단을 추가 발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추석기념 수련병원 응급실 특별편’(명단)을 7일 신설한 것은 전공의가 복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낙인을 찍자는 의도이다. 군의관 추정 5명을 포함한 의사 100여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다. 응급실부역
09.10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진 걸 보니 가을인가 봅니다. 습한 폭염과 한달 이상 계속된 열대야로 축 늘어지고 혼미했던 몸과 마음이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가 느닷없이 툭 튀어나온 일은 아니지만 올해처럼 그 영향을 피부로 느꼈던 해도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매달 평균기온의 기록이 깨지는가 하면, 최저기온이 25℃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열대야가 사상최대 일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과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생활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순진하게 재롱을 떠는 아이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열기가 인간 삶의 구석구석을 전방위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파괴로 농작물 재배체계가 헝클어져 곡물 야채 과일값이 치솟고 커피값이 오릅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어패류 생태계도 바뀌니 어민들이 비상입니다. 경제기사에 ‘기후인플레이션’이란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공기흐름에 민감한 비행기도 안전운항에 위협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기
09.09
블록버스터는 영화용어다. 상업적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만드는 영화다. 대형세트와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다양한 특수효과가 도입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이를 경제용어로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은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경제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보고 싶은 좋은 경제지표만 보고받는 느낌이다. 국정브리핑 사흘 뒤 집계된 8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한 579억달러. 수출은 11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이다. 무역수지도 1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런 수출의 온기가 좀처럼 내수로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의 일등공신은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다. 수출호조를 이끄는 품목 대부분이 고용유발 효과가 낮고 자본집약적인 정보기술(IT
09.05
어린 시절 경험 중 아직도 납득이 안되는 것이 단체기합이다. 그 당시 신체적 고통보다 괴로웠던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처벌받는다’는 억울함이었다. 지난해 R&D 예산 삭감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비 삭감 통보를 받았을 때 떠오른 단어가 바로 단체기합이다. 잘못한 친구가 누구인지, 카르텔이 무엇인지 이름도 존재도 알지 못해 억울함이 더했다. 요즘엔 연구비 삭감 조치가 사실은 ‘재조정’이었고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의사들과 달리 별 저항없이 고분고분했으니 내년부터는 본래 수준의 연구비로 ‘재-재조정'해준다는 말도 들려온다. 억울하게 단체기합을 받은 게 아니라 그 동안 문제가 많았던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느슨한 정신상태를 바싹 조이는 재조정 과정을 한번 거친 뒤 연구비를 복원해준다는 말로 들린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이 사육되던 공간의 이름이 ‘매너농장' 에서 ‘동물농장'이 되었다가 다시 ‘매너농장'이 되고,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구호가
09.04
“작년 말 세계적 권위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우리 경제 성과를 OECD 2위로 꼽았고,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은 우리 국가 경쟁력을 역대 최고 순위로 평가했다. 지난 5월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 후 참모들에게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블록버스터급’ 경제성과를 국민들이 알아주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서운함이 진하게 읽힌다. 비슷한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외국에 이민 간 한 교포는 “올 때마다 서울이 확 달라져 있다. 스마트하고 세련되고 놀랍다”고 했다. ‘라면의 원조국’ 일본에선 라면공장들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한국 라면들에 밀려 일본 라면 판매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라면 흉
09.03
7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총재의 입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전 금통위 결정 때 “(방향전환을) 고민하는 상태”라고 했던 것에 비해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시기를 검토’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8월 22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는 또 다시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13번째 동결했다. 극심한 내수침체에 시달리는 자영업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의 실망이 컸을 것이며,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고금리를 내수침체의 핵심요인으로 꼽은 국책연구소들의 경제진단도 머쓱하게 만들었다. 여당 정책위의장 등 정치권이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말하고 대통령실까지 “내수를 진작한다는 측면에서 아쉽다”고 유감을 밝혀 이례적으로 금리인하 요구를 감추지 않았다. 통화정책이 경직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경기부진
09.02
집권에 성공한 정치권력은 늘 방송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 정권의 차이는 거의 없다. 방송을 손에 넣었으면 하는 그 굴뚝같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만 있지 않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까지도 다를 바 없다. 일이 조용히 진행되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아 파열음이 나오더라도 권력은 기꺼이 감수한다. 정권을 유지하는데 방송은 그만큼 중요한 도구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취임 초부터 방송 재편을 위한 모종의 수를 동원하고 전방위적으로 작전을 벌여 끝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를 두고 여권은 ‘방송의 정상화’라고 표현하고 야권은 ‘방송 장악’이라고 비판한다.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는 정권교체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여당일 때 ‘정상화’를 외치던 세력이 야당이 되어선 ‘장악’이라며, 또 그 반대 입장에서 앙앙불락하는 데칼코마니 같은 패턴은 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정권 잡은 세력이 방송을 ‘정상화’시키겠다며 동원하는 모종(某種)의 수라는
08.29
40년 전 대학원생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유럽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시민인 언어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데 한국말을 한국에서 자란 사람처럼 구사했다. 이 분은 IBM의 초기단계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라 펜실베니아대학교에 단기방문 중이었다. 일상언어의 유형인식(pattern recognition)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구사하는 많은 언어들 중에 한국말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다. 그가 들었던 예가 지금도 기억난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영국사람은 “도와줘(Help me)”하고 소리친다. 프랑스사람은 “나좀 봐(A moi)”하고 소리친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소리친다. 위급상황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인류애에 호소하는 한국사람의 사고구조를 컴퓨터나 로봇이 체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단기체류가 끝나고 떠날 때 그가 한 말은 인공지능을 언어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08.28
우크라이나에 대한 첫인상은 모스크바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과거 오랜 역사 동안 러시아와 공산권 소련 지배로 인해 그런 듯했다. 우크라이나는 잘살지 못하는 나라지만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IT로 국가 경제를 키워 보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서 개최된 블록체인 기술 경진대회 기조강연자로 초청을 받아 그 땅에 발을 디뎠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기 불과 1년전 일이다. 이때만 해도 아주 평화롭던 이 나라가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일 줄은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이어 두번째로 국토 면적이 큰 대국이나 일인당 국민소득은 4000달러 수준으로 유럽에서 최빈국에 속한다. 30여년 전의 한국으로 생각하면 된다. 동남아시아로 치면 인도네시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 산업은 농업이다. 좋은 땅과 기후 덕분에 미국 태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다. 그러나 큰 덩치에 비해 지난 1000년의 역사 동안 남의 지배만
08.27
6.25전쟁 직후인 1953년 9월에 태어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1959년 3월이다. 집안에 신문이 배달되었지만 당시 주로 언론을 접한 것은 라디오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규뉴스를 들으면서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것을 알았고 다음해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정시뉴스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의 인기 연속드라마와 스포츠중계였다. 1960년대에 국민이 열광하던 스포츠는 축구와 농구로 이들 경기를 중계방송하던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는 국민들의 스타였다. 당시 필자가 좋아하던 축구선수는 김 호 김정남 이회택, 농구선수는 신동파 박신자였다. 이 시절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으며 열광했다. 이른 나이에 정치에 눈을 떴는지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에 뽑히던 극적인 순간을 접한 것도 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