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8
2024
4월 3일 푸바오(福寶)가 중국으로 떠난다. 푸바오는 2016년 한국에 온 아빠 러바오와 엄마 아이바오 사이에서 2020년 7월 용인에서 태어나 올해로 네 살이 된 희귀동물 판다다. 지난 3년여 동안 550만의 시민을 만나며 인기 절정에 오른 한중 우호외교의 상징이다. 1983년 워싱턴조약의 발효로 희귀동물은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고, 모든 판다의 소유권은 중국에 있다는 원칙에 따라 해외에서 태어난 이 동물은 생후 4년 차가 되면 반환해야 한다. 푸바오는 한중관계가 암울하게 진행되는 시기에 작은 등불 같은 존재로 사랑을 받았다. 동물외교는 문화교류와 국제협력을 촉진할 목적에서 주로 이루어지지만 푸바오는 멸종동물 보호와 생태 환경보전의 의미에서도 값진 의미가 있다. 인접 국가에 대한 호불호 이유 중에는 환경문제가 단연코 앞자리를 차지한다.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세계 28%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가 중국이다. 초고속 경제성장의 결과 2010년대 중국은 대기오염의
03.27
22대 총선전이 본격화했다. 내일(28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투표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국혁신당의 부상이다. 창당한지 한달도 안돼 제3지대를 넘어 거대 양당을 압도하는 기세를 올리고 있다. 비례정당 지지율에서 거대양당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름 붙이자면 ‘조국현상’이다. 기존 정치문법으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윤석열정부의 폭주와 실정이 가장 큰 자양분이고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기대 미흡 내지 실망감이 작용한 점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에 좀 더 거시적이면서 근본적인 접근을 해보았으면 한다. 기존 정치의 기득권 구조와 그 폐해, 나아가서 대의민주주의, 즉 선거민주주의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도저히 여당을 지지할 것 같지 않던 운동권 출신 인사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은 이유를 본란에 쓴 적 있다. 정치 경험도
03.25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느 기관에서 발표한 ESG등급 때문에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그 기관에서 평가를 했는데 등급이 여타의 평가기관보다 낮게 나왔단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회사의 평판이 나빠지니 답답하다고 했다. 현재 국내외 ESG 평가기관은 약 600~1000여개에 이른다. 예를 들어 국내 어느 회사에 대한 평가기관의 ESG 평가결과는 B+, A, C, 32, BBB, 47 등 천차만별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리 평가기관이 각자 책임 하에 독립적인 평가 체계를 개발해 평가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상이한 수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평가등급을 잘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한다. 그런데 낮은 평가등급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측에서는 막상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
03.22
#1. 밤 9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초등 5학년생은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어디 갔다 오니?” “수학 학원요.” 꼬마 때부터 만난 아이는 오늘따라 시무룩하다. “학원 다니기 힘들지?” “네, 월요일은 논술, 화요일은 영어, 수요일은 수학, 태권도와 미술… 학원 싫어요. 토요일이 제일 좋아요.” 토요일엔 학원 안 가고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를 할 수 있어 기다려진단다. #2. 밤 10시, 아파트 인근이 시끌시끌하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다. 도로는 학원과 학부모 차량이 뒤섞였다. 주민들이 민원을 넣어도 구청은 불법 주정차 학원차량에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다. 교육부와 교육청, 대통령실이 심야 강남과 목동 학원가 몇 군데만 둘러봐도 체감할 수 있는 사교육 현장이다. 짬을 낼 수 없다면 자신의 중고생 자녀도 학원 다닐 테니 물어보시라. #3. 3월14일. 교육부가 2023년 초·중·고생 사교육비를 발표했다. 27조원, 역대 최고다. 학생수가 7만명 줄었는데 학부
03.21
지난 주말 고교 동기들과 관악산을 산행했다. 산행이 끝난 뒤 점심을 먹으며 때아닌 정치 토론에 열을 올렸다. 지지 정당 차이로 웬만하면 정치 이야기를 자제하던 평소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정치수다를 억누르기가 못내 어려웠던 모양이다. 토론은 눈꼴사나운(?)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로 맞추어졌다. 혹자는 국회의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숫자는 그대로 두고 특권을 없애야 한다며 보좌관을 모두 없애는 대신 국회 내 입법과 예산 관련 전문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기초와 광역의원, 국회의원을 하나로 통합해 국회의원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주장 사이에는 공통의 인식 기반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강한 불신이었다. 정치는 사회 공동의 이익 증진이라는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영역이다. 정치활동 보장을 위해 정부 예산을 다양한 형태로 투입하는 객관적 이유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위를 공적
03.20
D-21. 유권자의 시간이 다가온다. 지난 21대 총선 투표자의 42%는 선거일 3주 전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했고 58%는 선거일 전 3주간 또는 투표일에 후보를 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선관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여론조사 백서, p214) 무엇이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주나? 21대 총선 투표자가 가장 많이 고려한 요인은 정당(42%), 인물(25%), 정책과 공약(21%) 순이다. 유권자 선택에서 정당요인 비중은 20대 총선(24%)에 비해 크게 늘었고 인물요인 비중은 줄었다. 유권자가 정당을 평가할 때 무엇을 중시할까? 크게 보면 정당의 리더십, 문제해결역량, 구성원의 도덕성, 정당 내부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 정당인식을 구성한다. 정당지지도는 결국 정당의 리더십 역량 도덕성 정치력 평가를 집약한 숫자일 것이다. 한국갤럽 1월 4주차 조사에서 여당과 야당 리더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한동훈 52%, 이재명 35%, 부정평가는 한동훈 40%, 이재
03.18
지난 11일은 ‘흙의 날’이었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5년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 3월 11일이 흙의 날이 된 것은 3월에 농사가 시작되고 석 삼(三)자가 농업 농촌 농민의 삼농을 뜻하고 11은 십(十)과 일(一)을 합치면 흙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토양의 날’은 12월 5일인데 세계토양학회가 토양보전에 열성적이었던 태국의 푸미폰 국왕의 생일인 이날을 기념하자고 제안해 유엔이 2014년부터 지정했다. 영미권에서 흙은 흔히 dirt로 쓴다. 더러운 먼지와 같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흙은 그렇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하찮아 보이지만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건강한 토양 1g당 1억~100억 개체수의 미생물이 존재하고 이런 건강한 흙 1㎝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00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우리는 마구 파헤치거나 버려두고 아스팔트로 덮어버린다. 흙의 날을 정해 그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유다. 흙을 가장 요긴하
03.15
새 학기다. 청춘들이 봄 햇살 캠퍼스를 흠뻑 즐긴다. 그래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즐기니까 청춘이다. 그런데 정말 아파하지 않고 즐기는 걸까. 아파하지 않는 것처럼 잠깐의 여유나 휴식을 즐기는 것도 이상한 일일 테지만, 이미 아픔을 내면화하고 체화해버렸다면 이건 아주 아주 심각한 사태. 젊음이라는 몸이 살아내기 위해 아픔을 치유하거나 맞서 저항하거나 하지 않고 차라리 자기몸(自-身)으로 흡수해 혈중화해버리는 몬스터가 된 것일까. 인간이라는 세상이 젊음을 그런 괴물로 만들고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는 매력과 낭만으로 충일대는 ‘캠퍼스의 봄’을 꿈꿀 수 없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역사적이면서 문화적 사태이며 사회적이면서 정치적 사태다. 냉소와 체념을 머금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젊음에게 선거가 다가온다. 내가 원했던 사람들도 아닌데 그 가운데 한사람을 택하라고 던져주는 건 참 이상하고도 수상쩍은 간청이리라.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말에다 합성 불가능에
03.14
근대 의료의 압축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료 시스템은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일본(84세)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기대수명(83세)은 상징적인 결과다. 국제적으로는 3개의 의료 시스템이 눈에 띈다. 자유시장에 근접한 미국은 의료혜택의 사회 불평등은 심각하나 첨단 의료는 세계 최고다. 사회주의적 의료 제도의 영국은 서비스는 저렴하고 평등하나 수술을 받으려고 몇달씩 대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 시장과 국가의 원칙을 적절하게 혼합한 성공적 모델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지출(12%)은 미국(16%)보다 낮고 영국(11%)과 비슷하나 기대수명은 82세로 미국(77세)이나 영국(80세)보다 높다. 미국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낳으며 영국처럼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대기시간이 열악한 상황은 아니다. 프랑스 의료의 거울에 한국을 비춰볼 만하다는 뜻이다. 한국 의료대란의 출발점은 의대 정원과 의사수다. 한국의 의사수는 14만명 정도이고 프랑스는
03.13
올 3월부터 징계처분인 학교폭력 가해자 이력이 대학입학뿐만 아니라 졸업시 취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학교폭력 조치사항 중 퇴학기록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영구보존되고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기록은 4년 동안 학생부에 보존된다. 종전에는 2년이었다. 다만 출석정지와 학급교체 기록은 졸업 직전 교내 학교폭력 전담기구의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다. 그런데 소년이 소년법정에서 보호처분을 받았더라도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형사법정에서 소년이 형벌을 받았더라도 자격에 관한 법령을 적용할 때 장래에 향해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모두 소년법 규정이다. 형벌이나 보안처분과 같은 형사처분을 받은 기록이 소년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성인이 범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면 흔히 전과(前科)로 불리는 기록이 남게 된다. 이로 인해 헌법의 직업의 자유, 선거권과 피선거권, 개인
03.11
물과 기름은 왜 섞이지 않을까. 바람은 왜 불까. 고체 액체 기체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흔하기 때문에 그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모두 자연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한번쯤은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앞서 열거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밀도’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제각각의 밀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밀도란 물질을 구별하는 중요한 특성으로 밀도의 차이에 따라 밀거나 당기는 등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하는 것이 바로 자연현상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밀도의 정의는 ‘단위 부피에 대한 질량값’이다. 우리 생활에서 밀도라는 말은 흔히 사용되지 않지만 우리 환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모두 이와 연관되어 있다. 공기 밀도가 높으면 고기압, 낮으면 저기압,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기 때문에 구름을 몰고 흘러가버리므로 고기압 지역은 날씨가 쾌청하
03.08
선거가 한달 남았다. 2월 초 만해도 민주당 우위의 선거구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월 4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만나서 ‘명문정당’을 강조하면서 이 틀은 견고해 보였다. 그러나 직후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윤석열 정부 탄생 책임론’은 친문과 친명 갈등의 서막이었다. 지난 한달 내내 22대 총선 관련 보도는 민주당의 공천 관련 기사로 도배를 했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는 기본적으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집권당에게 유리하기 어려운 구도다. 게다가 윤석열정부의 실정과 무능, 불통은 이루 열거하기도 숨차다. 이를 지난 한달 동안의 민주당 공천 난맥이 모두 덮었다. 국민의힘의 혁신과는 거리가 먼 공천은 ‘조용한 공천’이라는 수사(修辭)로 가려지고 민주당 공천만 요란하게 파열음을 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후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에서 나왔던 ‘친윤 영남 중진의 헌신 희생’은 찾아볼 수 없지만, 유권자들의 인식 속에 민주
03.07
‘지방소멸’은 이미 매우 친숙한 용어가 됐다. 매스컴에서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고, 지방균형발전 관련 법령이나 정책명에도 빈번히 포함되면서 이른바 공적 신분도 취득했다. 그만큼 지역의 미래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이 커져 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 지방소멸의 양상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한국고용정보원(2022)의 지방소멸 지수 분석에 따르면 ‘소멸 위험지역(2022년 3월)’은 대상 시군구 전체의 절반(49.6%)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10년 사이에 소멸위험이 늘고 경향성도 강화됐다. 2005년에는 33곳이었으나 2015년에 80곳, 2020년에는 102곳으로 급증했다. 2022년 3월의 113곳 중 ‘소멸 고위험지역’은 45곳이나 됐다. 행정안전부는 2023년부터 출생율 주간인구 청년순이동률 등 8개 지표들을 구성해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는데 전국의 89개 지자체가 해당되었다. 전북의 경우 14개 지자체 중 10곳이나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맹점은 지나치게 숫자에 초
03.06
올해 초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이사회에 의해 해임됐다가 며칠 만에 복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오픈AI에서 GPT모델을 훨씬 뛰어넘는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I) 모델 연구에 획기적인 진척이 있었고, 올트만이 이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려고 투자자를 찾는 도중 범용 인공지능의 잠재적인 위험성에 경각심을 느낀 이사회가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올트만을 해임했다고 추측한다. 오픈AI가 개발했다고 추측되는 범용AI는 큐스타(Q*) 알고리즘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현재 상용화된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모델의 한계가 무엇이고 범용AI란 무엇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Q* 알고리즘이란 무엇일까? 인공일반지능(AGI)은 인간 지능과 유사하게 다양한 작업을 이해하고 학습하며 추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분야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들은 글을 요약하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등 간단한 종류의 문제들은 놀
03.04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잘해 왔다면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정당 출현과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그런 흐름에 합류한 조국신당도 등장하지 않았을 수 있다. 민주당이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또 경기침체, 고물가, 주거 불안정, 사교육비 부담 등과 같은 민생문제 해소에 초점을 맞춰 일관되게 정책 대안의 제시에 힘을 쏟았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전통적인 핵심 지지층말고도 중도층은 물론이고 윤석열정권에 실망한 보수층 일부의 지지도 얻어 승리 전망을 높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 전망이 높았다면, 또 그 방향으로 활동을 해왔다면 민주당 자체가 그야말로 ‘빅텐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초만해도 그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권심판 기운이 더 높은 가운데 승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졌다. 선거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겪은 후 ‘반윤석열 연합전선’도 구축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두어달 사이에 그럴 가능성이 점차 사라져갔다. 두
02.29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동일한 조문에서 규정한다. 헌법학자들은 이 네 가지 기본권이 공통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라는 점에서 이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총괄해 ‘표현의 자유’라고 부른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한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의한 정치이며, 국민의 의사에 의한 정치는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표현의 자유는 민주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다.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한 열린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민주정치는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했다. 바로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는 그 제한에 있어서 ‘명
02.28
지난 연말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한분이 ‘의사 조력 사망 합법화’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불치병이나 감당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네덜란드 전 총리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5년간 병마에 시달리다 동갑인 부인과 함께 93세로 ‘동반 안락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에서 다시금 존엄한 죽음 문제가 조명을 받고 있다. 조만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이 1000만명을 돌파한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는 등 웰다잉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12월까지 연명의료 중단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
02.26
‘피크 코리아’ 우려가 갈수록 현실화되는 느낌이다. 잠재성장률이 12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한 경우다. 지난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1.4%로 세계경제 성장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도대체 어디서 출구를 찾아야 하는가? 가야 할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면 오던 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국은 기적의 주인공이다. 앞선 선진국들은 예외없이 식민지 수탈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한국은 그와 정반대로 식민 지배를 겪은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경제발전 조건도 그 어느 나라보다 열악했다. 1954년 현대경영학의 개척자인 피터 드러커가 공무수행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드러커의 눈에 비친 한국은 경제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망의 땅이었다.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국내 시장은
02.23
시대정신이라고 하면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을 말한다. 선거 국면에서 시대정신은 국민이 공통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와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규범이 담겨야 할 것이다. 집권여당은 22대 총선의 그 시대정신을 ‘86 운동권 청산’으로 정했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난해 12월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이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이 시대정신”이었다. 지나가는 말인가 했는데 한 위원장은 그 뒤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에도 운동권 특권세력 청산이 시대정신임을 강조하며 “특권세력은 86 운동권만이 아닌 이후 더 종북화된 운동권 세력도 같이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권, 특히 86운동권이 특권을 누리면서 나라의 미래를 망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척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국민적이고 국가적 가치지향이라는 주장은 황당하게 들린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뜬금없는 소리”(홍준표 대구시장)라
02.22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치경찰제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가 요즘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기대를 건 쪽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에 쏠린 힘을 분산해야 한다는 명분에 정서적으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중앙정부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권력을 시·도지사와 나누는 일은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자치경찰제는 기존 경찰사무 중 지역 단위에서 주민 생활과 밀접하고 지방정부의 책임 아래 시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사무를 시·도지사 소속으로 설치한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제도다. 현행 자치경찰제는 1991년 이래 성장해 온 지방자치의 완결판으로서 2021년부터 시행됐다. 지방정부에 경찰권을 이양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자치경찰 사무를 국가경찰공무원이 담당·수행하는 구조여서 법적·제도적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아직도 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