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
2024
아일랜드는 스스로를 ‘슬픈 나라’라고 부른다. 1922년 독립할 때까지 750여년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속한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약소국이자 최빈국이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나는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 전역에 감자 역병이 번졌다. 여러 해 동안 감자 흉작이 이어지면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100만여명이 굶어 죽었고, 200만여명이 미국과 남미 등 신대륙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850여만명이던 인구가 600만여명으로 줄었다. 훗날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당시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의 후손이다. 1인당 GDP 10만달러 넘어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일랜드는 빚에 허덕이던 나라였다. 2011년 금융위기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2.12
우리나라에서 12.3 내란사태가 일어나기 열흘 전 우리와 가장 인접한 동남아국가 필리핀에서는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충격적인 보도가 터져 나왔다. 현직 부통령 사라 두테르테가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와 친척인 하원의장을 암살하기 위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했다는 보도였다. 아무리 폭력과 총기가 난무하는 필리핀이라고 할지라도 현직 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내란 상태의 나라가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비서실장이 의회를 모욕한 혐의로 하원의 한 위원회에 의해 체포·구금된 것에 격분한 나머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 엄청난 폭탄발언을 던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만약 내가 죽는다면 BBM(마르코스 대통령), 영부인 리사 아라네타, 마르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대통령 외사촌 동생)을 죽여버리라고 말했죠. 농담이 아니에요, 나는 그들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말라고 말했고 그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어요.” 발
12.11
지난주 어이없는 내란사태로 한국 외교는 설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2025년은 전세계적으로 외교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 외교로 머지않아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사활을 건 외교가 대통령 취임 전부터 물밑에서 진행될 것이다. 미중간에는 관세인상의 후속협상에 이어 전략협상이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도 커졌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마저 밀어붙이면 한국도 미국의 전방위적이고 다층적 협상 테이블에 초대받게 된다. 그래서 2025년은 국가들의 운명을 가르는 외교교섭이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마침 필자는 지난달 베이징과 워싱턴을 방문해 몇몇 지인들과 다가올 국제정치의 지각변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기에 소개한다. 미국은 변화 중, 중국은 현상유지 치중 대선 직전 들렀던 중국에서는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베이징대학의 한 교수는 바이든정부의 동맹강화 정책
12.09
“한미동맹이 근간부터 흔들렸다.” 육사출신 어느 현역 장성의 장탄식이었다. “우리가 신군부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난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또 다른 육사출신 예비역 장성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울분을 쏟아냈다. 윤석열정권의 반국민적 반역사적 친위쿠데타는 시민의 힘에 끝났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 범위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전국민이 한편의 리얼리티 전쟁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날의 장면은 강렬했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다른 글에서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중언하지 않겠다. 통보없는 ‘참수부대’ 이동에 미국 격앙 그러나 한미동맹에 안보의 명운을 걸고 있는 대한민국의 관점에서도 이번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을 가져올 전망이다. 707부대는 우리나라 특수부대 중 적의 우두머리를 극비리에 제거하는 훈련을 받은 속칭 최정예 ‘참수부대’다. 이 부대가 움직인다
12.06
지난 11월 초 토론토 다운타운 서쪽에 있는 한 녹음스튜디오에서 100발에 가까운 총성이 울렸다. 경찰에 따르면 도난 차량을 타고 나타난 3명이 건물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사건 브리핑에서 경찰은 두 폭력조직의 알력이 총격전으로 번졌다고 밝혔다. 갱단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차량도 피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밤중에 100여발의 총성이 콩 볶듯 울리자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사건 직후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 지역 일대를 수색했고 달아나던 용의자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의 총기를 발견했다. 건물 옥상과 인근 쓰레기통, 스튜디오 안 곳곳에서 공격용 소총 2정과 권총 등 모두 16정의 총기를 찾아냈다. 또한 경찰은 녹음스튜디오 안에 있던 몇몇 용의자들과 도주하려던 폭력조직 단원 등 2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토론토경찰청 부국장은 “이 사건은 갱단끼리 서로를 향해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이며 지역사회와 일반 시민들에게 위협이 됐다고 느끼지는
12.05
2016년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민이 8년 만에 다시 그를 선택했다. 2024년 미국 대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는 201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반이민과 제조업 재건, 그리고 세계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는 3가지 핵심공약을 내걸었다. 모두 일자리와 관련돼 있다. 민주당은 낙태권 논쟁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먹고사는 문제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노출하는 데 그쳤다. 바이든을 교체한 해리스는 이민통제와 셰일가스 정책 등에서 트럼프를 따라 입장을 선회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투표를 1개월 앞둔 10월 초 여론조사에서 28%의 미국민만이 “나라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2020년에 바이든을 지지한 유권자 가운데 약 400만~500만명이 이번에는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이 뼈아프게 느끼는 부분이다. 정치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풀뿌리에서 일어나는
12.04
아마존을 비롯한 매그니피센트7(M7) 빅테크들이 자체 인공지능(AI)칩 개발을 통해 탈 엔비디아를 모색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그룹 등이 투자한 캐나다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Tenstorrent)에 7억달러(약 98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의 독주를 막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텐스토렌트는 ‘반도체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회사로, 기업가치는 26억달러(약 3조6500억원)가량으로 평가받고 있다. 텐스토렌트는 개방형·저전력 반도체 설계자산(IP)인 리스크-파이브(RISC-V) 중앙처리장치(CPU)와 AI 알고리즘 구동에 특화된 IP인 텐식스(Tensix)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활용해 세계적인 고성능 컴퓨팅(HPC)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기술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텐스토렌트는 켈러가 2016년 설립한 반도체 설계 전문
12.03
미국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는 12월 특별입법 회의에서 캘리포니아의 법과 정책을 훼손하려는 트럼프 2.0에 대한 방어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법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뉴섬 주지사는 성명서에서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공격받고 있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법정에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번영하는 데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캘리포니아가 예외주의를 선언하고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수자원 프로젝트, 공기정화 권한, 해상풍력에 대한 연방 지원은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에 달려 있다. 델타 수자원 둘러싼 입장차 트럼프 재선은 새크라멘토-샌 호아킨 강 델타와 그 안에 있는 멸종위기에 처한 물고기들을 지켜보고 있는 환경단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에서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남쪽으로 공급되는 물의 양을 늘릴
12.02
미국과 프랑스의 중재로 중동 현지시각으로 11월 27일 오전 4시부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60일 휴전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다음날부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계속 퍼부었고, 이에 이스라엘은 올 9월부터 헤즈볼라 지도부 살해와 레바논 공습으로 맞불을 놓았다. 휴전협정은 궁극적으로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8월 11일 채택한 결의안 1701조의 내용처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남부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는 리타니(Litani) 강 이북으로 각각 철수해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 지역인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의 주둔을 끝낸다. 이러한 작업은 레바논 정규군이 남부로 들어가면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는 방식으로 60일 동안 이뤄진다. 레바논 남부에는 그동안 방관자였던 레바논 정규군이 주둔·통제하며,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이 휴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독한다. 이스라엘, 레바논
올해 힘들게 살았는데 내년과 내후년 경제는 더 나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낮춰 잡았다. 게다가 내년 성장률은 1.9%로, 내후년은 1.8%로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도 아닌데 1%대 저성장이 이어지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이러다가 저성장이 고착화하며 주저앉을 수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내수가 부진한 데다 믿었던 수출마저 경쟁력을 잃으며 위태로워서다. 석유화학·철강 등 우리나라 주력업종에서 기술력과 자체 생산능력을 갖춘 중국이 밀어내기 저가 수출 공세를 펴고 있다. 게다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중갈등 심화 등 교역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지원법 상 보조금 지급도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우리
11.28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서 반정부시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주로 청년세대들이 주도하는 시위는 ‘아랍의 봄’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권으로 번진 민주화시위를 지칭한다. 그해 12월 17일 경제난에 놓인 튀니지에서 생계를 위해 과일 노점상을 하던 26살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이를 계기로 빈곤과 식량난으로 응축된 아랍권 국민들의 분노가 장기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정부에 항의하며 터져나왔고, 휴대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며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청년층 주도와 소셜미디어 활용을 공유하는 아프리카의 반정부 시위도 이와 비슷하다. 청년층 주도, SNS 활용 ‘아랍의 봄’ 비슷 지난 6월 케냐에서 시작된 증세법안 반대 시위가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반정부시위로 확대되면서 유혈사태가 있었다. 시위 주최측은 엑스(X, 옛 트위터)에 ‘목요일에 만나요’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섞은
11.26
지난 7월 초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는 자신이 ‘프로젝트 2025’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민주당의 공격에 맞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로젝트 2025’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그는 9월 10일 전국에 중계된 대선 토론회를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의 측근들도 선거 기간 내내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캠프의 한 핵심인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프로젝트 2025’를 ‘골칫거리’라고 부르면서 자신들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후 지난 몇 주 동안 연달아 나오고 있는 트럼프 2기 정부 참여 인사들을 보면 트럼프가 국민들에게 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회귀 추진하는 ‘프로젝트 2025’ 보수의 집권 청사진인 ‘프로젝트 2025’는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해 만들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기독교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한 미
11.25
인간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널리 알려진 대로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등 인간은 도구와 언어와 불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최종 승자는 호모 사피엔스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자신들보다 더 튼튼하고 사냥도 잘하고 추위에도 잘 견뎠다는 네안데르탈인까지 이겼을까? 이스라엘 문화・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집단적 상상력에 주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야기와 신화와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부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종교를 만들고, 화폐를 유통하고, 연락망을 짜는 등 네트워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부족단위를 넘어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거대한 협업을 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누르면서 세상의 지배자로 올라서게 된 이유다. 하라리 “힘의 원천은 네트워크” 하라리는 신간 ‘넥서스’에서 “우리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11.22
영화 ‘전류전쟁(current war)’의 두 주인공은 에디슨(Thomas Edison)과 테슬라(Nicola Tesla)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에디슨 역을 맡았고 니컬러스 홀트가 테슬라로 출연했다. 전기의 역사에서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전쟁만큼 치열한 스파크가 일어난 경쟁은 없었다. 19세기 후반, 전기는 아직 초창기 발명품이었고 두명의 뛰어난 천재가 전기 시스템의 미래를 놓고 충돌했다. 에디슨은 직류(DC), 테슬라는 교류(AC)였다. 에디슨(1847~1931)은 무학이었고 수학을 할 줄 몰랐다. 어렸을 때 달걀을 품었던 일화처럼 그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을 믿었다. 하루에 서너시간만 잠을 자고 ‘열흘에 작은 발명 하나, 반년마다 큰 발명 하나’를 목표로 연구실을 운영했다. 그의 마케팅 감각은 남달랐다. 모두가 백열전구 성능 개량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테슬라(1856~1943)는 유럽에서 전통 과학교육을 받았
11.21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를 바라보는 중동 각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지난 4년 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 때문이랄까? 아마 대부분의 리더들은 내심 반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나 아시아 또는 중남미 다수의 국가들이 갖는 트럼프 2기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주요국 지도자들의 심정을 한명씩 미루어 짐작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네타냐후와 빈살만 에르도안은 반색 누구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악몽같은 하마스의 기습을 당한 이후 1년간 버티면서 바랐던 궁극적인 지점이 아마 트럼프의 귀환이었기 때문이다. 기습을 허용한 지도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스라엘 정서상 네타냐후 총리는 상황이 종료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기에 하마스 궤멸 작전을 통해 네타냐후는 공세적 응징을 펼치면서 정치적 생존게임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11.19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박빙이라고 예견되었지만 선거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트럼프가 예상보다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면서 어떻게 그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 2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세계 곳곳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진영에서는 절망과 허무함에 빠졌다. 양 진영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올해 민주당 진영에서는 넘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갑작스럽게 후보를 바꾼 상태로 캠페인을 진행해야 했고, 여론조사 결과가 마지막까지 초접전 상태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희망과 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실패했다는 사실과 함께 무력감이 찾아오는 듯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선거운동 기간이 유독 긴 미국에서는 오랜 기간의 캠페인과 긴장감으로 더 큰 무력감이 찾아왔을지 모른다.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선
11.18
기술의 장막 뒤에 문학이 있다. 소설가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껏 고무된 대한민국에서 이제 문학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느 작가의 작품이 단숨에 150만부나 팔렸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던 문학적 갈증을 방증한다. 이때다 싶어 오래 생각해온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문학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한 사람들, 시와 소설이 기술에 미친 영향은 필자가 실리콘밸리 근무를 시작하던 때부터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 수년간 붙들고 있는 주제다. 역사적 인물이 남긴 흔적을 살피기 위해 시계를 2세기 전으로 돌린다. 시작점은 시인 바이런(Byron)의 딸이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칭호가 붙은 영국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현대식 컴퓨터 개념 만든 시인 바이런의 딸 러브레이스 “당신은 내게 철학적 시를 허락해주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순서를 바꾸면 어때요? 시적인 철학, 시적인 과학은 허용해줄 건가요?” 1815년 12월 10일 영국 런던에
11.14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됨으로써 세계 미래의 불확실성은 대폭 커질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앞으로 4년간 책임질 지도자로 예측불가능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만 3년 가까이 계속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장담하는 인물이니 얼마나 허풍쟁이인지는 알 만하다. 그는 또 자신이 얼마나 미쳤는지 세상은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이 감히 대만을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기에 트럼프의 복귀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불행이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유로운 다자주의 국제질서를 만들어 유지해 온 기둥이다.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라는 두 지역과 동맹을 통해 핵우산으로 안보를 보장하며 경제적 번영을 공유하는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트럼프는 지난 80여년 동안 상당한 안정과 번영을 가능케 한 국제질서를 본격적으로 무너뜨릴 태세다. 트럼프 1기는 그가 얼마나
11.11
트럼프가 물었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어째서 미국이 한 해 10억달러를 내고 있소?” 트럼프는 한국 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에 격노했고, 그것을 한국에서 철수시켜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매티스(전 미 국방장관)가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돕고 있는 겁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9.11테러에 대한 취재로 두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밥 우드워드 기자의 베스트셀러 ‘공포’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야기다.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FTA도 파기 시도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을 종료시키려 했던 아찔한 순간도 소개한다. 게리 콘 전 백악관 최고위 경제자문역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책상위에 놓인 외교서한 한통을 보고는
11.07
요즘 어지러운 세계정세를 관망하다 보면 외국과의 전쟁을 통해 민족을 형성한 베트남의 역사가 새삼 중요한 선례로 부각된다.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들을 언어적 문화적으로 동족이라고 하는 주장은 지난 2년여 전쟁에서 수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잃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이제 씨알도 안 먹힐 소리가 되었다. 80년이 다 되어가는 중동분쟁과 전쟁은 변변한 국가를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던 ‘팔레스타인 땅의 무슬림들’을 이제 단단한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어 준 게 아닐까? 뿐만 아니라 전쟁이 민족을 만들고 또 더욱 강하게 묶어준다는 역사적 명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지도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북한이 느닷없이 한국과 다른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도 ‘조선인민민주주주공화국’은 ‘대한민국’과 다른 독자적인 ‘민족’을 가지고 있으며, ‘조선 민족’은 미국으로부터 전쟁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와 운명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러나 전쟁 위험이나 ‘협박’은 실제 전쟁과는 엄연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