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1
2026
막이 오르기 직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연출가는 관객의 숨소리를 듣는다. 무대 위 배우의 떨림과 객석의 기대감이 만나는 그 찰나의 정적은 연출가에게 가장 고독하면서도 황홀한 시간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 간 연출가로서 마주하는 객석의 빈자리는 단순히 ‘흥행 실패’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다. 무대는 관객이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되지만 치솟는 물가와 경제적 부담 앞에서 공연장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먼 곳’이기 때문이다.연출가는 늘 무대 위의 미학을 고민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관객을 이 세계로 초대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턱 앞에 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비 소득공제’는 단순한 세제혜택을 넘어 연출가가 설계한 예술의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가장 현실적이고 다정한 초대장이다. 도서 공연관람료 등에 적용되는 이 제도는 티켓 예매창 앞에서 관객이 겪는 마지막 망설임을 확신으로 돌려세우는 힘이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01.20
최근 걱정스런 통계가 발표되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발표한 2025년도 기업 연구인력 수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연구인력 총 40만9160명 중 부족인원은 1만5101명이다. 이는 전체 산업계 노동인력 부족률(2.5%)과 산업기술인력 전체 부족률(2.2%)보다 높은 3.6% 수준이다. 특히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 부족인력은 6886명으로 전체 부족인력의 절반에 가까운 45.6%에 달했다. 기술 분야별 부족인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1540명), AI(1394명), 첨단 바이오(1392명) 순으로 많았다. 부족률은 차세대 원자력(16.0%), 사이버보안(11.8%), 첨단로봇·제조(8.9%) 순으로 높았다. 또한 학력 수준별로는 학사 8546명(56.6%), 석사 4477명(29.6%), 박사 1538명(10.2%)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석사 부족인원 중에서는 51.4%, 박사는 60.8%가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 연구소에 분포해 국가전략기술 분야
01.19
지금까지 충남은 전국 전력의 절반을 소비하는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느라 전국 석탄발전소 61기 중 29기를 떠안으며 온실가스 배출 전국 1위, 대기오염물질 배출 전국 2위 등 온갖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충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했지만 이 전기를 소비하기 위해 기업이 입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석탄화력이 입주한 당진 태안 보령 서천 등에서 생산된 전기는 대부분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충남은 수천개의 송전철탑이 지역 곳곳에 세워져야 했다. 이러한 전기의 ‘역외유출’은 2021년 기준 전력자급률 당진 450%, 보령 2954%, 태안 4890% 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로 증명됐다.당진은 그나마 대규모 제철소가 입주했기 때문에 이 정도이지만 보령과 태안에는 생산한 전력을 소비할 그럴 듯한 기업 하나 입주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호남의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보내겠다며 충남 전역에 송전철탑 건설을 추진
01.15
최근 법원은 결혼이민(F-6-1) 체류자격 변경 심사에 있어 출입국 당국의 오랜 관행에 중요한 제동을 걸었다. 결혼이민(F-6-1) 체류자격 변경 심사에서 소득요건을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잣대로만 적용할 수 없고 인도적 사유와 실질적인 생계유지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형식적인 서류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이나 비정기적 소득 활동 종사자 등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결혼이민 신청자들에게 외국인 배우자와 그 가족의 인권보장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강제 출국 시 가족의 생계 심각 이 사건의 원고는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A씨로, 2013년 어선원(E-10-2) 자격으로 입국한 뒤 체류기간이 만료되었으나 출국하지 않고 불법체류 하던 중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와 결혼했다. 이후 A씨는 결혼이민 체류자격 변경을 신청했으나 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은 원칙적으로 불법체류자의 체류자격 변
01.14
최근 정부가 발표한 R&D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원으로 편성됐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전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 수준의 복원이나 일시적인 예산 증액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 주도로 잠재성장률의 한계를 돌파하고 과학기술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축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성장의 동력을 재정이 아닌 혁신기술에서 찾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35조원이라는 수치 속에 분명히 담겨 있다. 필자는 이번 R&D 예산의 화두를 ‘거토진취(巨土進取, 거대한 토대를 다져 흔들림 없이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취한다)’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위축되었던 연구생태계의 기반(土)을 복원하고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이라는 미래의 결실을 과감하게 취하겠다는 정책적 태도가 이번 R&D 편성 전반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의 뿌리를 다시 단단히 내리면서도 국가전략기술의 성과를 산업과 사회로 연결하려는 이중구조는 이른바 ‘진짜 성장’을 향한 본격적인 방향전환이라 평가할 수 있
01.13
2026년 새해 화두는 단연 AX(인공지능 전환)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AI가 상용화되어 산업과 조직, 각종 행정업무 등이 재설계되고 다양한 의사결정에도 적극 활용되는 시대다. 가축 사육시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육 방식에 IT와 ICT 기반 장치들이 도입된 것이다. 농장주의 설정값에 따라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급이·급수장치, 사람의 노동 없이 젖소에서 우유를 짜도록 도와주는 자동착유기(로봇착유기 포함), 축사 환경의 항상성을 유지해 주는 자동환경제어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CCTV를 통해 가축의 움직임, 체온, 호흡 패턴 등을 24시간 관찰하고 AI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질병, 발정 등을 진단하는 기술이 적극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더불어 잘사는 농업·농촌’을 표방하면서 농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식량안보 및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스마트축산’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가축의 사육환경과 사양관리를 자동·정
01.12
‘국민주권정부’라는 거창한 화두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생각하고 구상한 정책과 예산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았다. 이제부터 ‘전 정권 때문에’라는 말은 대중들에게 안 통할 것이다. 그 단어가 자꾸 나오면 ‘유능한 정부’라는 약발도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론상, 논리상, 헌법상 대한민국은 언제나 ‘국민주권’ 정부였다. 역설적으로 대통령 간선제로 출발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직선제라는 방식으로 맨 처음 독재를 연장한 것은 이승만이었다. 그리고 국회에서 하던 헌법 개정을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부친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형식적으로 봤을 때 국민주권을 더 가깝게 하는 제도로 독재를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생각해 볼만한 요소는 충분하다. 어떻게 이들 독재자들은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직선제라는 도구를 통해 독재를 더 강화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개정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결과를 만들지 못했
01.08
2050년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최대 61% 감축하겠다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했다. 2018년보다 연간 국가 탄소배출량을 742.3백만톤CO₂eq에서 반 이상 줄여야 하는 도전적 과제다. 코레일도 국가적 대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다. 발전소를 제외한 공기업 중 가장 많은 연간 약 150만톤의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지난해 8월 ‘RE100 추진단’을 출범했다. 코레일형 에너지 전환을 본격화하고 ‘K-RE100 이행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단순한 친환경 경영 선언을 넘어서 국가 에너지 안보의 실질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주요 내용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에너지 사용량 절감 △국가 탄소배출 감축 기여 등으로 철도를 통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과제를 선정했다. 첫째, 국토 한계 극복을 위한 철도 유휴부지의 ‘발전소화’ 추진이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무탄소 전원 비중을 70%까지 확대하는
01.07
올해 9월,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는 단순한 조직의 개편을 넘어 80년간 유지된 수사·기소 구조의 근본적인 변경이다. 한편 법무부(789명), 검찰청 소속 검사·공무원(1만650명)의 인적 구조 변경은 업무 공간의 변화를 수반한다. 여기서 “형사사법 기관의 최적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파생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세종시’이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종래의 검찰 조직과는 다른 제로베이스에서 신설된 기관이다. 건물·관행·네트워크·조직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공간적 환경과의 단절이 필요하다. 검찰청 해체와 무관하게 법무부는 여전히 형사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현재 외교부와 통일부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앙행정기관은 세종시에 위치한다. 그런데 법무부는 여전히 ‘미이전 부처’다. 법무부·중수청·공소청의 일괄이전을 통해 입법(세종의사당)-행정-사법의 삼각 축이 비로소 세종에서 완성된다. 중수청과 공
01.06
우리나라의 1970년대 초반 합계출산율은 약 4.5명이었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해 1983년에는 현재의 인구가 다음 세대에 유지되는데 필요한 2.1명 미만, 2023년에는 0.72명까지 추락했다. 2024년 0.75명으로 미미한 반등에 성공했지만 인구감소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 7월 한경협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 북토크에서 경고한 것처럼 저출산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축소경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저성장이나 재정부담 심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소득세의 가족친화적 개선을 위해 ‘부부 단위 과세표준’ 제도와 자녀수를 고려하는 소득세 체계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5년 조세격차(Taxing Wages)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자녀가구에 대한 세제혜택이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많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2자녀 외벌이가구와 독신가구의 조세격차 차이는 11
01.05
2025년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액이 1515억원을 돌파했다. 제도 시행 첫 해인 2023년 651억원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역대 최대 실적’이라 자평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숫자가 지역소멸 위기를 막고 진정한 지역 활력을 되찾는 신호탄이 될 수 있는가? 139만건의 기부, 70% 증가라는 양적 성장은 분명 고무적이다. 특히 산청·울주·안동 등 산불을 겪은 특별재난지역 기부가 전년 대비 2.3배 증가한 것은 위기 속에서 발현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3040세대가 전체 기부의 58%를 차지한 점도 제도 안착과 성장 잠재력에 긍정적 시그널이다. 하지만 전체 기부의 98%가 10만원 이하에 집중된 현상은 세액공제라는 인센티브가 핵심 동기임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모금 실적 격차다. 최고로 모금한 제주가 100억원을 돌파한 반면, 일부 지자체는 3억원대에 그쳤다. 단체장이나 담당 공무원의 관심이 높은 지역에서는 경쟁력 있는 답례품이나 지
12.31
2025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강하다. 둘째, 주택정책의 핵심 목표를 가격 안정에 두고 있다. 이는 시장이 과열되면 규제를 강화하고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 규제를 완화하는 냉탕-온탕식 대응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주택정책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중앙정부가 이렇게 주택정책을 이끌다보니 주택시장의 지역간 차이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결국 주택정책이 실패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이는 현 정부의 대출 규제에서도 반복된다. 최근 서울의 규제지역이 확대되면서 정비사업의 이주비와 분담금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40%, 최대 6억원으로 일괄 제한되었다. 대출한도의 축소는 외부 자금 조달을 통해 진행 중인 사업을 지연시켜 주택 공급을 줄인다. 수요가 상존하는 지역에서 공급의 감소는 가격 상승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출한도의 축소는 단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재
12.30
먼 미래 이야기일 것 같았던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봄에는 동해와 가뭄이, 여름에는 불볕더위와 국지성 호우가, 가을에는 예측 불가능한 태풍이, 겨울에는 극한 한파와 폭설이 잦아졌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경험적 지혜로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그맘 때 그 날씨’가 사라진 지금, 농업 현장은 기후위기와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상기상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16년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을 개발해 3개 시군에 시범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시스템을 꾸준히 확대 구축한 덕분에 올해부터 울릉도를 제외한 전국 155개 시군에서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은 전국을 사방 30m의 격자로 잘게 쪼개 작은 규모의 기상 현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하면 이론상 토지대장에 등록된 전국의 모든 농장에 농장의 지형과 고도, 피복 상태를 반영한 맞춤형 농장 날씨, 작물 재해, 대응조치 정보를 제공할 수
12.29
질병 진단이나 건강 확인을 위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피를 뽑는다. 환자에게는 따끔한 통증과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앞서는 순간이며, 의료진에게는 채혈 실패의 압박감이 몰려오는 긴장의 시간이다. 현재 국민 대부분은 동네 병·의원(위탁기관)에서 이 채혈 과정을 거친 뒤, 며칠 후 그곳에서 결과를 듣는다. 위탁기관은 환자를 대면하며 검체를 채취하고 결과를 판독해 치료 계획을 세우며, 전문적인 분석은 별도의 검사기관(수탁기관)이 맡는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이 안착해 있다. 환자는 병원 한 곳에 비용을 한 번만 내면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어 매우 간편하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의 위탁검사 비중이 50%를 상회할 정도로 이 구조는 대한민국 보건 의료의 실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여기서 환자를 위한 피 한 방울에 담긴 의료진의 헌신과 분업의 가치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시장 투명화를 명분으로 ‘위·수탁 분리 청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공단에서 위탁기관(채
12.24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 전력산업은 규제 완화와 경쟁 도입이 확산되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전·송전·배전으로 이루어진 수직통합 구조가 해체되고 민간 발전사의 진입, 전력도매시장 개설 등 경쟁 기반의 구조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어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전력 시스템은 대규모 중앙집중식에서 지역 단위의 분산형 전원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1년에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했지만 이후에도 한전 독점의 대규모 화력·원자력 중심의 중앙집중식 체제를 유지하고 판매 부문 민영화를 중단하면서, 세계적 추세인 개방·경쟁·재생에너지 확대와는 거리가 있다. 한전 중심의 독점과 중앙집중식 공급 구조는 과거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개방과 경쟁, 에너지 전환과 기술 변화, 그리고 소비자 역할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시장개방과 경쟁 도입이다.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한전의 계통 망 독점에서 개방으로, 송
12.23
2026년은 가히 ‘한글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신 지 580돌이 되는 해이자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지키기 위해 한글날을 기념한 지 100돌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언어생활을 위해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 즉 한글점자가 세상에 발표된 지도 100돌이 된다. 한글의 창제와 확산, 포용의 역사가 겹치는 상징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글의 위상은 극적으로 변화해 왔다. 일제 강점기라는 소멸의 위기를 극복한 한글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핵심 동력이었다.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문해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지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할 수 있었던 건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한글의 힘으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성취한 나라가 되었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적 영향력까지 갖추게 됐다. 오늘날 한글은 더 이상 우리만의 문자가 아니다. 세계인이 함께
12.22
전남은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대형연구시설이 전무한 이른바 R&D 불모지였다. 지역대학은 과학 인재를 육성했으나 그 인재들이 정착해 꿈을 펼칠 국가 대형 연구시설이 부재했다. 이는 곧 지역인재 유출과 지역 성장 동력의 부재라는 아쉬운 현실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노무현정부에서는 나주에 한국전력을 중심축으로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라는 밭을 개간했다. 문재인정부 때는 세계 유일 에너지특화대학인 한국에너지 공과대학이라는 씨앗을 뿌렸고, 이제 이재명정부에서 인공태양 연구시설 등을 유치해 열매를 맺을 차례가 됐다. 핵융합에너지는 태양의 원리를 지구상에 구현하는 실험이다.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을 융합해 무거운 원자핵으로 바뀌는 융합 과정에서 줄어든 질량만큼을 에너지로 변환한다. 핵융합 원료는 수소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다. 삼중수소는 양성자 하나에 중성자 두 개, 전자가 하나다. 이를 융합하면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각각 두 개인 헬륨과 중성자가 만들
12.18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 및 교육의 장이어야 할 디지털 공간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 같이 아동 피해 사례가 기사로 보도됨에도 여전히 아동은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 정책과 플랫폼 운영이 수익과 성인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초록우산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최근 ‘제7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심의 대응 아동보고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이후 5년마다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심의를 받아왔다. 7차 심의를 앞두고 발간한 ‘클릭 후 우리가 겪는 진짜 이야기’는 지난 20개월간 전국 각지의 초록우산 아동권리옹호단이 6차례 워크숍을 거쳐 완성했다. 아동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경험한 문제를 기록하고 스스로 해결방안을 제안한 이번 보고서에는 아동 504명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겼다. 보고서 내 아동들의 설문조사에서는 디지털 환경 속 아동
12.17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산업재해 현장을 찾아가고 국무회의에서 여러 차례 산재 문제를 언급하는 목소리에서 필자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진정성을 느낀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직을 걸라고 주문했고 산업안전보건본부장에는 민간 전문가를 선임하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산재를 줄이기 위해 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산재가 획기적으로 줄고 있다는 징표를 아직 확인할 수 없다. 사용자의 긴장감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 물론 대통령의 관심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산재예방을 위한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만약 사용자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산재가 줄어들 수 있었다면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산재는 급격히 감소했어야 한다. 긴 시간으로 보면 산재는 천천히 줄어들고 있지만 그 속도는 너무 더디며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그 속도를 크게 바꾸지 못했다. 최근 연일 발생하는 출근했다가 퇴
12.16
올 한해는 ‘K-조선의 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계 1, 2, 3위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굳건한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조선 산업 수출액은 8년 만에 3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며, 조선소 도크에는 3 ~ 4년치의 일감에 달하는 수주 잔량(3500만CGT)이 가득 찼다. 또한 올 한해 세계에서 발주된 대형 LNG 운반선을 우리 조선 3사가 모두 수주하는 등 눈부신 실적을 거두었다. 특히 ‘마스가(MASGA)’ 라고 불리는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한미 양국의 경제 및 산업 관계가 한 단계 격상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이 모든 성과는 지난 긴 불황의 터널을 한 마음으로 극복하고 묵묵히 현장을 지켜주신 조선 업계 모든 분들의 헌신과 노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조선 산업 앞에 놓인 파고는 여전히 높다. 외부적으로는 경쟁국들이 저렴한 원가 경쟁력과 매섭게 추격해오고 있는 기술력을 앞세워 한국 조선업의 선도적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