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7
2026
우리나라 법체계는 헌법을 정점으로 법률, 명령, 조례가 단계적으로 이어진다. 지방의회가 만드는 조례도 주민 생활에 밀접한 자치입법이지만,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법률이 정한 원칙을 흔들 수는 없다. 조례가 지역 현실을 반영하는 수단이라 해도 그 힘은 상위 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돼야 한다. 물론 지방의회가 법령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감수하면서 조례 개정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법령이 지역 현실을 충분히 담지 못하거나,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이익이 있고, 지방자치가 그 빈틈을 보충해야 할 때다. 실제 부산 생활임금 조례는 시장의 재의 요구와 대법원 소송을 거쳤지만 공공기관 청소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효력이 인정됐다. 인천 공항고속도로 통행료 지원 조례도 영종·용유지역 주민의 경제적 부담 경감과 이동권 보장이라는 목적이 받아들여졌다.공통점은 분명하다. 법령과의 긴장을 감수하더라도 조례가 향한 곳은 시민과 공공성이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최근 부산시
04.23
사람들은 왜 고향을 떠나는가. 학자들은 오랫동안 두 가지 답을 제시해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질 때 사람들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누가 정의하는가? 지금까지 이주 연구는 좋은 직장, 개인의 자유, 민주적 사회를 이주의 목표로 당연하게 전제해왔다. 한마디로 서구식 근대적 삶이 이주의 종착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근대성은 사실 식민주의와 함께 세계에 퍼져나갔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이식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앙골라에 간 포르투갈인은 자동으로 ‘전문 인력’이 되고, 포르투갈에 온 앙골라인은 으레 ‘저숙련 이민자’로 분류된다. 출신이 다를 뿐인데 대우가 다른 이 현실은 식민지 시대의 위계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주
04.22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비만약’ ‘탈모약’ 급여화를 검토하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언급에 건강보험의 ‘한정된 재원’ ‘우선 순위’에도 맞지 않으며 전형적인 ‘포퓰리즘’ 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는 ‘건보재정’ 파탄론을 꺼내들며 ‘모퓰리즘’이라고까지 공격했다. 그런데 이 정책이 이런 비판을 받을만한가. 우선 비만약과 탈모약은 성격이 다르다. 최근 각광 받는 비만약인 글루카곤유사펩티드(GLP) 제제는 이미 급여대상인 국가들이 많다. 일본은 건강보험을 적용하며 영국은 무상으로 제공한다. 물론 급여기준이 있다. 고도비만이거나, 비만이지만 합병증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세계보건기구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비만치료를 통해 대사증후군감소가 입증돼 의학적으로도 급여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탈모약의 경우 의학적으로 효과가 커 광범하게 처방되는 약물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호르몬 억제제인 전립선비대증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남성 탈모에만 효과가
04.21
기술 패권 경쟁은 더 이상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모빌리티, 에너지 전환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경쟁은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구조적 경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인재가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 공과대학 여성 비율은 2000년대 초반 약 10% 수준에서 최근 20% 중반까지 확대되었다. 양적 성장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이들이 발휘하는 역할과 영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이 25%의 인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단순한 참여의 부족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인재의 부족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정확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갖춰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산업 현장의 경력 경로와 조직
04.20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중동 정세의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국제 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30달러대(두바이유 기준)로 급등했다. 원유와 LNG 등 핵심 에너지원의 94%를 해외에 의존하며 국가 경제를 사실상 ‘저당 잡힌’ 우리에게 대외 변수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다가온다. 이번 위기는 낯설지 않다. 우리는 과거 ‘오일쇼크’의 악몽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그 고통을 학습해 왔지만 불행히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경제 구조에 있다. 자원이 부족해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국제 정세가 흔들리면 국내 경제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그때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유류 최고가격제 도입, 비축유 방출, 재정 투입으로 대응해 왔다. 필요하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 위기를 잠시 늦출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답은 분명하다. 에너지 자립이 그것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과감한 전환은 더 이상
04.16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태체험축제로 자리 잡은 함평 나비축제도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함평은 뚜렷한 관광자원이 없는 농업 중심의 지역이었고, 나비를 주제로 축제를 만든다는 발상에 대한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나비가 사람을 부를 수 있겠느냐” “지역경제 유발 효과가 있겠느냐”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자, 실현가능성은 달리 판단됐다. 나비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가진 자연과 사람, 그리고 가능성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역 고유의 생태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점차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나비축제는 이벤트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친환경농업 브랜드를 싹틔우는 데서 출발했다. 이어 주민을 설득하고 농업인들과 공무원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것보다 아이들이 체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되살
04.15
2024년 5월, ‘문화재’라는 일본식 명칭을 벗고 ‘국가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유산청이 출범했다. 이는 단순한 보존과 관리의 차원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온전히 계승하고 미래로 발전시키겠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정작 우리 문화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자 정체성의 근간인 ‘한글’은 국가유산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전히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겨레의 큰 스승이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은 1446년 반포된 이래 약 58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숨결을 담아온 문자이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이며, 우리나라를 넘어 인류가 함께 공유할 만한 위대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공식 문자였던 한자에 가려 ‘서민의 글’로 머물렀지만, 그 속에서도 한글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한글로 기록된 수많은 서적과 편지, 내방가사, 금석문 등이 남겨졌고, 이는 오늘날 대체할 수 없는 국가
04.14
자녀 1명을 둔 40대 A씨는 2016년 이혼 후 양육비 법률서비스를 받기 위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찾았다. 재산조회·이행명령·감치재판까지 진행했었다. 2026년 1월, 그는 결국 밀린 양육비 5000만 원을 받게 됐다. A씨는 국가가 먼저 지급한 후 강제징수를 하는 ‘양육비 선지급’을 신청했다. 버티던 전 배우자는 회수통지서가 발송되자 마음을 바꿨다. 양육비 정책이 더 이상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이행되는 제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양육비 이행 문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이혼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양육비를 받기 위해 추가적인 소송과 집행 절차를 반복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 심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가 바뀌고 있다. 국가는 양육비 문제를 개인의 갈등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직접 개입하여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31
04.13
‘고향사랑기부제가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정부가 지방 소멸 방지를 위해 동원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국세로 유입된 돈을 소멸 위험에 처한 지방에 할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크다. 쓸 곳은 많은데 나라 곳간은 늘 곤궁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민이 세금 낼 곳을 직접 지정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자체 간 세금 이전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선택의 대가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 밀집 지역에서 감소 지역으로 돈이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이 접근방법에 따라 설계된 제도가 일본의 고향납세다. 세금 공제 혜택과 답례품 제공이 보상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향납세가 이룩한 성과는 눈부시다. 2024년 한해 동안 약 1조3000억엔, 우리 돈으로 12조원에 가까운 돈을 모금했다. 일본정부 일반회계 세입예산(약 72조
04.09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교육감 선거에 나선 예비후보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교육감은 시·도의 교육 행정을 총괄하며 학생들의 유·초·중등 교육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다. 이 시점에서 교육감 선거가 다루어야 할 핵심 의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성과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다시 말해 ‘무엇을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기존의 논의가 학업 성취와 지능지수(IQ) 같은 인지적 능력 신장에 집중되어 왔다면, 이제는 비인지적 역량, 즉 인성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은 장기 추적 연구인 ‘페리 유치원 프로젝트’를 통해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인지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적·정서적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연구는 유아기에 인성교육과 사회성 훈련을 받은 집단이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높은 소득과 고용 안정성을 보였음을 확인했다. 심리학자 안젤라 더크워스 역시 “성공의 중요한 예측 변수는 재능이 아니라 그릿(grit)”이라고 지적
04.08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는 오래도록 이어져 온 조용한 돌봄의 풍경이 있다. 한 주민이 수년째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해 계절마다 옷을 챙기고, 반찬을 나누며 이웃 이상의 가족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남았다. “혹시 내가 없는 사이, 이분이 홀로 생을 마감하신다면 누가 마지막을 함께 해드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2025년 말 기준 마포구의 1인 가구는 8만7786세대로 전체 가구의 48.7%에 이르러 사실상 두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공공이 실천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가족이 돌봄 건강 식사 관계 장례까지 삶의 대부분을 책임졌지만 1인 가구 시대에는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이 사회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마포구는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효도밥상’에서부터 출발했
04.07
거대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문제로 전 세계가 불안과 불편을 넘어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SNS상에는 영토의 크기와 국력을 다루는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는 동방의 작은 국가에 강대국들이 둘러싼 약소국이란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국토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대한민국의 크기는 약 10만472㎢로 전 세계 국가 중 107번째다. 한반도 전체로 보면 영국이나 루마니아와 크기가 같고, 남한 면적만 해도 헝가리나 포르투갈과 비슷하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세계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져 적도를 중심으로 멀어질수록 면적이 왜곡되어 커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아프리카대륙만 해 보이는 그린란드는 실제로 그보다 14배나 작고, 러시아도 아프리카의 절반 크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작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유난히 풍수지리에
04.06
군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고민이 많다. 우리 아이의 일상을 지키는 ‘안전’과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역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 보면 이 두 가지 핵심 영역에서 지역 주민의 권리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지역의 치안을 총괄하는 경찰서장도, 아이들의 학습 환경을 책임지는 학교의 교장도 모두 중앙정부나 광역 단위의 ‘윗선’이 임명하여 내려보낸다. 인사권이 중앙과 상급 기관에 종속되어 있다 보니 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의 절박한 목소리보다는 인사권자의 의중을 향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지역 도시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 낡은 하향식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성은 치안과 교육 행정의 권한을 지역 사회로 온전히 이양하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즉, 학교 교장과 경찰서장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거나 그에 준하는 강한 통제 장치
04.02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5년 이후 하락을 거듭하며 2023년 0.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다행히 2024년 0.75명으로 반등한 데 이어, 2025년에는 4년 만에 0.8명대를 회복했다. 비록 대체출산율(2.1명)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지만 장기간 이어진 하락 기조에서 탈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인 신호로 평가받는다. 출산율 반등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혼인 건수의 반등이다. 혼인 건수는 2023년 반등을 시작으로 2024년 20만건을 돌파했으며 (약 22만건), 2025년에는 약 24만건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비혼 출산 비중은 한국(2.5%)과 일본(2.4%) 모두 극히 낮다. 이는 서구권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 결혼율의 제고 없이는 출산율의 유의미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1993년부터 2024년까지의 시도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조혼인율(인구
04.01
미성년자인 A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B와 일일 코스프레 카페를 열기로 했는데 체험은 하고 싶으나 위 행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A는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관련 경험이 많은 성인 B가 비용을 제공하고 행사 준비 전반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B는 A의 미숙함을 이용해 불필요한 것도 필요한 것처럼 가장하여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했고, 결국 용돈이 바닥난 A가 돈을 주지 못하자 이를 빌미로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결국 B는 A를 상대로 2000만원의 대여금 지급명령을 신청해 확정됐다. 부모님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해 밝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A는 B가 위 지급명령을 기초로 재산명시 절차를 밟기 시작하자 부모님에게 발각됐고, 부모님은 즉각 사실관계를 파악해 소를 제기한 뒤 공단의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공단의 조력하에 법원은 일일 카페 운영 동업이 미성년자의 일상생활 범위를 벗어난 행위로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이루어진 점을 인정하고, 이를 기초로 한 지급명령까지 모두 무효라고 판단했
03.31
미·이란 전쟁이 예상을 넘어 장기화되면서 세계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초기에는 유가 급등과 해상운임 상승이 직접적인 변수로 주목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유 수급뿐 아니라 나프타, 산업용 가스, 황, 비료 원료, 정유제품처럼 산업 밑단을 떠받치는 품목까지 불안해지고 있다. 이제 그 여파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넘어 물가와 생산, 세계 교역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으며, 식량안보와 첨단산업 경쟁력까지 함께 시험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중동 분쟁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비용 구조와 공급망을 재편하는 공급충격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충격은 한국에 더욱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동 리스크가 제조업의 기초체력을 떠받치는 산업투입재 전반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프타와 LNG 등 화학 원료의 조달 차질은 석유화학 산업의 생산 병목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플라스틱, 합성섬유, 자동차부품, 가전용 내외장재 등 전방 산업으로 파급된다. 여기에 반도체·배터리 공정용 헬
03.30
대한민국은 과연 전략이 있는 나라가 맞느냐는 근본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고자 한다. 손발이 떨리는 걸 참고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대전략’이라 부를 만한 통합된 국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부처별로 파편화된 산업정책, 정권의 향방에 따라 춤을 추는 에너지정책,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임기응변식 외교정책이 병렬적으로 존재할 뿐, 이 모든 것을 관통하여 국가의 명운을 책임질 최상위 개념인 ‘대전략(Grand Strategy)’은 실종된 상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주변국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생존해 왔을지언정, 우리만의 독자적인 생존 지도를 ‘설계’하고 관철시킨 적은 없었다. 알래스카 LNG 제안의 본질 - ‘에너지 동맹’의 요새화 가장 뼈아픈 실책은 알래스카 가스전(Alaska LNG) 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미국이 이 개발에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강력히 권고했을 때, 우리는 단기적인 경제성 논리를 앞세워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는 국제정치적 안목이
03.26
최근 정치권과 교육계를 중심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 구상은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의미 있는 방향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 대학이 마주한 위기의 본질이 과연 ‘돈이 없어서’만인가. 2019년 이후 학령인구는 이미 급격한 하락 곡선에 접어들었고, 수도권 쏠림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금 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재정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묻는 구조적 위기다. 인공지능과 온라인 플랫폼이 주도하는 거대한 전환 속에서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많은 대학은 여전히 학과 간 칸막이와 교수 중심의 경직된 커리큘럼이라는 낡은 관성 속에 머물러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는 기존 학과 체계를 과감히 허물고 융합 연구 중심 구조로 전환하며 혁신대학의 대명사가 됐다. 닐 암스트롱을 배출한 우주항공 분야의 명성을 넘어 공학 전 분야의 최고
03.25
전쟁과 복합적 위기가 부각될수록 평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2000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 여성·평화·안보(WPS) 의제는 평화 구축 과정에서 여성의 참여를 요구하며 성주류화, 참여, 예방, 보호라는 네 가지 축을 제시한다. 이 논의는 대체로 국가 단위의 정책 이행과 제도적 참여의 언어로 조명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면, 풀뿌리 수준에서 축적된 여성들의 평화 실천은 그 다양성과 지속성 면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여성들은 국가 독립과 존립을 위해 교육과 계몽, 조직 활동을 전개했고, 해외 동포사회에서는 가정과 공동체를 떠받치는 구심점으로 조국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을 이어 왔다. 이러한 실천은 국가안보와 인간안보,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분리된 영역으로 다루기보다 상호 연동된 과제로 이해해 왔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평화를 선언적 이상이 아닌 질서와 책임 속에서 감당해야 할 현실로 인식해 왔다는 점을 드러낸다.
03.24
23일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개최됐다. 새롭게 취임하는 해수부 장관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지금 대한민국 해양 정책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고 그 중심에는 해양수도권 구축과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놓여 있다. 두가지 축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재명정부 초대 전재수 장관이 기본 설계를 하고 실행의 단초를 놓았다면 새 장관은 그 설계를 더 다듬고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이행을 해야 한다. 정부 초기인 현 상황에서 특히 해수부 장관의 역할은 막중하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같이 해수부의 신속한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양수산 공공기관 이전 △HMM 등 해운대기업 이전 △동남권투자공사 설치 △해사법원설치 등을 통한 해양 행정·산업·금융·사법 등 해양총괄 기능의 집적이 속도감 있게 체계적으로 실행돼야 한다.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권 건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