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3
2024
북한의 수해피해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수해복구 지원 제안이 사실상 거부되었다. 예로부터 모자란 것은 나눠 쓰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펼쳐왔던 우리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갈라졌는지 참 안타깝다. 하지만 이번 수해복구 제안에 대한 북한의 거부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남북간 대치국면에서는 아무리 인도적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왜곡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시작은 사실 북한이었다. 1984년 당시 서울과 경기지역의 막대한 수해에 대해 북한이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측 체제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의도, 그리고 1983년 버마 아웅산묘소 폭탄 테러에 대한 정치적 제스처 성격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공세로 끝날 일을 우리측이 받아들임으로써 그야말로 웃지 못할 사건이 되어버렸다. 물론 수해 물자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소간의 회복기를 맞았고 1985년에는 남북 이산가족상봉과 상호 예술공연단 교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의 대결구도를 반전시키기에는 역
08.06
지난주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아들의 수료식에 다녀왔다. 5주 훈련을 마치고 난 아들이 의젓한 군인으로 변해 있었다. 입소식날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 사단장이 임석해서 그런지 신병들은 수료식이 진행되는 동안 뻣뻣하고 경직돼 보였지만 소대별로 준비한 수료식 퍼포먼스를 마치자 부모들은 밝고 건강한 아들들을 보고 모두 안심하고 환호를 보냈다. 이런 수료식 분위기와 달리 필자가 경험한 신병교육대 입소식 분위기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긴장 그 자체였다. 신병교육대에 입소하던 날 부대 앞 식당에서 입맛이 없다며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던 아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한 부대에 들어선 순간 짧은 머리를 한 MZ세대 아들과 동행한 부모, 그들을 맞이하는 조교들 모두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이런 분위기는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생생하게 그려질 것이다. 신병 교육은 상식과 비상식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이유는 군대의 특성상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07.30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미국 내에서 북핵 접근을 둘러싼 현실론이 다시 한번 부상할 조짐이다. 크게 보면 북핵 접근에서 ‘비핵화’ 우선이냐 ‘위협감소’ 우선이냐로 볼 수 있지만, 논의의 저변에는 북한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현실인식이 자리한다. 비핵화 협상 제기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울 만큼 핵무기 고도화 의지와 수준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김정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활동을 통해 등장한 미사일만 사거리별 기능별로 크게 분류하면 14개 무기체계에 달한다. 세분류하면 등장모델만 대략 47종, 이중 도태된 모델이나 개발 중간모델을 제외하면 개발 및 운용 중인 탄도미사일만 34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21년부터 시작된 ‘국방력발전 5개년계획’ 기간에 새롭게 등장한 무기는 약 13~15종에 달한다. 북한은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들을 ‘전략무기’와 ‘전술핵무기’로 구분한다. ‘전략무기’로 언급한 무기체계들은 1000km 이상의 사거리를 갖는 준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구성돼 있다
07.23
2023년 9월과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총회와 나토정상회담 등 국제외교무대에서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냈다. 윤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 내용은 가치와 이념을 바탕으로 하지만, 실제 어떤 군사적 실천이 가능한지는 담겨져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의 경고가 번번이 묵살돼도 이에 대한 대국회 혹은 대국민 설명도 없는 실정이다. 윤석열정부가 수교 이후 한국정부가 진보인가 보수인가와 무관하게 친한노선을 견지해온 중국 러시아와 무슨 이유로 갈등하게 되었는지도 설명이 없다. 더 심각한 안보위기는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외정보 관리능력이 문제라는 얘기다. 다른 정권이었다면 정보실패에 따른 국정원과 안보실장의 문책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주 미 CIA 출신 수미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는 국정원의 해외정보
07.16
북한과 러시아는 자국이 침략을 받는 경우 상호 지원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의 북러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이 불쾌한 심정인 듯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 조약을 한국을 겨냥한 것으로, 이 조약과 관련해 중국이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가 강화될 가능성 때문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전신인 구소련이 북한을 대거 지원한 경우가 세번 있었다. 첫째는 소련 입장에서 북한지역이 아태지역을 겨냥한 세력팽창 교두보의 의미가 있던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기간이다. 김일성이 주체 노선을 표방한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 같은 의미가 대거 상실되었다. 두번째 경우는 베트남전쟁 지원 방식을 놓고 소련과 중국이 격돌한 1966년부터 1969년까지의 기간이다. 당시 소련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 주변국인 북한 베트남 인도와 관계 강화를 추구했다. 세번째 경우는 미국 레이건행정부가 지
07.09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은 남북한 사회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김일성 사망 소식은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지만 그 소식에 몇날 며칠을 눈물 흘리던 북한 주민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기도 했다. 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던 날로부터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집권하고 최근 김정은의 북한 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김일성 사망 30주기는 북한에서 어떤 의미일까.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에 ‘태양절’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4.15’ ‘4월 명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김정은정권의 선대지우기가 가시화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일성 사망 30주기를 앞두고 ‘민족 최대의 추모의 날’이라며 노동신문에 김일성의 사상 이론 활동을 조명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하고, 사회과학원 원장 및 과학·교육계, 당 간부 양성기관 등 관계자가 참석하는 사회과학 부문 연구토론회를 열어 김일성의 업적을 칭송했다. 또한 여맹 직맹 청년동맹 농근맹 등 근로단체들은 추모행
07.0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러시아)은 6월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북러조약)을 체결했다. 2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북러조약 내용 중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은 3조, 4조, 8조 등 안보협력 분야다. 제3조는 쌍방이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조성될 경우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협상통로를 지체없이 가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외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51조)과 국내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제8조는 전쟁 방지 및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위능력을 강화할 제도의 마련이다. 미국과 유럽(나토)은 북러조약이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지원을 본격적으로 제공하고 유엔의 대북한제재 결의안들을 무력화하면서 북한의 핵 및 재래식 군사능력을 제고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06.25
일전에 임대주택 사업으로 회사를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가가 출산을 하는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금액을 출산장려금으로 내놓고 자기 고향 사람들과 동창들에게도 차등해 거액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참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인사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하는데 우정이라는 호를 따서 도서관과 문화체육시설을 기증하고, 장학금을 주고, ‘6.25전쟁 1129일’이라는 책을 통해 전쟁을 일깨우고, ‘미명36년 12768일’이라는 이름의 일제 강점기 역사책 5권을 통해 경술국치일부터 해방전일까지의 주요 역사기록을 펴낸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이다. 회사 본사도 대한제국의 조선시위대 제1연대가 주둔했던 정미의병의 발원지에 위치한다. 하지만 기업의 주력 업종인 아파트 건설에서 엄청난 부실시공과 하자보수 민원이 방송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공익사업 등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활동인 메세나(mecenat) 활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06.18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고무풍선 상황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벤자민 R. 바버의 ‘뜨는 도시 지는 국가’가 떠오른다. 저자는 국가(중앙정부)는 편가르기 외교와 안보, 실속이 없는 이념이나 위신을 강조한다. “도시(지방정부)는 조약보다 교통을, 원칙보다 도로 파인 곳을, 전쟁보다 쓰레기 처리에 신경을 쓴다”라고 평가한다. 고무풍선으로 발생할 피해에 대한 중앙정부의 국민 안전조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도민 안전에 위험이 되는 행위를 막고자 나섰다. 특별사법경찰관을 이용해 대북전단을 감시함으로써 북이 풍선을 보내는 빌미를 없애는 최소한의 조치를 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전단 살포금지 조치가 ‘표현의 자유’로 위헌 결정이 난 이래 북한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필자는 북한이 과거처럼 고무풍선에 조준 사격을 하고 남한이 강경하게 대응해 또 북한이 대응하는 포격전을 걱정했다. 실제로 남북 지도자들은 1000배 단위로 보복을 공언해 위기관리보다
06.11
북한은 지난해 연말 당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개 국가관계로 규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초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다음 최고인민회의에서 두개 국가론의 헌법화를 예고했다. 아직 다음 최고인민회의 개최 소식은 없다. 오는 6월 하순 당전원회의에서 이뤄질 지난 6개월 간 두개 국가관계 진행 상황의 평가가 관전포인트다. 북한의 적대적 두개 국가론은 모색기를 거쳐 형성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합의 불발 이후 대남전략 전반에 대해 재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주요 관심 사안임은 분명하다. 2019년 10월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관광 남측시설 및 관련 기구 개편을 지시했다. 2020년 6월 대북삐라에 반발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2021년 3월 남북대화의 주무기관인 조평통 폐지를 시사했다. 적대적 두개 국가론의 모색기로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모색기에는 남측인 우리측에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06.04
2024년 한해도 중반에 접어들었다. 6월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달이다. 1950년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발발했지만 2000년 김대중정부 때는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데탕트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숫자는 죄가 없지만 6·25전쟁의 기억으로 6월은 잔인한 달로 대물림되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지도 2년이 지났다. 기억에 남는 국방정책으로는 남북대화를 중시했던 지난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내세운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 ‘한미일 안보협력’ ‘훈련 강화’ 등이다. 그 결과 남북대화는 실종되고 평화보다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만 커졌다. 게다가 지난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책임 규명이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에만 초급장교 2명과 육군 훈련병 2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은 국민의 눈높이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국방 난맥상은 ‘즉·강·끝 대북강경 안보프레임’ ‘명령-복종 프레임’을 강조하는 정부의
05.28
지난 5월 16일 중국에서 중러정상회담이 있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회담 전후 일주일간 중요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통해 근거리에서 장거리까지 미사일 대량생산계획을 밝히며 미사일 발사 행보를 연출했다. 핵무기 개발·생산 명분과 정당성에 대한 중러의 지지와 인정 효과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북한의 국방력발전 5개년계획 4년차에 해당한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기생산계획 및 미사일 개발·생산 과업 등 올해 수행할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지난 3년 넘는 기간 이들 무기체계 개발에서 나타난 특징과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북한 핵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전술핵 공격 능력 확보다. 유도성 대형방사포 위력 제고, 전술핵미사일 실전화에 주력했다. 둘째, 중장거리 타격 능력 제고다. 장거리 미사일 모델을 다종화했고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 전술·작전·전략급 미사일의 고체연료화다. 2015년 ‘북극성-1’형 첫 발사 후 약 9
05.21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 중 하나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끊임없는 이주였다. 이주본능은 지금도 계속된다. 빈부격차와 불균등이 심화되면서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가 원동력이 돼 이주노동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국가와 체제의 개방 여부와 무관하게 합법·비합법적 방식으로 노동이주가 증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많지만 인도주의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에서 이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전세계 30억 노동자 중에서 10억여명이 생활근거지를 벗어나서 노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은 국가·지방·가정경제 차원에서 막대한 공헌을 한다. 노동력 수출은 빈곤지역의 실업문제를 억제하고 송금과 기술교환, 그리고 자본을 축적한 이주자에 의한 고향 투자는 출신지역 발전에 공헌한다. 부유한 지역·국가는 빈곤한 지역·국가 출신 노동자에 의해 기본적인 인프라가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저출생고령화에 의한 국가소멸이나 지역소멸을 억제하는 상당히 효과적
05.14
1969년 8월 29일, 6대의 팬텀기가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후 50여년 동안 팬텀기는 한반도 세력균형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팬텀기가 들어오기 이전 한국은 지상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공중전력의 열세로 북한과 비교해 전체 전력에서 상당히 뒤쳐졌다. 팬텀기의 도입으로 한국군이 북한군과 점차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해갔던 것이다. 이 같은 팬텀기가 한달 뒤 퇴역할 것이라고 한다. 팬텀기는 어떻게 도입된 것일까? 팬텀기가 도입된 1969년 8월 당시 북한공군은 미그(MiG)-21, 일류신(IL)-28 등 800여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공군은 F-5A와 F-86 전투기 200대 미만을 가진 게 전부였다. 이처럼 항공기 대수 측면에서도 열세였지만 한국공군의 F-5A와 F-86은 북한공군 주력기인 MiG-21과 비교해 성능이 상당히 미흡했다. 당시 한국공군 전력이 그처럼 열세했던 것은 미국의 한반도정책 때문이었다. 6.25전쟁 이후 미국은 아태지역을 겨
05.07
북한에서 5월 9일은 김정은이 2016년에 당위원장으로 추대된 날이다. 2016년 당시 36년 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당 최고 직책인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되었다. 김정은의 당위원장 추대는 1949년 김일성이 위원장으로 추대된 이후 67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집권 이후 김정은의 권력을 공고화하고 정치적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작업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권력을 공고화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유일한 최고지도자로 위치지우고자 하는 김정은의 의도가 드러났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지칭하는 ‘태양절’이 사라진 것이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등장 당시 할아버지 김일성을 빼닮은 외모로 관심을 끌었고, 이는 안정적인 권력승계를 위한 장치로 해석되었다. 아버지 김정일만큼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는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젊은 나이에 집권을
04.30
4.10 총선에서 범야권이 압승했지만 22대 국회에 대한 기대는 엇갈린다. 한반도 평화 문제로 범위를 한정해 보면 윤석열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대미 의존 정책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견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긍정론과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 주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구심이 섞여 있다. 조국혁신당이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기치를 들어 짐짓 대통령 탄핵을 암시하면서 진보층과 일부 중도층의 표심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탄핵은 현실적으로 무망한 일이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비록 대통령 지지율은 낮지만 총선에서 여당 투표율이 45%로 드러난 마당에 정치적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선거에서 민생 문제가 제일의 쟁점이고 외교안보는 후순위 이슈였다. ‘대파’가 핵무기보다 더 강력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민생도 경제도 인권과 사회보장도 평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중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평화나
04.23
전쟁술 연구에 평생을 바친 미 예비역 공군대령 중 존 보이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보이드는 일찍이 ‘우다(OODA)이론’을 개발해 기동전 이론의 진수를 정립했다. 윌리엄 린드가 기동전 편람에서 그의 이론을 소개했는데 보이드는 에너지 기동이론을 1966년에 정립해 미 공군의 전투기 설계 개념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이단아였다. 보이드는 전투기 설계 시 전투임무 수행에 필요한 필수기능을 제외하고 전투기를 가볍게 만들어 위치 변환을 자유자재로 해야 한다는 ‘전환이론’을 주장했다. 보이드는 영향력있는 세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976년 ‘파괴와 창조’를 선보였고 ‘전쟁의 형태(the Patterns of Conflict)’는 몇차례 수정을 거쳐 1995년 최종판을 발간했다. 1987년 ‘지휘통제를 위한 구조와 설계’를 발표했다. 그는 미 해군의 F15와 미 육군의 F16의 개발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보이드는 미 국방부 체계분석단에서 전투기 마피아라는 그룹을 결성해 F18도 개발했다.
04.16
정치인 영화 ‘길 위에 김대중’과 ‘건국전쟁’ 두편이 연달아 개봉됐다.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지도자라고 한다. 한편 한 대통령은 아직도 빨갱이 취급을 당하고, 한 대통령은 독재를 하다가 쫓겨났다.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건국전쟁’ 영화에서 침묵하거나 왜곡하는 내용에 대해 몇가지를 짚어 본다. 첫째, 건국전쟁은 새로 나라를 세우거나 빼앗긴 나라를 찾는 전쟁이다. 전쟁에는 반드시 아군과 적군이 피를 흘리며 승자와 패자가 있다. 임시정부는 미국 전략정보국과의 연합작전 ‘이글 프로젝트’를 준비했으나 작전 이전에 일본이 항복했다. 8월 18일 미군과 입국했다가 일본군이 거부해 비통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연합작전 이전에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승전국 대우를 받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런데 건국 과정에서 최소한의 상징적인 민족반역자 처벌이 없었다. 반면 이념대립으로
04.09
파키스탄은 이슬람권 국가 중 유일하게 핵무기 보유국이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국경분쟁과 인도의 핵무장에 맞대응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이슬람의 보검’이라 칭하면서 이슬람 국가들의 재정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파키스탄의 핵개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파키스탄이 핵을 다 개발할 경우 그 기술을 리비아에 들여오려는 의도였다. 미국의 경제제재 등 어려운 국면에서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콰디르 칸(Khan)’은 유럽으로부터 핵기술을 은밀하게 들여와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성공시켰다. 파키스탄에게는 인도의 주요 도시들을 핵무력의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투발수단이 없었다. 중장거리 미사일 기술이 없었던 파키스탄은 북한과의 커넥션을 모색했다. 북한은 사거리가 2000km 내외인 대포동 1호와 사거리 1000km 내외인 노동 1호,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정부는 1
04.02
지난해 여름 임무수행 중 불의의 사고로 한명의 해병이 순직했다. 사고 직후 대통령은 “사고원인을 철저하게 수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수사 외압 의혹에 휘말려 정치적 논란이 증폭되면서 종결짓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보직해임돼 재판을 받고 있고, 박 대령의 수사결과를 결재한 뒤 번복했던 당시 국방부장관은 최근 호주대사로 임명된지 25일 만에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1세기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이런 군대의 실상을 지켜보는 국민과 군 복무를 앞둔 청년세대들은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국방부가 박 대령에게 처음 적용한 ‘집단항명수괴죄’는 30년 넘게 군에 몸담았던 필자도 처음 들어보았다. 그만큼 초유의 사태로서 국민적 의혹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군대는 임무의 특성상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절대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군형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