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
2025
주민등록 등·초본을 발급받으려고 주민센터를 찾았던 기억이 아득하다. 이제는 신분증조차 들고 다니지 않는다. 모바일 신분증으로 웬만한 곳에서 신분 확인이 가능하고, 정부가 지급한 소비쿠폰도 온라인으로 신청해 곧바로 휴대전화로 사용할 수 있다. 이 편리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강국의 효능감’은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한 번으로 산산이 무너졌다. 화재로 행정망과 공공기관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647개 디지털 서비스가 멈췄다. 지금은 복구됐지만 한때 모바일신분증, 정부24, 우체국 예금·보험, 119 다매체 신고시스템 같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 기능까지 마비되는 상황을 겪었다. 단순한 불편이 아닌 일상이 흔들린 ‘재난사태’였다. 더 뼈아픈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년 전인 2023년 11월에도 지자체 행정전산망 ‘새올’과 ‘정부24’가 멈춰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전입신고, 출생·사망신고까지 전면 중단된 바
09.30
얼마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를 두고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한 순간 외교의 기본원칙은 완전히 무너졌다. 상호신뢰에 기반한 동맹이 아닌 일방적 요구에 가까운 ‘거래’다. 트럼프행정부는 관세인하라는 당근을 앞세워 한국정부에 거액의 현금투자를 강요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도 “일본식 투자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감세혜택도 없다”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미국은 투자처 선정과 수익 배분에 있어 절대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구조는 동맹 간 호혜적 협력이 아닌 강탈에 가깝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협상이 아직 정식협약이 아닌 구두약속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마치 계약이 체결된 듯 이행을 강요한다. 한국은 제도적 보호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일방적 요구에 노출돼 있다. 이같은 방식은 소프트파워 개념을 제시한 조지프 나이 교수와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코헤인 교수가 경고한 ‘힘에 의한 일
09.26
우리나라 자살률은 불명예스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지 오래됐다. 게다가 조금씩 줄던 자살률이 2023년, 2024년 연속 늘어 지난해는 1만4000명 넘게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노인층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층에서 증가하고 있다. 이재명정부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총력전을 펴는 모양새다. 각 정부 부처별 자살 고위험군을 최대한 찾아내고 지원해 자살 예방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접근법이다. 당장은 범정부 부처들과 지자체가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정부에서 새로운 예방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대책을 찾아 총력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현장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자. 한 정신건강학과 의사는 “그동안 우리나라 높았던 위암 사망자를 어떻게 줄였나. 검진을 많이 해서 조기에 치료했기 때문이다. 자살 줄이기도
09.25
민생회복 2차 소비쿠폰에 거는 기대가 크다.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를 살린 마중물이었던 1차 지원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내수회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회’란 판단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풀린데다 최장 10일 긴 연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국민 대다수(80%)는 연휴 때 해외보다 국내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금상첨화’다. 1차 때와 달리 2차 지급 땐 영세자영업뿐아니라 유통업계 전반으로 소비(쿠폰) 효과가 고르게 퍼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1차 지급 후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사업장매출 증가율이 대형 사업장보다 2배 높았다. 하지만 추석명절을 앞둔 상황에선 소비쿠폰 이상으로 돈을 더 많은 곳에 써야 한다. 돈 쓰기 측면에선 기업도 마찬가지다. 작은 소비가 큰 소비를 부르는 ‘승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중물을 넘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확대해석하면 1930년 대공황 시기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소
09.24
정치적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우리나라에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게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다. 탄소중립이라는 중장기적 목표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공포 때문이다. 진보정권이건 보수정권이건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에 대해 이견이 없다.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이미 2022년 12월 보령 1·2호기가 폐쇄된데 이어 올해 말 태안화력 1호기가 문을 닫는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에서는 2038년까지 29기 가운데 22기가 폐쇄된다. 산업의 동력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 모든 국민들이 기뻐해야 할 폐쇄가 일부 지역 사람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동안 석탄화력발전소로 가장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충남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충남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1기 가운데 29기가 몰려 있다. 이들 모두 서천 보령 태안 당진 등 서해안
09.23
정부는 최근 임금체불을 2030년까지 절반 수준(1조원 이하)으로 줄이고 청산율을 9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산재 사망사고만인율을 지난해 기준 0.39에서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내놓은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의 그것보다 강도 높은 대책으로 평가된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임금체불과 산재의 원인을 ‘비용절감을 위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찾았다. 불법하도급은 광주 학동 붕괴사고처럼 ‘평당 28만원→10만원→4만원’으로 떨어지는 ‘단가 후려치기’를 초래한다. 상위 도급자는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따낸 뒤 자신의 몫을 떼고 하위업체에 더 낮은 금액으로 재하도급을 준다. 이 과정에서 저가 자재, 인력축소, 고강도 장시간 노동,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투입 등으로 이어져 부실·붕괴·산재위험은 높아진다. 발주자가 적정 공사비를 산정하더라도 다단계 불법하도급 과정에서 공사비와 산업안전보건비가 깎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09.22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간 극한대립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공방은 단순한 정책비판을 넘어 서로를 ‘위헌정당’으로 규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슬기롭게 대처하며 ‘K-민주주의’를 드높였지만 그 이후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들이 과연 ‘민주주의’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꼽았다. 이 두 규범이 무너질 때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은 우리 기대와 달리 민주주의 보호막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이 제시한 기준대로 우리의 현 상황을 돌아보자. ‘상호 관용’은 정치 경쟁자를 적이 아닌, 헌법을 존
09.19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과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처리를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법원이 17일 입장문을 냈다.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한 전 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없으며, 거론된 나머지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강하게 부인했지만 읽기에 따라선 한 전 총리와 만나기는 했다는 것인지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다. 한 전 총리를 비롯해 거론된 인물들과 만난 적이 없고 따라서 이 대통령 사건을 논의한 적도 없다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제기된 의혹처럼 사법부 수장이 총리를 만나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는 말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당 뿐 아니라 적지 않은 국민들이 여전히 사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게 사
09.18
울릉도에 정박한 한국해양대 실습선에서 열린 ‘북극항로3.0시대와 동해안’이라는 주제의 정책간담회가 끝난 후 쾌속선 썬라이즈호를 타고 포항에 다가서자 영일만에 펼쳐진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시야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산업화 신화를 일군 영광을 뒤로 하고 중국 철강산업에 밀리고 미국 관세폭탄에 치여 고전하고 있는 포스코의 현실은 ‘임대’ 표시가 즐비한 포항시내 풍경과 연결됐다. 택시 기사는 “52만명까지 올라갔던 포항 인구는 지금 5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며 “포스코가 다시 활력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포스코와 포항시의 침체는 우리나라가 성장의 고점을 지나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를 상징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포항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고, 포항시장은 한국산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미국을 찾아 백악관과 의회 앞에서 관세인하를 호소하는 시위도 벌였다. 침체와 낙담 속에 있는 이들
09.17
“지방선거 공천혁신은 청년·여성 등 신진 인물의 진입 확대, 공천 절차의 공정성 강화, 기득권 구조 타파를 핵심으로 하는 제도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지방선거 공천혁신’을 묻는 질문에 네이버 인공지능(AI)이 답한 내용이다. 여야 정당들이 추진 중인 주요 혁신 방안도 설명해준다. 공천 절차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선 “‘우선추천’ 제도 확대, 국민공천배심원단 구성, 공천관리위원회 혁신 등으로 기존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민 참여와 평가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실제 내년 6.3지방선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들은 공천 방안 논의 등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광역·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현역과 도전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물밑 경쟁도 이미 시작된 상태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는 ‘공천’ 과정부터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12.3 계엄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을 겪은 국민들의 ‘눈높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특검수사를 통해 ‘건진법사’가 202
09.16
코스피가 10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사상 처음으로 3400선을 돌파했다. 정부가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져 증시는 상승 랠리를 지속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로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문제는 배당을 더 많이 늘리면서 동시에 세수에 큰 결손이 발생하지 않으면, 최대한 배당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하면서 최고세율 인하론은 더욱 확산하는 중이다. 최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내년 세제 개편안에 35%로 책정돼 있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이 배당 유도 효과와 세수 중립성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 이소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배당 성향 35% 이상인 기업에 대해 분리과세 최고세율 27.5%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09.15
“한나라당 의원들은 해변가에 놀러 나온 사람들 같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비해 열정과 전략이 다 부족하다.” 2006년 3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친정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평생 건설현장에서 ‘불도저 인생’을 살았던 이 시장 눈에 야당 신세임에도 절박감 없이 항상 여유 넘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거슬렸던 게 분명하다. 이 시장은 야당 의원이라면 밤잠 줄여가며 정권탈환을 위한 필승전략을 짜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의 한나라당 의원은 이 시장 기대와 너무 달랐다. 고위 공직자나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출신이 90%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금배지는 성공한 자신의 인생을 빛내주는 또 하나의 장식에 불과했다. 금배지 달면 좋고 안 달아도 굶지 않으니 절박함이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따위의 소명의식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다수가 ‘공천=당선’인 영남의원이다 보니 딱히 전략을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공
경기 광명시는 민선 7·8기를 거치며 ‘주민자치’라는 이름으로 시정을 시민 삶 속에 녹여왔다. 이는 행정 혁신을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지난 7월 소하동 아파트 화재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46세대, 134명의 주민을 지탱한 것은 다름 아닌 시민의 힘이었다. 사고 일주일 만에 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지역 단체와 주민들은 운영지원·성금·자원봉사팀을 꾸려 복구를 주도했다. 25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현장에 투입됐다. 성금 모금도 빠르게 확산했다. 총 489건의 후원으로 1억4000만원이 모였고 소상공인 모금 1800만원을 더해 모두 1억6000만원이 마련됐다. 광명시(행정)는 화재피해전담팀(TF)을 꾸려 생활안전보험과 지원금, 의식주와 심리회복을 지원했고 ‘안전주택’도 마련해 이재민 7세대 27명을 긴급 수용했다. 시민 참여와 행정 지원이 맞물려 피해 주민들의 회복을 이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주도권은 시민에게 있었다. “시민이 시민을 돕는다”
09.12
지난 9월 8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오찬회동. “내란세력과는 악수도 않겠다”던 정 대표도 “이재명정권 퇴진”을 부르짖던 장 대표도 이 대통령과 함께 손을 맞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 불과 3시간 전 ‘숙청’ ‘혁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판을 흔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정작 정상회담에 들어서자 이 대통령더러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이 두 장면은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 국정운영의 상징같은 풍경들이다. 비록 정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한 대야당 선전포고와 미국 이민당국의 조지아주 현대차-LG엔솔 공장 건설현장 300여명 근로자 단속으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취임하자마자 밀어닥친 대미 관세협상과 뒤이은 한미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맞닥뜨린 가장 큰 외교적 실험대였다. “우크라이나나 남아공 대통령처럼 면전에
“이해는 하지만 쉽지 않다.” 10월 첫발을 내딛는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해 에너지경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해온 그들조차 에너지체제 개혁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필요한 상황이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하다. 인간 경제활동이 에너지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에너지체제의 변화 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구현하기 어렵다. 에너지체제 개혁에 대한 열망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이유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섣불리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재명정부는 호기롭게도 이 어려운 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각종 반대와 ‘진보정권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지만(지금도 계속되지만), 에너지 분야에서 탄소중립과 혁신을 실현해 다시 성장하는 경제로 나아가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에너지고속도로’라는 혁신적인 브랜드를 내세웠고, 전기
09.11
10일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이 나오자 혁신형 중소기업단체들도 환호했다. “혁신생태계의 기반을 다지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벤처기업협회)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에 의미 있는 변화다.”(이노비즈협회) 이런 중소벤처기업들의 환호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그동안 설움이 깊었던 탓이다. 중소벤처기업에게 기술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 들어서는 정부마다 기술보호와 기술탈취 근절에 대한 강력한 추진의지를 천명했다. 수많은 종합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혁신의 결실인 기술이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했다. 중소기업 기술탈취(2023년 기준) 피해건수는 한해 약 300건에 이른다. 평균 손실액은 18억원으로 추정된다. 행정조사·조정신청도 연간 40~50건이다. 공개를 꺼리거나 소송을 포기한 경우를 고려하면 피해는 더 크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인용금액은 청구액의 17.5%에 불과했다. 이는 억울하지만 소송을 포기하는 원인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것 같다. 정부가
09.10
“찬물을 끼얹었다.” 이재명정부가 야심차게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해양수산부가 거론조차 되지 않으면서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해수부 이전에 대한 기대감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기 때문인지 실망감도 그만큼 컸으리라. 역대정권이 그렇듯 정부가 바뀌면 항상 가장 먼저 손을 보는 부분이 정부조직 개편이다. 새로 집권하는 세력의 국정운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그림이 정부조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도 찍힌 부처와 키워줘야 할 부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검찰청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해체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반면 과학기술과 기후환경, 여성정책, 중소벤처기업 등 그동안 소외받던 부처들의 확대 개편이 눈에 띈다. 국회까지 압도적 의석을 장악한 이재명정부의 의지를 드러내려는 것인지 개편 규모 역시 대폭 컸다. 그런 와중에 해수부가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알다시피 해수부 부산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공약이
09.09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권력자의 화풀이 정도로 취급받는 모양새다. 정부가 7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은 철저히 금융권 현실과 요구를 외면했다는 평가다.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하고, 소비자보호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금융위 금감원 두개 조직을 네개 조직으로 재편했다. 금융권에서는 “시어머니 네분을 모셔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해진 금감위와 산하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눈치를 봐야할 처지다. 거시금융안정성과 각종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감독과 감시기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개편안대로 향후 감독체계가 가동될 경우 금융회사는 이중 삼중 사중으로 각종 조사와 규제, 제재 등을 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혼선과 혼란, 행정적 낭비도 우려된다. 조직개편안 자체도 문제지만 논의 과정에서도 금융권은 외면당했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한 업권별 협의체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조직개편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정부의
09.08
정당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체다. 비슷한 생각의 사람이 몰려 있으니 밖에서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나 행태도 내부문제로 양해하고 넘어간다.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외연확장을 위한 이슈보다 상식 밖의 주장으로 내부결속을 외치는 주자가 더 주목받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 밖의 태도와 지향점은 달라야 한다. 특히 정권을 잡고자 하는 유력정당이라면 말과 행동의 주파수와 지향점을 외부에 맞춰야 한다. 당 안의 밀실에서나 할 법한 행동이 국회나 민생현장에서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다선 의원의 “초선은 가만이 있어” 엄포는 그래서 심각하다. 다수의석의 여당은 내란종식·검찰개혁 등을 내걸고 질주 중이다. 야당 추천 인권위원을 부결시키고, 상임위 야당 간사 선출건을 패스했다. 여당의 폭주라는 인식을 심기에 충분한 의제다. 그런데 “초선은 빠지라”는 외침으로 다 묻혔다. 초선에게 압력을 행사하던 그들 다선은 뭘했지. 계엄군의 불법적인 국회
09.05
케이팝은 이제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는 ‘오징어 게임’의 각종 기록을 넘어서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전세계 수십만 명을 모으는 무대를 만들고 해외에서의 공연 매출만으로도 수천억원대 규모를 기록한다. 그러나 정작 종주국인 한국에는 이들의 공연을 담아낼 그릇, 즉 전문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에서 대형공연을 열 수 있는 공간은 고척스카이돔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정도다. 잠실주경기장은 공사 중이고, CJ 라이브시티 아레나는 중단됐다. 그 결과 해외 톱스타들은 싱가포르 도쿄 등으로 향하고 케이팝의 본고장인 서울은 해외 투어 포스터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서울 대신 떠오르는 곳은 경기도 고양이다.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서울의 대형 공연장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공연 일정에서 서울이 사라지고 고양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문제는 단순히 서울에 큰 공연장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체육시설을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