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
2025
1957년 구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을 때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우주로 위성을 보낼 수 있는 발사체를 보유했다는 건 곧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 1면 헤드라인은 ‘소련 위성이 미국 상공을 돌고 있다’였다. 그 충격은 곧바로 정책 변화를 불러왔다. 불과 몇달 뒤, 미국 의회는 새로운 우주 전담 기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1958년 나사(NASA)가 창설된 것이다. 그때까지 흩어져 있던 연구소와 군사 기관의 일부를 통합해 우주개발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묶었다. 같은 해 제정된 국방교육법은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고, 미국은 인재 양성과 연구 기반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 국가의 위기의식이 과학기술 정책의 급격한 전환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 선언은
09.02
1960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한국계 강대원과 모하메드 아탈라가 발명한 모스펫(MOSFET) 트랜지스터는 지금까지도 모든 반도체 소자의 기본 구성요소다. 실리콘 집적회로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최신 CPU나 GPU에 100억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다고 할 때 바로 이 모스펫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인텔의 창업 멤버이자 최고 경영자를 지낸 고든 무어가 주창한 ‘무어의 법칙’에 의하면 70년대 초반 최초의 상용 CPU 칩이 발매된 이후 일정한 면적에 집적된 모스펫의 숫자는 1.5~2년마다 두배씩 증가해 왔다. 반도체 칩에서 모스펫을 작게 만들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너드 스케일링(Dennard scaling)이라 부르는 법칙에 따르면 반도체 칩의 면적이 일정하면 이 칩을 구동하는데 소모되는 전력도 거의 일정하며, 칩에 집적된 모스펫의 숫자와는 큰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서 일정한 면적의 칩에서 모스펫의 숫자가 증가하면 연산능력도 비례해 증가하지만 소모 전력은 거의 비슷
08.26
영국 바이오뱅크 사업에서 50만명의 DNA를 분석한 완성본을 공개했다. 2006년 즈음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이 약 20년 만에 일단락된 셈이다. 해당 사업은 참여자로부터 시료를 수집하고, 이들의 의료영상과 다양한 건강정보를 수집하며 진행되고 있다. 전례 없는 수준의 방대한 자료다. 이러한 고품질 자료는 전세계 연구자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논문도 수천 편 이상 발표됐다. 이제는 인공지능 연구의 기반 자료로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기도 하다. 고품질 자료를 생산하고 제공함으로써 전세계 연구자들이 영국인의 건강증진을 위한 연구를 하게끔 고안한 것이다. 해당 연구는 50만명을 대상으로 DNA 자료인 유전체 데이터를 4경8000조 염기쌍만큼 생산했으며 이를 분석해 총 15억개의 변이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동일 사업에서 기존에 확인한 변이정보에 비해 20배에서 40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변이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확인되는 DNA의 차이를 가리킨다. 서로 다른
08.19
최근에 과학산책 집필진과 모임이 있었다. 물리 분야의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스티븐 호킹과 양자물리학을 연구한 천재 물리학자이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세계 최대 특허전문기업 인텔렉츄얼 벤처스 설립자였지만 1999년 은퇴 후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이라는 6권으로 구성된 요리 백과사전을 펴낸 사람이다. 이 책은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올해의 요리책 상까지 수상했다(그 책을 온라인으로 외국 사이트에 주문했으나 배송이 아직도 안되고 있다). 여하튼 나는 그저 천재들의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으로 그를 ‘괴짜’라고 단정하고 지나쳤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은 한밤중 컴퓨터 과학자 대니 힐리스(Willam D. Hillis) 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 스파게티의 이상한
08.12
언젠가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아프리카의 푸른 과일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적이 있었다. 마블 베리(marble berry)라는 별명의 과일이 내뿜던 금속성 짙푸른 색은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색상 중 하나다. 흔히 접하는 꽃이나 과일은 보통 특정 색을 흡수하는 색소로 고유한 색을 발현한다. 가령 바나나는 카로티노이드 계열 분자들이 햇빛 중 청색영역을 흡수해서 노란색을 띤다. 그런데 마블 베리가 내는 색의 원리는 전혀 다르다. 과일 외피에 층층이 쌓인 미세구조가 파란빛만 집중적으로 반사해 만드는 구조색(structural color)이기 때문이다. 구조색은 식물보다 동물계에서 더 흔하다. 모르포나비의 푸른 날개, 공작의 화려한 무지갯빛 깃털, 딱정벌레를 포함한 다양한 곤충들의 현란한 등껍질 색상은 모두 색소 대신 특정한 미세구조가 빛에 반응해 만들어진다. 판상의 구조가 쌓여 있거나 작은 구슬들이 주기적으로 배치된 미세구조는 입사하는 태양빛을 반사하거나 산란시키며 일정한 방향으로 특정
08.05
세계기상기구(WMO)는 기상과 기후, 수문학 분야 정부 간 기구로 올해로 창립 75년을 맞아 “과학을 행동으로”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일까? 과학을 바탕으로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일까?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기후위기 유발 물질인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는 것과 이미 일어나고 있는 기후위기에 사회경제 시스템을 적응시키는 두가지가 있다. 과학을 기반으로 탄소중립 지원에서 중요한 에너지전환과 전력시스템을 위한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WMO는 구체적 행동 방안을 마련하고 지원하고 있다.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지난번 이 칼럼에서 프로야구를 포함한 스포츠에 폭염이 미치는 영향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쓴 바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폭염은 폭주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우리나라가 늦었을 뿐이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했을 때 생기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에 초점을 맞춰 문제 제기하는
07.29
수정과는 차게 먹는다. 더위가 한창일 때 한모금 마시면 안성맞춤일 음료수다. 생강과 계피를 달여 식힌 물에 곶감을 넣은 다음 설탕이나 꿀을 가미한 수정과는 필자 기억에 별미였다. 계피의 맵고 알싸한 향미가 곶감을 씹는 단맛과 어우러지는 이런 고급스러운 음료의 주재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설날 제사 마치고 큰아버지가 싸리나무 꼬챙이에서 딱 2개씩 나눠주던 곶감 귀한 시절이라면 마땅히 곶감이라는 답을 했겠지만, 지금은 계피 달인 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계피는 톡 쏘는 단맛이 있지만 매운 뒷맛이 센 편이다. 그렇기에 수정과에는 생강이나 꿀을 더해 계피의 매운맛을 누그러뜨리려 했을 것이다. 혈액순환을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니 감기에 걸렸거나 심하게 추위를 타는 사람이라면 계피를 차로 마셔도 좋을 것이다. 지금 보면 학교 앞에서 사 먹었던 계피는 중국이나 아시아에서 자라는 녹나무과(Lauraceae) 상록교목의 가지 껍질을 벗겨낸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지역에
07.22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가 21세기를 산다면 유튜브에 빠졌을까? 우물에 빠졌던 장화와 홍련은 또 어떨까? 심청이는 거절하기 힘든 거래를 성사시키며 가족의 생존을 위해 바다에 몸을 던졌고, 장화와 홍련은 말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가족의 균열을 떠안으며 우물에 빠졌다. 목숨을 희생해 겨우 목소리를 내던 동화의 주인공들이 지금이라면 어떤 유튜브 채널에 빠지고, 어떤 댓글을 달며, 또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궁금해진다. 심청이는 아르바이트 서너개 전전하며, 틈틈이 아버지의 삼시세끼나 병간호에 필요한 영상을 봤을까, 아니면 현실을 잊는 무념무상의 쇼츠에 빠졌을까? 장화 홍련은 눈칫밥 먹고 사느라 스마트폰 볼 기회조차 없이 스러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상상을 해보자. 심청이에게 오빠가 있었다면? 장화와 홍련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면? ‘‘가족들은 너를 몰라줬지만, 나는 네 말에 귀 기울여줄게’라고 속삭이는 알고리즘에 빠졌을지 모른다. 이런 상상이 쉬운 건 주체적 선택 없이 희생 서사에 갇힌
07.15
우리는 매일 아침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본다. 밤하늘의 별들은 계절마다 익숙한 자리를 지키고, 계절은 어김없이 순서를 따른다. 이렇게 반복되는 세상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익숙한 규칙, 익숙한 결과, 익숙한 세계. 우리는 그렇게 ‘확신’을 쌓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좋아한다. 뚜렷한 어조로 말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명확한 해답을 주는 전문가를 신뢰하고, 확신에 찬 지도자를 믿고 따른다. "아마도”보다는 “틀림없이”가, “가능성이 있습니다”보다는 “확실합니다”가 우리를 안심시킨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과 삶에서 선명한 판단, 뚜렷한 해답은 때때로 진실보다 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런데 확신은 위험하다. 확신은 질문을 멈추게 하고, 의심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틀렸을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 한 번 굳어진 믿음은 설령 그것이 틀렸다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되는 증거를 애써 부정하거나, 모순을 꿰맞추며 더욱 단단해진다. 그래서 과학자는
07.08
플라스틱(plastic)은 형상이 변할 수 있다는 ‘가소성’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합성수지를 부르는 일반명사로 쓰인다. 합성수지는 종류와 성질이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전기를 통하지 않는 절연체이고 탄소를 많이 함유하는 유기 고분자 물질이다. 수도관 같은 곳에 많이 사용하는 PVC가 대표적이다. 19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히거, 맥디아미드, 시라카와 등은 폴리아세틸렌이라는 폴리머 플라스틱이 반도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 반도체에서와 유사하게 적당한 불순물을 섞어서 도핑(doping)을 하면 전기 전도도가 무려 10^11배나 증가한다는 것도 발견한다. 이는 전기가 가장 잘 통하는 은이나 구리보다는 못하지만 전기가 꽤 잘 흐르는 금속인 스텐레스(stainless steel) 보다는 수백배 전기가 잘 흐르는 것이다. 플라스틱이 금속처럼 전기를 잘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로 이 세 사람은 2000년 노벨 화학상
07.01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지놈(AlphaGenome)이 공개됐다. 사람의 DNA가 바뀔 때 유전자 작동이 어떻게 변할지, 인공지능을 통해 통합적인 결과를 제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기존에는 실험대 위에서 수 년에 걸친 실험을 통해야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결과를, 컴퓨터 속 자동화된 실험을 통해 몇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 이는 DNA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암이나 희귀유전질환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물은 저마다 다른 DNA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DNA의 차이를 유전변이라고 하며, 변이는 생물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몸집 키 외형 유전질환 등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 중 상당부분이 이러한 유전변이로 인해 설명될 수 있다. DNA 변이가 다양한 생물의 차이에 강하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DNA에는 단백질처럼 기능을 하는 분자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작동하게 만들지를 조절하는 스위치가 포함돼있다
06.24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 이상)에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프랑스 115년, 미국 93년(예상), 일본 36년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다. 205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40%에 육박할 전망이다. 출산율 감소로 젊은층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부양비 증가가 2020년 노인 부양비 21.7명에서 2030년 38.2명, 2050년 77.6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노년기는 신체기능 저하와 함께 영양소 요구량과 소화능력이 변화된다. 기초대사량 감소로 에너지 요구량은 줄어들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영양소 섭취가 더욱 중요하다. 65~74세 전기노인과 75세 이상 후기노인으로 구분할 때 후기노인은 근감소증 예방을 위해 성인보다 1.2~1.5배 높은 단백질이 필요하다. 칼슘(1,200mg/일), 비타민 D(800-1,000IU/일), 비타민 B12 섭취가 강조되며, 수분 섭취(최소 1.5L/일)도 중요하다. 노
06.17
살아오며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색상을 처음 보는 기분은 어떨까? 영화 ‘아바타’의 무대인 판도라를 처음 방문한 지구인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느낌일까? 이런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소재로 삼은 소설도 있다. 1927년 러브크래스트가 발표한 단편 소설 ‘우주에서 온 색채(Color Out of Space)’에선 인간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인간의 감각 밖의 색채를 내뿜는 운석이 일으키는 공포와 비극이 묘사된다. 2019년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았던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란 영화로도 각색된 이 소설은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색채를 무기로 삼는 외계 존재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코즈믹 호러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색채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평상시에는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는 색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은 삶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놀랍게도 최근 미국의 한 연구그룹이 피험자들을 대상
06.10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됐다. 2024년 프로야구는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넘어섰다. 완벽한 투수로 이루어지는 투수전, 화끈한 홈런으로 펼처지는 타격전 모두 야구의 재미요소다. 야구는 통계와 확률의 게임이다. 특히 조건부 확률 게임이다. 타자의 공격능력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타율은 보통 3할을 넘으면 훌륭한 타자라고 본다. 하지만 타율 3할은 10번 중에 3번만 안타를 친다는 의미다. 1루타를 기준으로 보자면 안타를 연속 3번은 쳐야 1점이 나올 가능성이 생기지만 안타를 연속으로 3번 칠 확률은 3할타자(10중에 3번이 안타) 3명이라도 0.3x0.3x03=0.027, 즉 2푼7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야구감독은 점수를 내기 위해 매순간 확률게임(작전)을 해야 한다. 이러한 확률게임인 야구에 날씨도 영향을 미친다. 비로 인한 경기 취소는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기온이 높으면 홈런이 많아진다. 기온상승은 공기밀도를 줄이는데(샤를의 법칙),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받는
05.27
인간의 머리카락 수는 평균 10만개이며 수명은 족히 5년이 넘는다. 중추신경계를 보호하는 두꺼운 머리뼈에 둘러싸여 그러잖아도 혈액의 흐름이 느린 험한 곳에서 머리카락은 꿋꿋이 자란다. 세포들은 거기에 멜라닌 색소를 더하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큰아버지가 집에 하나 밖에 없는 부엌칼로 ‘백호’를 쳐주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벌거벗고 마루에 앉아 고개를 내미는 것 말고는. 그러다 읍내로 이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처음으로 나무판을 댄 이발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때 이발비는 30원, 시냇가 초가집 마당에 높다란 의자를 놓고 간판 없이 머리를 자르는 곳은 값이 10원이었다. 싸게 머리를 깎고 냇가에서 머리를 감은 뒤 얻어먹은 빵의 대가로 필자가 얻은 것은 ‘기계독’이었다. 알코올 불에 살짝 스친 바리깡(클리퍼)에서 설죽은 곰팡이가 필자 두피에 슬그머니 내려앉았던 모양이었다. 허연 곰팡이 무리가 자리한 곳은 가려웠다. 박박 머리를 감아도 나
05.20
‘교실혁명’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던져진 교육계의 강력한 슬로건이다.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혁명이라면 교실의 기술이 아닌 인간의 뇌, 사고 방식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AI가 눈깜짝할 사이에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다. 동시에 놀라울 만큼 정교한 가짜 정보도 만들어낸다. 나 대신 공부해서 글쓰고 말하고 그려주는 서비스가 매일 쏟아지는 시대에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만 ‘지능’이라 여긴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제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2025년, 더 많이 아는 뇌가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뇌가 필요하다. 겸손은 그저 ‘착한 마음씨’가 아닌 AI 시대의 생존전략이다. 인간만이 할 줄 알았던 사고와 판단의 영역까지 AI가 와 자리잡은 오늘이다. 기술과 지식, 심지어 윤리기준마저 빠르게 변화한다. 어떤 가치는 같은 시대에도 문화마다 다르고 같은 문화 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당신은
05.13
우주개발은 종종 먼 미래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거대한 로켓, 인류의 달착륙, 화성탐사 같은 장면들은 영화나 뉴스 속에선 익숙하지만 정작 내가 사는 일상과는 큰 관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종종 “우주개발이 우리 삶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듣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늘 구체적인 ‘오늘 해결할 일’과 마주한다. 오늘 퇴근길에는 비가 오는지, 스마트폰 앱은 왜 느려졌는지 등 삶은 늘 작고 구체적인 것들로 가득해 그 안에서 ‘우주’란 너무 멀고 추상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주는 여유가 있을 때나 떠올릴 수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낱말일지도 모른다. 우주는 나와 당신의 삶과 정말 별 상관이 없을까? 우리가 ‘나와 상관없다’ 라고 느끼는 그 우주에서 매일 수십기의 위성들이 당신의 스마트 폰과 통신하고 있다. 당신이 아침에 확인한 날씨,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위치정보, 거래시간 기준이 된 그 시계 모두 하늘 위에 무엇인가 조용히 작동하고 있기
04.29
현대인들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우리가 보통 ‘액정’이라고 부르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실제 액체결정(LCD)으로 구동되는 것이 널리 사용되다가 요즘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구동되는 것이 점차 늘고 있다. 눈으로 봐서는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이 두가지 디스플레이 기술은 그 원리가 전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박막 트랜지스터(TFT)를 사용하여 화면의 픽셀을 구동한다. 일반적인 반도체 소자인 CPU GPU DRAM 등은 모두 실리콘 웨이퍼에 미세 패턴으로 회로를 새겨서 제작한다. 실리콘 웨이퍼는 직경 30cm의 순수 단결정 실리콘 기둥을 얇게 잘라서 만든 원형기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반도체 소자는 모두 단결정 실리콘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도 픽셀을 구동하기 위해서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는 보통 가로 세로가 각각 2m가 넘는 유리기판에 수십 마이크론 크기인데, 실리콘 박막으
04.22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 중 하나는 살아있는 인류의 친척을 살펴보는 것이다. 유인원을 포함해 500여종이 넘는 영장류가 바로 그 친척이다. 이를 연구해 털의 분포나 얼굴 및 손발의 모양 같은 생김새도 비교하고, 공격성이나 사회성 같은 행동 수준의 특징을 비교하기도 한다. 기술이 발전하며 볼 수 있는 특징이 더 세밀하게 나뉘기도 한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염색체의 숫자와 염색체에 드러나는 무늬 같은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는 DNA 염기 서열 해독을 통해 염색체의 진화과정을 그 서열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일도 본격화되고 있다. 염색체를 통해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수십년 전부터 계속되어왔다. 1982년에는 사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의 염색체 색깔띠가 큼지막하게 실린 논문이 발표됐다. 염색체는 당시에도 알려져 있던 것처럼 개수부터 달랐다. 24쌍의 염색체를 지닌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사람은 23쌍의 염색체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04.15
우주라는 극한 환경은 인류에게 수많은 도전을 안겨준다. 특히 우주인들의 신체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우주식량 개발은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 우주인의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인 해썹(HACCP,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이 바로 이 우주식품 개발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무중력 환경은 우주인의 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무중력 환경에서는 하체 근육량이 20~30% 감소하며, 특히 종아리와 대퇴사두근에서 가장 두드러진 위축이 일어난다. 골밀도 역시 매월 1~2%씩 감소해 장기 미션 우주인들은 귀환 시 심각한 골다공증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체액은 상반신으로 이동해 소위 ‘머리 큰 개구리 증후군(Facial Puffy Syndrome)’을 유발한다. 심혈관계에도 심박수가 10~15% 감소하고 적혈구 생성이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