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0
2026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아서 반덴버그를 아는 이는 드물어도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그의 격언은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않는다. 외교는 오히려 국내정치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양당 간 분열이 깊어지면서 상대 당에 대해 정치적 선호뿐 아니라 기본적 가치관마저 다르다고 여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운다. 백악관에 역대 대통령 사진을 전시한 기념공간을 만들면서도 바이든 대신 오토펜 사진을 걸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설명문을 붙였다. 바이든이 복귀시킨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UNESCO)에서 트럼프는 다시 탈퇴했다. 나아가 지난 1월 7일에는 66개 국제기구 탈퇴를 명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1기를 미국 역사의 일탈이라 규정했지만 트럼프는 재선으로 이를 뒤집었다. 세계는 묻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탈이 아니라면 그가 야기한 변화는 얼마
01.23
우리 사회의 화두인 생명과 안전은 인간실존을 지탱하는 핵심가치다. 이는 국가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생존은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지구촌은 베네수엘라 사태를 비롯해 상처투성이 무법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강철주먹을 과시하려고 부드러운 척 연기하던 벨벳 장갑을 벗어 던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멜로스 회담’ 편에서 기술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 할 것을 겪는다.” 이 싸늘한 명제는 더 차가워졌다. 국제법과 유엔헌장의 질서규범이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기대는 공허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염원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외풍을 막아보고자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은 영세중립국이다’라고 명시하자는 시민들의 외침이 들린다. 코스타리카 경우를 보자. 1949년 헌법을 통해 군대를 폐지하고 1983년 영구적·적극적·비무장 중립을 선언했으며 2014년 인
01.16
지난해 1월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을 때 중동전문가들의 예측은 대체로 일치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주의, 신고립주의 기조가 1기보다 강화될 것이며 미군 관여 축소, 친이스라엘 노선 강화, 가자분쟁 조기 종결, 아브라함협정 확대, 이란 핵에 대한 강경대응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방향은 맞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미군 관여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중동 주둔군 4만~5만명 규모는 그대로 유지됐고 오히려 개별 군사 개입은 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이 대폭 강화됐고 후티 반군과 시리아 ISIS에 대한 보복공습이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6월 22일에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초유의 공습을 단행했다. 카타르에는 미군기지 주둔과 관련해 안전보장까지 약속했다. 철수는커녕 관여를 확대한 셈이다. 이스라엘 정책에서도 의외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타냐후의 무모한 확전으로 두 지도자 관계가 악화됐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무기지원은 물론
01.09
새해 벽두 심야에 전광석화처럼 실행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강제 체포와 미국 압송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미국의 신안보전략에 천명된 소위 ‘돈로 독트린’의 첫 실행 사례가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돈로 독트린은 19세기 초의 먼로 독트린이 21세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MAGA)와 묘하게 결합한 트럼프 자신의 조어다. 그러나 두 독트린은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남북 미주대륙을 포괄하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중시하는 안보 사고라는 면에서 유사하지만, 그 조건과 배경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로는 세계 10위권 밖의 신생국, 트럼프는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다. 먼로 독트린은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소외된 방어적 입장에서 나온 노선이었다. 반면 돈로 독트린은 지난 80년 간 유지된 자유 질서를 수호하는 세계경찰로서의 미국 역할에서 자진 후퇴를 의미하면서도 서반구 중심의 미국 패권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포
01.02
지난해는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를 뒤흔든 한해였다. 동맹국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미측 요구에 상호 국익에 부합하는 원칙적 타협점을 찾으며 위기를 넘겼다. 새해는 실행의 시간이다. 동맹과 안보 운영에 혁신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고 구체적 성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주목할 것이 있다. 트럼프행정부가 지난해 국가안보전략에서 나토동맹 파트너인 유럽의 ‘문명적 소멸’ 위험까지 경고하며 근본적 문제들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미 행정부는 가치보다 이익 기반 거래전략과 유럽연합(EU)의 다자주의 문제를 제기했다. 유럽이 러시아와 전략적 안정을 재확립하고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지는 자립적 동맹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유럽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약화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지역안보에 직결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에서조차 배제되어 있다. 내부 정치적 분열로 일치된 대러 전략이
12.26
2025
매년 12월이 되면 한국 사회는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에 시선을 집중한다. 성적 발표와 함께 올해 수능의 난이도가 적절했는지, 변별력은 충분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된다. 최근에는 재벌가 자제의 우수한 성적이 화제가 되며 여전히 ‘누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가’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 한국 교육의 민감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교육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적 담론의 중심에 서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치열한 교육열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의 명문 공과대학 인도공과대학(IIT)에 입학하기 위한 공동입학시험(JEE)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년 수백만명의 학생이 응시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극소수다. 특히 상위 100위 이내에 드는 수험생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의 자부심이 된다. 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일간지와 대형 입시학원 광고에 실리고 ‘전국 몇 위’라는 숫자는
12.19
일본이 다시 한번 국가운영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정보국’ 신설은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2차대전 이후 80년간 유지된 전후 체제를 넘어 일본이 ‘보통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 시스템 전환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아베 신조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이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국가안전보장국(NSS)을 설치해 외교·안보정책을 총리 관저 중심으로 통합하는 전략조정 체계를 구축했다. 다카이치정부가 추진하는 ‘정보 개혁’은 여기에 더해 정보수집과 분석 역량을 제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정책결정 시스템의 완결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이번 정보개편의 핵심은 속도와 집중이다. 현재 일본의 정보기능은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공안조사청 방위성 외무성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정보의 축적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를 국가 차원에서 신속히 통합·분석해 하나의 전략 판단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다카이치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12.12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미국의 19번째 ‘국가안보전략’이 논란을 낳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작성된 33쪽 문건은 역대 문건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미국의 역할과 세계의 이념적 가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이번 문건이 전략의 최우선 순위를 미국 본토와 서반구에 두고 먼로주의를 소환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을 ‘문명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하고, 유럽연합(EU)의 초국가적 정체성과 진보정책을 비판하며 미국이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은 과도해 보인다. 한국은 이번 문건에 세번 언급된다. 중국의 경제 재조정과 대외 영향력 견제를 위한 파트너로 두번,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해협) 방어를 위한 국방비 증액 필요국으로 한번 등장한다. 한국에 기대하는 바가 중국 견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은 이번 문건에서 경제적 경쟁자, 공급망 취약성의 원천, 무역 파트너, 지역 패권 추구 저지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트럼프
12.05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보수내각이 출범한 지 한달도 안되어 일본 외교가 중대한 시련을 맞았다. 11월 7일 국회 답변에서 총리가 “대만유사는 일본의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발단이다. 일본은 일관된 안보정책의 연장선이라고 하지만 중국에는 핵심이익 중 핵심인 대만문제의 레드라인을 건드린 발언이었다. 중국은 즉각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대응수위를 높였다. 외교적 항의와 비난에 이어 일본여행 자제령, 일본영화 상영 중지, 각종 교류행사 취소,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으로 이어졌으며 희토류 수출 제한 등 경제보복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취소, 유엔 무대에서 여론전 등 다자 외교전선으로 갈등이 확산되고, 일본 주변에서 군사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사태 촉발의 핵심은 전략적 모호성의 파기다. 일본은 2015년 안전보장법제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존립위기 사태’ 개념을 도입하며 어떤 사태가 이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구체상황에서 모든
11.28
‘영·독·불’은 전통적으로 유럽 대표 3국을 지칭하는 용어다. 우리 대통령의 유럽 순방도 영·독·불 위주로 검토하는 것이 당연시되곤 했다. 이 3국이 요즘 맥을 못 추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 후 5년 내내 내리막길이고 독일은 마이너스 성장의 수렁에 빠져 시름하고 있다. 프랑스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사회불안 등 총체적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세 나라 모두 반이민 정서가 격화해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분풀이를 이민자들에게 하고 있다. 지난 9월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을 가로막자(Bloquons tout)’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100만여명이 참가한 ‘국가마비운동’ 시위가 벌어졌다. 나랏빚이 1초에 5000유로(약 825만원)씩 늘어날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에 처하자 정부가 재정적자 감소를 위해 내놓은 긴축예산안이 의회 불신임에 막혀 2년 사이 총리가 6번이나 바뀌는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대는 국가재정파탄이 정부의 무분별한 이민자 수용과 구식민지
11.21
82억 사피엔스가 살아가는 지구는 바다 70%, 육지 30%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카리브공동체(CARICOM), 극지 등의 지역협의체가 있고 바다 없는 나라들의 모임인 내륙국가 그룹도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 간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파라과이는 땅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한 문호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Augusto Roa Bastos)의 은유적 표현은 내륙국가의 고독과 고립감을 드러낸다. 파라과이 국명은 ‘바다를 만드는 강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다. 바다에 대한 역사적 갈증과 간절함이 아니겠는가. 현재 전세계에는 44개국의 내륙국가가 있다. 그중 파라과이 몽골 등 32개국은 내륙개도국(LLDCs, Landlocked Developing Countries)이며 28개국은 바다가 없음에도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이다. 이 협약 제125조는 내륙국가들에게 해양 접근권과 경유국 통과권을 강조
11.14
캄보디아에서 우리 대학생의 납치 사망 사건이 보도된 지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캄보디아 현지에 합동 수사팀을 파견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하고 일부 조직원을 국내로 송환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캄보디아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이 최대 2000명에 달하고 일부는 베트남 라오스 등 제3국으로 이동하며 초국가적 연계 범죄 양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은 국경을 넘나들며 진화하고 있다. 지역 거점 대응체계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캄보디아 취업 사기 재발 방지의 핵심은 사전예방 현지대응 국제공조의 3축 통합관리체계 구축에 있다. 먼저, 사전 예방이다. 정보 제공 확대와 경고 강화가 필요하다. 주캄보디아 대사관과 외교부 홈페이지 SNS 유튜브를 통해 ‘해외 취업 사기 유형’ 및 ‘캄보디아내 위험 사례’를 정기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취업 알선 사이트나 SNS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허위 구인광고에 경고문을 게재해야 한다. SNS나 유튜브 등을
11.07
2025년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미국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그런데 미국이 보여준 무관심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근 미국은 그동안 추구해온 세계질서에 대한 입장을 바꾸고 있고 세계는 이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980년대 말 새로운 자유무역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북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진전과 유럽연합(EU) 통합의 가속화는 경제블록의 출현을 예고했다. 위기감을 느낀 아시아가 대응하는 협력체 구상을 모색하자 태평양 연안국인 미국은 논의되는 경제협력체에서 자국이 배제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1989년 미국을 포함하는 북미 동북아 오세아니아 동남아 12개국에 의해 태평양 양안을 아우르는 APEC이 발족되었다. 한국도 발족 멤버다. APEC이 출범한 지 36년이 지났다. 과거와 달리 미국정부는 덤덤하다. 여타 다자협력체 참여에도 소극적이다. 2017년 발족시킨 쿼드(QUAD)에
10.31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은 불가피했다고 분석했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두 동맹 간 대립이었지만 진정한 원인은 신흥 강대국인 아테네의 부상에 대한 기존 강대국인 스파르타의 두려움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이 함정이 필연적이지 않다면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고 말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제의하며 중국의 부상을 미국이 수용해줄 것을 희망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이든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같은 견해를 갖던 점이 있었다. 세계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변곡점에서는 어디로도 갈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이자 경제적 경쟁자이며 체제 라이벌이라고 복합적으로 정의한다. EU는 러시아가 허리케인이라면 중국은 기후변화로서 장기적인 도전을 제기한다고 인식한다. 중국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10.24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평화계획(20개항)에 따른 1단계 합의안이 10월 9일 이집트 시나이반도(샤름 엘 셰이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4개 중재국 간에 서명됐다. 그 내용은 즉각 휴전과 인질석방, 인도적 지원 확대, 휴전이행 국제감시단 구성 등이었다. 이어 10월 13일 20여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중동평화회의에서 4개 중재국(미국 이집트 카타르 튀르키예) 정상들이 ‘가자평화선언’에 서명했다. 이는 가자 재건과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다자간 협력 약속이었다. 바로 그날 하마스는 생존 인질 20명과 시신 4구를 송환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포로 1700여명과 장기수 250명을 석방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공격을 즉시 중단하고 일정 구간 후퇴 및 인도적 지원 물자 반입 확대를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새로운 중동의 역사적인 새날이 왔고, 이날이 오기까지 3000년이 걸렸으며, 평화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재국들의 노고는 일단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10.17
80년 전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만들어진 자유 국제질서는 당시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 주도로 가능했다. 현실주의 관점은 세계정치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압도적인 힘으로 이 질서가 가능했다고 본다. 자유주의 관점은 패권국의 선택이 중요함을 인정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2차례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힘이 아닌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이점을 깨닫게 된 인류의 집단 지성이라고 본다. 어느 관점이 더 옳은지에 대한 토론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정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답에 관계없이 규범과 다자주의 제도에 기반한 자유 국제질서는 지난 80년간 3차 세계 대전을 막고 평화의 기초 위에서 인류의 번영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기여의 정도에 대한 평가는 자유주의와 현실주의 관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해 온 국제질서가 21세기에 강대국 간 경쟁이 부활하면서 최근에는 그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 질서를 선택했던
10.10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철강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산업 전반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세율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하며 그 핵심은 거래의 기술이다. 이 변화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국제질서는 이념 중심에서 경제적 실익과 기술패권으로 이동했다. 공급망 위기와 자국 우선주의 속에서 신뢰는 쉽게 흔들리고 이해관계가 바뀌면 관계는 즉시 재조정된다. 상호의존성은 남았지만 그 연대는 느슨하고 불안정하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현실적 기회를 제공한다. 관세협상을 ‘압박의 장’이 아닌 ‘거래의 장’으로 바꿀 수 있는 시점이다. 새로운 구조 속에서 미국은 더 이상 동맹국과 전략적 파트너들을 일방적으로 지휘하지 못한다. 각국은 자국 중심의 선택을 교차시키며 이해득실에 따라 거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인도의 행보가
09.26
이제 얼마 후면 우리 민족의 최대 전통 명절인 한가위다. 그러면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는 어떤 명절이 있을까? 인도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힌두교(Hinduism)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힌두교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꼽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느 종교의 모습과는 다르다.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석가모니, 이슬람의 무함마드와 같이 특정한 창시자나 메시아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관된 교리를 규정하는 단일 경전도 없다. 대신 힌두교는 수천년에 걸쳐 인도 아대륙에서 전래되고 변화하며 살아남은 신앙 철학 풍습 관습이 대집성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조차 힌두교를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힌두교의 특징은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힌두교에는 수없이 많은 신이 존재한다. 창조와 파괴의 신 시바(Shiva),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비슈누(Vishnu), 창조자이자 만물의 근원인 브라흐마(Brahma), 지혜와 재산의 신 가네샤(Ganesha)를 비롯해 지
09.19
일본은 2010년대 이후 미일동맹을 배경으로 인도태평양 안보체제 구축에 앞장서며 대중국 견제를 대외정책의 핵심 과제로 추구했다. 2016년 아베정권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구상을 처음 내놓고 2017년 트럼프 1기 정권이 인도·태평양전략을 공식 채택한 이래 미일은 법의 지배, 민주주의와 자유무역 등 보편가치를 기치로 중국의 무력적인 현상변경 시도를 억제하는 안보협력 강화에 주력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정권이 미일동맹의 기저 가치를 흔들면서 일본의 대미 의존 외교에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두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미국은 법의 지배에 기반한 국제질서 형성을 주도했고 일본도 미국과 공유하는 인태 전략 하에서 국제법을 특히 중시하는 외교를 전개해왔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미국은 국제규범보다는 힘에 의한 평화와 거래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일본은 곤혹스럽게 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관련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 수상 등을 전범 혐의
09.12
글로벌 에너지 이슈가 단순한 경제적 자원 거래를 넘어 지정학적 패권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항일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 퍼레이드 행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외 20여 개도국 지도자들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라 미국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직전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 주도 다극질서 구축 의지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을 설치, 30년간 연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해 전통적 에너지안보 패러다임과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LNG 대미 의존 회피와 달러 기반 결제시스템 우회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한편 푸틴은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모디 인도 총리를 포섭해 러시아산 원유의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며 서방 제재망의 실효성을 약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