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
2026
미국 알래스카에는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년 배당금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석유를 직접 캐지도 않았고 정유공장을 운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알래스카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이 지급하는 배당금을 받는다. 알래스카는 석유를 주민 모두의 공동자산으로 본다. 땅속의 원유는 정유공장을 거쳐 에너지와 산업의 원료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데이터도 다르지 않다. 공공건물의 전력사용량, 교통량, 버스 승하차 정보, 전기차 충전 기록, 시민들의 이동과 소비 정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데이터를 새로운 자산으로 바꾸고 있다. AI는 데이터 시대의 정유공장과 같다. 흩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 새로운 서비스와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탄소중립도 같은 구조를 갖는다. AI가 데이터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한다면 탄소중립은 데이터를 탄소가치로 전환하는
06.10
중요한 정책적 어젠다는 실종된 채 여야 모두 심각한 내홍 속에 치러진 6.3 지방선거가 갈등과 분열, 첨예한 정치적 양극화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현주소만 드러내며 끝이 났다. 이제 막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이재명정부의 우선 과제는 아마도 이번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한 국정운영의 재정비일 것이다. 이번 선거는 기후·에너지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기후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 집권 초기에 치러진 선거인지라 에너지전환이 지역의 핵심 어젠다로 부상하며 다양한 현장 솔루션이 터져 나오리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상은 열렬한 변화의 열기는커녕 에너지전환은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실종된 주제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인공지능(AI)이나 데이터센터 유치 개발은 전체 광역 자치단체장 후보의 70% 이상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뜨거운 이슈였다. 물론 지방정부의 그러한 선택이 향후 중앙정부의 AI 정책에 상당한 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05.27
2024년 가을, 사과밭에는 햇볕에 데인 열매가 남았다. 폭염은 포도의 착색을 늦췄고, 배추 한포기 값은 9000원을 넘었으며, 인삼밭은 더 서늘한 곳을 찾아 점점 북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후가 농사를 흔드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야기 끝에 농지 위 태양광을 꺼내면 반응은 대개 둘로 갈린다. 농가의 부수입이라는 기대, 아니면 농지를 잠식한다는 우려. 둘 다 영농형 태양광을 너무 좁게 본다. 영농형 태양광을 발전설비로만 보면 관리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농업 인프라로 보면 다른 물건이 된다. 핵심은 전기가 아니라 그늘이다. 작물은 일정한 빛의 양을 넘어서면 더 받아도 광합성을 늘리지 못한다. 남는 빛은 전기로 바꾸고 필요한 그늘은 농사에 돌려주는 장치. 그것이 영농형 태양광의 본래 얼굴이다. 그늘 아래에서는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한낮 열이 줄고, 토양수분 증발이 완화되며, 작물의 수분 스트레스도 낮아질 수 있다. 밤에는 복사
05.20
21세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두 축은 디지털전환과 탈탄소다. 그리고 이 두 흐름은 점점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전력수요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고 각국은 탄소중립 이행이라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스모그로 뒤덮인 베이징의 회색 하늘은 중국식 성장모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마주한 중국은 전혀 다른 나라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희토류까지, 글로벌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고리마다 중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25년 중국의 청정에너지 산업 규모는 GDP의 11.4% 수준으로 캐나다나 브라질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더 놀라운 점은 청정에너지 산업이 같은 해 중국 경제성장의 1/3 이상을 견인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철강 시멘트 부동산에서 청정에너지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를 단순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읽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
05.13
미국-이란 간 전쟁이 3개월째로 접어들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호르무즈 해협 겹봉쇄로 해상 수송로는 마비상태다. 이 전쟁은 단순히 에너지수급 차질의 문제가 아닌 복합위기로 과거의 중동사태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로 인한 에너지수급 위기는 물론이고, 이로 이한 장기적인 에너지가격 상승이 산업내 제조원가나 물류비용을 급증시키는 산업경쟁력 위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석유화학·헬륨·비료 등의 교역 차질로 필수품의 공급망까지 교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고한 대응력을 보여주고 있어 그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에너지자급율 제고다. 중국은 비록 원유 수입 비중은 높지만 전체 에너지원의 에너지자급률은 80%가 넘어 외부충격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하다. 이처럼 높은 에너지자급률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이미 10년전 세워진 정책목표로 그동안 석탄 원자력 재생에너
05.06
우리나라 에너지안보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과거의 에너지안보가 주로 원유와 가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였다면 지금은 공급불안, 탄소비용, 전력수요 증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복합과제가 되었다. 첫째,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불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2025년 기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는 세계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세계 해상 석유 무역의 약 25%가 이 해협을 지나며, 그중 80%는 아시아로 향한다. 전쟁 이후 공급 차질이 커지자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 3월 회원국들이 4억 배럴의 비상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2024년 기준 93.7%인 우리나라는 이러한 충격이 곧바로 전기요금 물가 무역수지 산업원가로 연결된다. 둘째, 탄소중립 이행 압박이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부터 실제 비용 단계로 들어갔다. EU 집행위원회가 공표한 2026년 1분기
04.29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탄소중립기본법 공론화가 마무리되었다.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무작위 선정된 300명의 시민대표단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평균 이상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감축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번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번 공론화는 다른 경우와 달리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미래세대의 의견을 어떻게 시민대표단의 구성에 반영할지, 그리고 시민대표단이 숙의할 의제에 결정문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먼저 시민대표단의 구성 측면에서 기후위기의 직접 당사자인 미래세대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가장 큰 이유가 현행 법률에 장기 감축목표가 없는 것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
04.22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중동 지역의 전쟁은 글로벌 에너지시장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 폭 33km의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에게도 생명선이다. 수입 석유의 70% 이상, LNG의 20%가 여기를 통과한다.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과 비닐의 원료인 나프타의 절반 이상이 이 지역에서 수입되고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전환을 위해 호기롭게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장차관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길거리 홍보와 종량제 쓰레기봉투 수급 상황을 점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결국 에너지는 다시 먹고사는 문제로 돌아왔다. 인류가 석유에 본격적으로 중독되기 시작한 시기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무렵이었으니 불과 80여년 전이다. 전쟁을 통해서 석유의 중요성을 절감한 승전국들은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며 값싸고 안정적인 석유 공급체제를 구축했다. 전쟁 물자를 생산하던 군수산업들이 자동차·항공·석유화학산
04.15
영국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의 첫 구절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선언한다. 4월을 봄이 시작되는 달로 이해한 그는 봄을 희망과 생명의 계절로 여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죽어 있던 것들을 다시 깨우고 과거의 기억과 욕망을 되살리는 시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즉, 엘리엇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기억과 공허함을 환기시키는 역설적인 계절이라고 표현했다. 학창 시절의 필자는 엉뚱한 이유로 4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4.19 학생혁명 기념일에 즈음한 4월 중하순은 벚꽃이 만개한 시기였다. 그런데 중간고사로 인해 꽃구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고, 시험이 끝난 후 돌아보면 꽃이 모두 져 버린 상황이었다. 청춘의 계절을 공부하느라 챙기지 못하고 시험이 끝난 후 비에 젖어 땅에 떨어진 꽃잎을 확인하는 4월이 잔인하다며 엘리엇의 표현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리엇이 현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4월이 아니라 3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해야 할 듯하다
04.08
‘미스트롯’과 같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드러난다. 경쟁의 수준은 참가자의 의지보다 보상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지만 결과에 따라 보상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우승자는 상금뿐 아니라 방송 광고 공연기회를 사실상 독점한다. 반면 결승 진출자와의 차이는 단순한 금액을 넘어 ‘기회의 격차’로 확대된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한다. 보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는 구조가 경연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이 원리는 에너지 소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3월 26일 제2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기요금은 동결하되, 국민들께서는 에너지 절약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물가와 민생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다. 그러나 요청만으로 행동이 바뀔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단기적 수급불안에만 있지 않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시민들의 소비패턴 변화는 필수적이다.
04.01
혁신정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야콥 에들러는 “혁신의 확산은 공급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정 산업 이야기가 아니다. 혁신 일반론이다. 그런데 이 한 문장은 한국 농업 연구개발(R&D)의 현실을 정확히 설명한다. 한국은 농업 R&D에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 농촌진흥청만 해도 2026년 기준 6238억원을 R&D에 쓴다. 산림청과 농식품부 사업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숫자만 보면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성과를 묻는 순간 답은 흐려진다. 논문과 특허는 쌓이고 기술시연회도 매년 열린다. 하지만 그 기술로 시장에서 매출을 올리며 자생하는 민간기업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연구 성과가 산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종자산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내 민간 종자시장 규모는 6757억원으로 세계 시장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종자업체 2143개 중 91.6%가 연 매출 5억원 미만이며, 실제 육종 실적이 있는 기업
03.25
이제 세계 시장은 더 이상 '평평한 공간'이 아니다. ‘평화 배당금’을 즐겼던 지난 30년간의 세계 경제에서 공간은 그저 운송비용과 관리비용의 문제일 뿐, 대개 균질적인 추상적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몇년 간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기로 지리학 혹은 지정학의 논리가 세계 경제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뉴스의 초점은 여전히 석유 및 LNG와 같은 에너지 가격에만 쏠려 있다. 하지만 지구적 산업 문명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비료 또한 이번 봉쇄로 물류가 막혀 버렸다는 사실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넘어 비상 걸린 비료시장 호르무즈 봉쇄로 연간 약 1600만 톤의 비료 생산 능력이 걸프만 안에 갇혔다. 이는 세계 해상 요소 인산염 거래량의 약 35%가 하룻밤 사이에 시장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비료시장의 불안은 이듬해 수확을 막아버란더. 전세계 곡물 시장은 일찍
에너지전환은 단지 발전원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에너지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저탄소 전원을 확대하고, 전기차와 히트펌프 보급을 늘리며, 산업의 전기화와 수소 기반 전환을 추진하는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그러나 전환이 진전될수록 전력 문제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전기를 언제 얼마나 어디서 쓰도록 유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자연조건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고, 전기차 충전과 히트펌프 난방 수요는 특정 시간대에 집중된다. 결국 전력시스템의 부담은 총수요의 크기 자체보다 시간과 지역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데서 더 크게 발생한다. 그동안 우리 에너지정책은 주로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맞춰 왔다. 발전설비를 더 짓고,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를 확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전력망 역시 사실상 외부와 연결되지
03.18
전쟁은 생명을 파괴하는 가장 참혹한 행위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점점 더 분명히 목도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환경과 기후에 남기는 전쟁의 파괴적인 흔적이다. 전쟁의 상처는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무너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군사작전에 사용되는 무기와 연료는 대기와 물, 숲과 토양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파괴한다. 지금 중동과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개의 전쟁은 지구에 가해지는 가장 야만적인 파괴 행위가 바로 전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전쟁은 ‘군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대기 중 탄소농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기후사건’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시대의 무력충돌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탄소배출로 이어진다. 전투기와 군함, 탱크 등 무기체계 운용과 군수물자 수송은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다. 전투기 1대가 단 1시간 비행으로 배출하는 탄소는 일반 승용차가 700시간 넘게 운행하면서 내뿜는 양과 맞먹는다. 군대와 방위산업
03.11
미국의 대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모처럼 활기를 맞았던 국내 주식 장이 극심한 변동성에 휩싸이며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 드리운 이러한 위기감은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지목되어온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한국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 에너지 집약산업의 비중,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에너지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한다. 게다가 1차 에너지 소비량의 40%에 달하는 석유는 70% 정도를 중동에서 수입할 만큼 공급선이 편중된 구시대적 에너지 체제를 갖고 있다. 이번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화석에너지로부터의 탈피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은 이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뼈저린 교훈이기도 하다. 2021년 초 약 18유로였던 유럽의 가스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03.04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은 그동안 시범사업 차원에서 시행해 온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한다.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할 때 제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CBAM이 수입품에 대해 탄소비용을 징수하는 방법은 EU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의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EU 배출권 가격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1월 15일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톤당 배출권 가격은 92유로였는데(2023년 8월 이후 최고치),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월 25일 기준으로 72유로를 기록해 약 20% 하락했다. 현재 EU 집행위원회가 논의중인 EU 배출권거래제 완화 관련 불확실성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완화에는 배출권거래제 주요 대상이 전력에서 산업까지로 본격 확대됨에 따라 무상할당 기한 연장, 배출권 가격 인하,
02.25
인류 역사에서 2022년 11월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시대의 질서를 바꾼 상징적 순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되면서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 ‘AI 전력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 전력은 공장과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산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디지털 산업’이 전력을 가장 빠르게 빨아들이는 새로운 수요 중심으로 떠올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약 460TWh로 추정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6년에는 1000TWh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 규모에 맞먹는다. 불과 몇 년 사이 전세계 전력 지형을 흔드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비중은 아직 세계 전력 소비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증가 속도는 무섭다. IEA는 데이터센터가 2024년 기준으로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 수준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이 수요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며 전력망의 여유를 급격히 소진시킨다는
02.11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공론화가 국회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에서 진행하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론화가 그것이다. 2년 전, 헌법재판소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올해 2월까지 국회가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공론화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우리가 어떻게 충실하게 이행할 것인지 논의하는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가 크다. 국회가 제시하는 일정이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국회 기후특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공론화는 2월 초부터 3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하고 핵심 질문을 설정하는 동시에, 300명의 시민대표단도 선발해서 학습과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경우, 정부안 준비부터 최종 결정까지 약 2년의 기간이 소요되었
02.04
연탄의 기원은 19세기 말 일본 규슈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작과 목탄의 대용품으로 석탄에 구멍을 뚫어 사용한 것이 시초였으며, 20세기 초 수동식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양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도입되었으나, 주로 산업용이나 일본인 거주지 위주로 사용되었다. 연탄이 서민의 삶으로 들어와 난방과 취사를 책임지는 국민 연료가 된 것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연료 부족을 겪으면서부터였다. 연탄은 우리나라에 풍부했던 무연탄을 가루로 만들어 점토와 섞어 원통형으로 가공된 고형 연료이다. 연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뚫은 구멍의 개수에 따라 9공탄, 16공탄, 22공탄, 25공탄으로 나뉘었는데, 초기 대중화된 모델이 구멍이 9개짜리였기에 ‘구공탄’이 대명사처럼 굳어졌다. 1961년 정부가 규격을 19공탄으로 표준화하며 연탄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정착되었다. 1970년대 이후 화력을 높이기 위해 22공탄이 등장했음에도 대중은 여전히
01.28
절기는 단순한 날짜의 흐름이 아니라, 농경 사회에서 축적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빅데이터였다. 대한(大寒)은 ‘큰 추위’, 소한(小寒)은 ‘작은 추위’를 의미했다. 실제로 기상청 자료를 보면, 20세기 초반(1912~1940년)까지 대한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연중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곤 했다. 그러나 기후 시스템이 변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공식이 깨졌다. 소한이 대한보다 더 매서운 추위를 기록하는 빈도가 늘어났고, “소한 추위에 대한이 울고 간다”라는 속담이 과학적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동지를 지나 새해 벽두에 찾아오는 소한의 위세가 1월 하순의 대한을 압도하는, 즉 겨울의 정점이 앞당겨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그런데 올해, 우리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해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1월 초,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속에 반소매를 입으며 실종된 겨울을 운운했는데, 대한을 기점으로 시작된 기록적인 한파는 한반도를 냉동고처럼